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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선 May 04. 2023

브라이턴(Brighton)과 나

나는 왜 왕국 제1의 행복 도시에서도 불행했나

이 글은 작년, 2022년, 내가 영국에서 인도로 떠나기 전에 쓴 글이다.

아직 여왕님이 살아계실 때라는 걸 참고해 주길 바란다.

이 글이 발행된 현재는 2023년 5월 4일 목요일, 새로운 왕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이틀 앞에 남겨두고 있다.

작년에 버킹엄 궁전 앞에서 'Long Live The Queen'을 좀 더 많이, 크게 외쳤어야 했다.




심한 감기에 걸려 보름 넘게 앓아누웠다. 엎친데 덮친다고 와중에 감정 소모가 큰 일도 생겨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되었다. 몸이 아플 때는 마음 편히 쉬고 마음이 아플 때는 밖에 나가 활동하면서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데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플 때는 이도 저도 할 수가 없어서 꼼짝없이 침대에 박혀 슬픈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물가는 올라가는데 경기는 안 좋은 요사이 경제와 같다고 할까. 누가 영국 물가 좀 잡아주세요, 제발. 여기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요!

인플레이션 10%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 특히 기름값이 저세상 가격이다.


왜 우리는 잃고 나서 후회하는 걸까? 건강이 최고라는 격언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만큼 굉장히 상투적인 말이다. 뭔가가 상투적이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쓰여서 흔해 빠졌다는 말인데 여기에 상투어의 아이러니가 있다. 상투어가 반복적으로 쓰이는 이유는 그만큼 그 말이 전달하는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인데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개인에게 전달되는 가치는 오히려 감소한다. 우리가 아무리 군만두를 좋아해도 삼시 세끼 매일 먹으면 입에 물리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계속 듣게 되면 효용은 체감하는 것이다. 정우성 씨에게 잘생겼다는 말은 매번 새롭고 짜릿할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건 잘 모르겠다.


영국의 의료 시스템 NHS는 느리기로 악명이 높다


이번엔 목감기가 얼마나 심한지 며칠간 목소리를 아예 잃어버린 수준이라 감기 따위 대수롭지 않게 생각나는 나로서도 걱정이 많았다. 이게 영국 아닌 유럽 어딘가로부터 지중해를 건너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서양을 건너왔을지도 모르지. 그만큼 브라이튼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적어도 코로나는 아니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 앓아누워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제 나도 영국인들과 함께 맥주로 목을 축이며 NHS를 신명 나게 깔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통화 대기만 4시간이 걸리다니.


그간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7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플래티넘 쥬빌리라고 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런던에 여왕의 이름을 딴 새 지하철 노선까지 생겼다. 한편에선 3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철도 파업이 일어나 영국인들의 전통인 기차 연착 불평하기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고 원숭이 두창 발생 건수로 독보적인 선두주자가 되었으며 푸틴은 영국을 아주 눈엣가시로 보고 있는 듯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물가가 상승하는 중인데 Brexit의 여파로 다른 유럽 국가들이 같이 두드려 맞아 충격을 줄일 때 혼자 후드려 맞아야 해서 더 큰 충격이 예견되고 있는 듯하다. 


퇴임 연설 중인 보리스 존슨. 카더라에 의하면 브렉시트 관련 연설 할 때 찬반 연설문 둘 다 지닌 채 회장에 입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사임을 표명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 순간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한국에 있을 땐 북한이 난리 더니, 영국 오니 이제 러시아가 난리다.

아무튼 앓아누워서 여행도 못하는 김에 이렇게 또 맥북 스크린 앞에 앉아, 아니 누워서 허접한 글을 끼적거리고 있다. 사실 이번엔 브라이턴에 대해 말해보려고 시작했는데 뭔 헛소리가 이렇게 길었는지.


Anything goes in Brighton

가운데에 고운 다리를 뽐내고 계신 분은... 할아버지시다.

브라이턴의 정식 명칭은 Brighton and Hove로 과거엔 Brighton과 Hove로 나눠진 별개의 타운이었는데 Brighton의 부흥에 따라 경제, 인구가 팽창하면서 주변 지역들을 통합해 가다가 1997년에 Hove를 통합하면서 지금의 Brighton and Hove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규모도 인구수도 커졌음에도 그때까진 도시가 아니었는데 2000년에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여왕님이 도시(City)로 승격시켰다. Y2K City 인 셈이다.


영국에서 어떤 지역이 도시가 되는 방법은 한국과는 다른데 여왕에게 도시로 인정을 받아야만 도시가 된다.

분명 어떠한 기준 같은 것이 뭐라도 작용되긴 하겠지만 내 측근들의 다소 무관심한 카더라에 의하면 그 기준이라는 게 일정하지가 않아서 크기도 인구수도 뭣도 아니고 그냥 여왕의 마음이라고 한다. 평상시에 도시(City)로 승격을 원하는 타운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가 뭔가 여왕님께서 기분이 좋으실 만한 기념일이 있을 때 여왕님의 마음에 드는 곳을 뽑는다는 듯하다. 근데 내 질문에 답한 그 누구도 그리 진지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실제 기준이 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하긴 도시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별 실리는 없고 프라이드의 문제라고 하는 걸 보면 아마도 어른들의 속사정에 해당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여왕에게 인정받아 공문서에 Town이 아닌 City라고 적힌다고 해서 노숙자가 줄어드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영국엔 총 70개의 도시가 있는데 잉글랜드가 52개를 차지하면서 웨일스에 6개, 북 아일랜드에 5개, 스코틀랜드에 7개가 있다. 웨일스, 북 아일랜드는 작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땅 덩어리가 비슷한 스코틀랜드에 7개의 도시 밖에 없다는 사실을 들으면 처음엔 좀 의아해서 완전 지역 차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국 인구의 약 80%가 잉글랜드에 살고 있다는 걸 알면 납득을 하게 된다.


아무튼, 브라이턴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최초에 브라이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영화 London to Brighton을 통해서다. 한 창부가 포주의 명령으로 가출 소녀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려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소녀를 위협으로부터 구해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이야기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가 브라이턴을 묘사하기를 딱 두 문장으로 끝냈다. 첫째, 영국의 Gay Capital City라는 것. 둘째, 모든 일이 벌어지는 곳(Anything goes)이라는 거였다. 그때는 그냥 표현이 그렇다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번 방문하면서 몇 주 정도 머문 이제 와서 보니 아주 적합한 묘사가 아니었나 싶다. 브라이턴의 길거리에선 정말 많은 게이, 레즈비언 커플들을 볼 수 있었고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게이바, 레즈비언바, 레이디보이 공연, 스트립클럽, 에로틱부티크 등등이 도시 중심 번화가에서 간판 달고 버젓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아주 다양한 방향으로 개방적인 곳이다. 길바닥에 헐벗은 여자들 전단지로만 도배되어 있는 단조로운 서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에로틱 부티크. 서울에서 전단은 지겹게 봤어도 간판은 본 적 없는데 우리나라와 다르게 양지화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숙소 중 한 곳의 주방 인테리어. 브라이튼이 얼마나 개방적인 곳인지 짐작케 한다. 수위가 너무 쌔서 필터 씌웠다.


구글에 Gay Capital of England라고 검색하면 떡하니 Brighton이 나온다. 대표적인 표현이 Gay Capital이라서 그렇지 이성애를 지나 동성애를 거쳐 무성애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에 열려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개방성은 성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다이 나이트를 종교로 섬기는 사람이 가장 많은가 하면 내 생애 처음으로 폴리아모리 커플을 실제로 만난 곳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만 아니라면 말 그대로 당신이 무엇이든, 무엇을 하든 허용하는 곳처럼 보인다. 타인의 눈치를 극도로 살피고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사람으로서는 꽤 신세계처럼 들리지 않는가? 물론 당신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무엇이든 하는데 필요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곳이라고 다르진 않다. 신세계지만 낙원은 아니다. 현재까지 여행해 본 약 20여 개국의 모든 도시들 중에 나는 브라이턴에서 가장 잦은 빈도로 노숙자들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브라이턴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딴 건 별로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하다. 


브라이튼의 명소 The lanes에 있는 조지 4세의 벽화

브라이턴의 또 다른 별명은 ‘영국에서 가장 믿음이 부족한 도시’로 다시 말해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브라이턴 출신의 누군가가 브라이턴이 낙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성과 관련된 의미의 낙원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또 다른 통계가 이 예상을 좀 더 그럴듯하게 들리게 해 주는데 브라이턴은 다른 주요 도시들에 비해 청, 중년층의 인구 비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다. 바로 성적으로 가장 왕성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 통계를 보면 브라이턴이 젊은이들에게 더 어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그중 하나는 분명 성적 개방성과 다양성일 것이다. 브라이턴은 ‘영국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조지 4세의 향락으로 떡상한 도시답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내 느낌적인 느낌으로 브라이턴의 Vanilla와 Non-vanilla의 비율은 적어도 6:4는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Vanilla라는 표현은 평범한, 보통의 라는 의미를 가진 Normal이라는 단어를 대신해서 쓴 것이다. 이쪽 동네, 그러니까 브라이턴뿐만 아니라 영미권에서는 Normal이라는 단어를 한국에서 처럼 생각 없이 남발했다간 센스 없고 둔하고 몰지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있다. 사실 요새는 악의 없이 단지 충분히 예민하지 못할 뿐인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보일 정도로 핍박받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한데

몰랐으면 상관없겠지만, 알게 된 이상 나도 신경이 쓰여서 사람과 관련해서는 아예 Normal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무런 의도 없이 당신 스스로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Normal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더라도 듣는 사람이 “당신과 다른 사람들은 not normal하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 무신경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 뭐 그런 오해받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무신경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빈정거리는 게 아니고, 진심이다.


The Best Part in Brighton

브라이턴 팔라스 피어 좌우로 자갈 해변이 펼쳐져 있다.

브라이턴 방문 첫날의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청량함’이었다. 해안 거리를 따라 들어서 있는 새하얀 건물들,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 걸으면 사르륵사르륵 속삭이는 자갈 해변, 푸른 바다와 파도 소리, 활기찬 사람들의 웃음소리, 갈매기의 울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무더위에 차가운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신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물론 갈매기 똥으로 도배된 차들을 보면 청량감이 싹 사라지긴 하지만.


브라이턴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해변으로 나가 바다를 구경한 것이다. 브라이턴은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가진 도시지만 그중 단연 으뜸이 바다와 해변이라는 데에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해변을 가진 잉글랜드 남부 도시들이 모두 브라이턴 같은 다양한 개성을 갖지 못한 것을 보면 브라이턴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에는 분명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작용한 것이겠지만 나는 브라이턴에 해변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대표하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만큼 브라이턴의 해변은 그들의 제1 보물이다. 브라이턴의 명소를 단 하나만 추천해야 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브라이턴을 아는 그 누구라도 해변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첫날 그렇게 해변에서 한 시간 정도를 누워 햇살을 즐겼다. 평소 자갈해변보다는 모래사장을 선호하지만 이렇게 아무 때나 아무런 준비 없이 와서 아무 데나 드러눕기에는 자갈 해변이 참 좋은 것 같다.


해안 산책로를 거니는 것도 좋았다. 브라이턴 팔라스 피어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향하면 Hove 쪽으로 갈 수 있는데 Hove Beach Huts라는 다양한 색상의 오두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저 다양한 색상들은 분명 다양성을 추구하는 브라이턴의 정신을 뽐내는 것일 테다. 참, 칼라풀한 오두막들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바닷가 쪽을 보면 철근만 앙상하게 남은 구조물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될 텐데 20여 년 전에 방화로 인해 불타버린 Brighton West Pier 다. 브라이턴 팔라스 피어의 선배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의 관광지로서의 브라이턴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장본인이라 전소 돼버려 자칫 흉물처럼 보이는 데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대로 보존 중이라고 한다. 방화범은 잡히지 않았고 단서조차 없어서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이라고 하는데 브라이턴 여자에게 실연당한 남자가 속상해서 그들이 처음 만난 장소를 불 지르고 떠나버린 게 아닐까라는 공상을 해본다. 아, 아니다. 브라이턴 남자에게 실연당한 남자라고 해야겠다. 이게 좀 더 브라이턴 다운 공상이 아닐까? 아무튼 사진작가들에겐 ‘오히려 좋아’인 상황이 돼버려서 사진 맛집이 되어버렸다는 후문이다.

웨스트 피어에 불이 났을 때의 모습
그리고 현재의 모습. 사진작가들이 왜 '오히려 좋아'를 외쳤는지 알 것 같다.

브라이턴에서의 첫날 대부분을 해변에서 보내고 밤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두 친구와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보러 갔다. 쇼가 끝나고 한 친구가 내게 소감을 물었고 나는 스탠드업 코디미를 라이브로 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 많이 쳐줘도 한 반절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는데도 재밌었다고 답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 코미디를 이해하는 게 마지막 단계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하더라. 나는 그 표현이 너무 적절해서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녀에게 트랜스젠더 친구를 만난 것도 생전 처음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영국에 사는 많은 성소수자들 중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브라이턴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브라이턴으로 도피 여행을 자주 온다고 한다. 그들에겐 이곳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될 수 있고 또 그게 받아들여지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선 아직도 생소한 스탠드업 코디미.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하는 자학 개그가 일품이었다. �


Brighton? No, BrightOff!

브라이턴은 내게 Bright-ON이라기 보단 Bright-OFF에 가까웠다. 화창했던 첫날 이후 내내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내가 브라이턴을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다시 화창해졌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아예 첫날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영국 물 좀 먹었다고 친구들에게 영국식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는 원래 여행지에서의 날씨운이 신기할 정도로 좋은 편인데 브라이턴에서만은 좀 심할 정도로 날씨운이 없었다. 엄마가 하늘에서 미래를 보고 비를 내려주신 걸까?


브라이턴은 런던과 달라서 비가 내리면 관광지로서의 메리트가 확 줄어버린다. 런던처럼 실내에서 관람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날, 셋째 날 시내에 있는 실내에서 관람할만한 것들을 서서히 둘러보고 나니 딱히 더 할 게 없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유흥(Nightlife)의 팬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겠다. Brighton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Club Night를 즐기러 며칠간 원정을 올 정도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Nightlife를 즐길 수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담배 냄새를 역하게 여길 정도로 싫어해서 클럽 음악을 아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클럽엔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가 많이 내리는 나흘째는 식사할 때를 제외하곤 방에 짱 박혀 있었다. 방에 짱 박혀서 이런저런 글 좀 끼적거리다가 결국 다음 날에 Portsmouth나 Isle of Wight로 떠날 궁리를 했다.


오래도록 기다려도 안 오는 버스는 담뱃불을 붙이자마자 보이기 시작하는 거라는 머피의 법칙처럼 브라이턴을 떠나려는 찰나에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을 만났고 덕분에 브라이턴의 다른 모습들을 좀 더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중에는 Brighton이라는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듯 보였지만 거기서 만난 인연들이 우중충한 흐린 나날들을 밝혀주기엔 충분했다. 어울린 시간은 짧았지만 그들이 언제나 내가 처음 그들을 마주 했을 때처럼 웃음이 가득하고 건강한 관계 속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곧 이곳을 떠나겠지만 그래서 언제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평생 다시 한번 못 만나게 되겠지만, 그게 인생이니까, 불만은 없다.


근데 있잖아, 친구들.
볼링을 잘 치면 섹스를 못한다는 낭설은 아직도 납득을 못하겠어.
하얀 까마귀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Live like a traveler

한국에는 여행하듯 인생을 살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못 들어 봤을 뿐이지 대부분의 언어권에 비슷한 격언이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보통 여행 중에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아끼고 아껴 쓴다. 여행지에서의 그 시간이 정말 희소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면 지루한 일상의 하루하루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격언은 격언일 뿐, 실현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낭만적인 이야기다. 오히려 반대로, 일상을 살듯이 여행하는 경우가 더 쉬울 것이다. 아마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이 얼추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경우 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엔 인생이 충분히 길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나중에 하지 하고 미루는 것처럼 여행도 길어지니 여행 중에 하고 싶은 것들을 나중에 하면 되지 뭐  하고 미루게 되더라. 나는 여기서 유한의 미학을 다시 한번 새삼 깨닫는다.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게 한 가지 더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혼자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줄 알았다. 친구들이 같이 여행 가자고 졸라도 극구 거절하고 혼자 여행을 다니곤 했다. 근데 이번에 3개월 정도 홀로 여행을 해보니 외로움이 몸에 사무치더라. 이제 혼자 하는 여행이 별로 즐겁지 않다. 군만두를 너무 많이 먹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군만두도 나중에 잃고 나면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걸.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이걸 누군가와 함께 음미하고 싶다.

이 맛있는 풍경도 아이스크림도 누군가와 나누어 먹고 싶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의 말씀과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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