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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롱언니 Jan 30. 2024

9. 버킷리스트, 가족사진

재롱은 인슐린 노마를 앓았다. 인슐린 노마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어 혈당이 계속 떨어지는 병이다. 원인은 췌장 종양 때문이다. 췌장에 종양이 붙어 있을 수도 있고, 보통은 췌장이 종양화되는 식으로 진행한다.


증상이 처음 있고, 병명을 진단받는 사이에는 열흘 남짓한 시간이 있었다. 의심되는 부분까지 검진을 끝낸 뒤 결과적으로 진단명을 받았을 때는 머리가 멍했다. 그도 그럴 게 수의사 선생님은 인슐린 노마라는 진단명 뒤에 보통은 6개월, 길면 1년 정도를 산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얘기를 들을 때 재롱도 함께 있었다. 재롱도 알아 들었을까? 몰랐으면 좋겠는데 ..

마음과는 다르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도통 멈출 줄을 몰랐다. 재롱은 영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재롱은 진단명을 받고도 3년 남짓 더 살았다. 고비를 지날 때마다 이번 겨울만, 이번 봄만, 이번 생일만 하며 욕심을 부렸다.

어느 순간에는 재롱이 아픈 것도, 약을 먹는 것도 모두 익숙해져서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지 무감각해질 때가 있기도 했다. 재롱은 나이가 들면서 잔병치례도 많아졌다. 유전자 때문인지 걱정이 많은 팔자인 나는, 재롱이 조금 이상할 때마다 들쳐안고 병원으로 달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덜컹 덜컹 내려앉았다. 동시에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내 몸을 감싸버렸다.   


혼자 있을 때면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꽁꽁 묶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 좋은 일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나쁜 생각을 하는 것.


재롱의 투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정적인 생각에서 헤어나오기 달인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재롱과 함께하는 날이 단 하루 남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롱과의 산책할 때 행복을 온전히 느끼고, 약을 안 먹는다고 투정부릴 때 조금 더 인내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리고 재롱과 함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적어보기도 했다.


그 중에는 ‘가족 사진 찍기’가 있었다.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다가 예약을 잡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재롱이 떠나가 1년 전, 재롱 인생에서 마지막이었던 큰 수술을 했고 그만큼 회복이 더뎠다.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길 반복했고, 사료는 거의 먹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제는 진짜 미루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버킷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보며 지금까지 이루지 못한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재롱과 함께 해야 하니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재롱이 아프니 예약이 빨리 되는 곳으로 골라 찾아갔다. 다행히 사진사분이 강아지 사진 찍기에 능숙한 분이셨고 덕분에 우리는 또 하나의 굵직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큰 액자로 할머니의 방에, 작은 액자로 내 방에, 사진 파일로 핸드폰 안에. 어디에나 있다.


재롱은 자유롭게 떠났지만, 재롱의 사진은 우리 곁에 남아 외로울 때, 힘들 때, 보고플 때, 언제든 위로의 마음을 건네어 준다. 재롱과 함께했던 이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리워할 순간이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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