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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옥 Dec 09. 2021

빛이 없는 곳에도 빛이 있기에

김성녀 모노 뮤지컬 <벽 속의 요정>

세계사에 길이 남을 어둠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사태의 심각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막막함이 더욱 절망스럽다. 어떠한 희망도 없고 세상은 내게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만 같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도깨비 말고) 요정을 소환한다. 뮤지컬 <벽 속의 요정>을.


2005년 7월 19일 1회 차 관람, 2006년 7월 9일 2회 차 관람, 2011년 9월 16일 3회 차 관람


뮤지컬 <벽 속의 요정>은 오로지 김성녀 배우님만을 위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그 외 다른 배우는 이 작품을 연기한 적이 없다.


줄거리는 이렇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사상범으로 몰리게 된 한 남자가 잠시 몸을 피할 요량으로 집의 벽 속에 숨는다. 벽 속에 숨어 사는 사이, 남자와 아내 사이에 딸이 생기고. 벽 속의 인기척을 느끼게 된 딸은 그를 자신만의 '요정'이라고 여긴다. 요정의 신분으로 벽속에 숨어 사는 '40년' 동안의 이야기.


사람이 집안에 숨어 40년을 산다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싶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옛날 스페인 내전 당시에 집에 숨어 40년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일본의 작가가 연극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하여 뮤지컬 모노드라마로 재탄생한 것이 바로 <벽 속의 요정>이다.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 남편과 아내의 사랑. 그 어떤 부부가 이처럼 지극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한 집에 살고는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 부부의 극진한 사랑은 아무리 보아도 눈시울을 적신다. 나중에 죽을 때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온 남편은 죽기 전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을 믿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겠소. 나를 용서하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40년을 한결같은 믿음과 희망으로 남편을 지켜온 아내에게 남편이 구하는 용서. 힘든 삶의 굴곡 속에서 남편으로서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이 한마디를 아내 역시 다 이해했을 것이다. 아내도 늘 이야기하지 않았나.


"당신이 여기 있기에 나도 여기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딸의 사랑,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딸은 알게 되었다. 자신의 요정이 실은 아버지라는 것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만약 나였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가 있으면서도 아버지 없는 아이 소리를 듣게 만든 그를 원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고 했다.

하지만 딱 한 번! 언젠가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상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너희 아빠가 빨갱이'라고 하자 집에 와서 아빠에게 소리친다.


"스테카치(아이가 요정을 부르는 말)! 아니지??? 스테카치가 빨갱이라니 절대 그럴 리 없어!!!

빨갱이는 빨간 얼굴에 머리에 뿔도 있지만 스테카치는 아니잖아!!!!"


자신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받는 딸을 보는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빠는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그 울음소리를 들은 어린 딸은 아빠에게 선물을 한다. 햇빛을 가득 담은 나뭇잎. 아빠는 딸이 가져다준 그 나뭇잎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다.


딸이 사범학교에 진학하자 남자는 아내에게 말한다. 자신의 사망 신고를 하라고. 도저히 살아있는 남편의 사망 신고를 할 수 없어 망설이는 아내에게 재차 말한다.


"순덕이가 선생님이 되려면, 신원 조회를 할 거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순덕이의 앞길을 막을 순 없소."


딸의 미래를 망칠까 자신의 사망 신고를 하라는 아버지의 마음.


딸이 자라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딸은 특이하게도 베로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그 드레스는 아버지가 긴긴 세월 딸을 위해 준비한 것. 항상 함께 할 수 없지만 아버지의 그 사랑을 씨실과 날실에 곱게 켜켜이 담아 짠 베.  딸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은 '혁명 이야기'이다.


남자는 젊은 날 이렇게 노래한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 되는 것. 일한 자 일한 대로 거두는 참 세상.

평등한 새 세상을, 그 꿈 굳게 믿었지"


남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젊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벽속에 숨어들게 된다. 그가 늘 흥얼거리던 '스텐카라친의 노래' 역시 혁명가의 노래이다.


스텐카라친의 노래는 러시아의 민요인데 이 노래에는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1670년 러시아의 농민 지도자 스텐카라친은 알렉세이 1세의 학정과 봉건 영주들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다. 농민군을 규합한 스텐카라친은 볼가강 유역 차리친을 함락하고 이를 본거지 삼아 싸워 나가는데, 그만 차리친의 영주의 딸인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공주와 사랑에 빠진 스텐카라친을 보고 사람들은 그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다른 봉건 영주를 공격하기 위해 다시 볼가강을 건너던 중 배가 강 한가운데 이르자 스텐카라친은 공주를 두 팔에 안고 농민군들 앞에 선다.


“나는 공주를 사랑한다.

그리고 압제와 굶주림에 시달려온 농민 여러분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내 조국 러시아를 더 사랑한다.”


스텐카라친은 연설을 마치고 뚜벅뚜벅 뱃전으로 걸어가 공주를 볼가강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라도 혁명을 완수하고자 했던 스텐카라친. 남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대신 인간의 사랑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혁명가이다. 모진 삶이라는 치열한 혁명을 이겨낸 혁명가이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지켜낸 혁명가이고 무수히 많았을 죽음의 유혹을 견뎌낸 혁명가이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와 딸도 살게 한 혁명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삶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 속에서 남자의 아내는 내내 이야기한다.


포기하면 안 돼요, 살아야지요.

세상이 아무리 죽어라 죽어라 해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요.

용기 내요. 이겨내야 해요.

살아있다는 건 아름다운 것.

살아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죠.

살아있는 건 아름다워. 어떤 이유보다 소중해.


도대체 저 상황에서 뭐가 그리 아름다울까 싶은데 그들은 삶의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자유를 얻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삶, 그 삶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공연을 처음 보았던 어린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작품은 김성녀 배우 혼자서 극을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이다. 김성녀는 다섯 살부터 자식을 셋 둔 중년까지의 딸도, 14세부터 65세까지의 어머니도, 15세부터 67세까지의 아버지도 되었다가, 장터의 건달 파나마 장, 딸의 남자 친구, 형사, 극 중 이야기 속의 김 씨, 황 씨, 12달의 신령 등 출연진 전원의 연기를 대신한다. 공연이 끝나고 김성녀 님은 배우로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했다. 처음 작품을 받았을 때 앞으로 10년을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고. 약속한 10년이 지났지만 다시 10년을 기약하며 최근(2019년)까지도 무대에 이 작품을 올렸다.


배우와 작품과 함께 관객도 나이 들어가고 있다. 어릴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있다는 아름다움.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희망이 되는 아름다움. 그래서 그 관객은 암울한 때일수록 절망적일수록 <벽 속의 요정>을 떠올린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빛이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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