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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롱언니 Mar 12. 2024

13. 혈당 체크는 처음이라

재롱이 앓게 된 희귀병은 쉽게 말해 저혈당이다. 당뇨약을 먹는 사람들이 음식을 조심하고, 공복 시간을 지키며,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는 것처럼 재롱도 저혈당이 오지 않게 스테로이드를 일정한 시간마다 급여해줘야 하고, 되도록이면 혈당을 자주 재서 그래프화 시켜 관리해줘야 했다. 


‘인슐린 노마’라는 병이었다. 췌장에 종양이 생겨 인슐린 분비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되며, 결국에는 빠르게 췌장이 종양화되어버리는 병이다.

종양이 보인다면 상황에 따라 항암을 할 수도 있었지만 재롱은 항암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렇다할 종양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이런 상태에서 무턱대고 항암을 한다는 건 10살이 된 재롱에게도 꽤 큰 부담이었다. 항암을 결정하는 것도 많은 검사와 의사의 소견, 보호자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일이었는데, 사실 이 기간에 나는 많은 강아지 항암 치료 사례를 찾아보았다. 아픈 강아지들이 모여 있다는 네이버 카페부터 원래 활동하던 카페의 반려견 카테고리까지 .. 

사람에 비해 강아지 항암제는 구하기도 힘들고 금액도 어마어마하다. 모니터 넘어 그들의 힘듦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파도가 한순간에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즈음 재롱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그 상황에서도 최선의 치료보다도 비용 걱정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창피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힘들었다. 

재롱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달에 몇 백씩 들이며 힘들게 이 병원 저 병원 오가며 치료를 해준다 한들 좋다고 할까? 생각했다. 어쩌면 나를 위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아지들마다 저혈당 증상이 다르긴 하지만 재롱은 발작, 경련이었다. 이런 증상이 계속 되면 뇌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쳐서 합병증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재롱의 인간 가족들은 최대한 저혈당이 오지 않게 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가족 중에도 혈당체크기를 사용해본 사람은 없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병원에서 도움 받고, 그 외에 모자란 건 유튜브나 카페를 찾아보며 독학을 해야 했다.

강아지들은 보통 귀, 발바닥에서 채혈을 하는데 재롱은 워낙 발 만지는 걸 싫어하고, 또 강아지 발바닥의 패드는 생각보다 두툼해서 꽤나 깊게 찔러야 했다. 그게 마음이 아파서 나는 귀로 채혈을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처음 일주일간은 실패의 실패를 거듭했다. 재롱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시간을 맞춰 재야 하는 거라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과 이유도 모른채 귀를 따갑게 찔리고 있는 재롱에 대한 미안함이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한동안은 아침마다 공복 혈당을 쟀었는데, 스스로 너무 스트레스인 나머지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고 하루종일 모든 신경이 그쪽을 향해 있었다. 


바늘과 피를 무서워하는 내가 그렇게 3년 가까이를 지내고 나서는 귓털 정리, 소독, 피 모으기, 혈당 체크하기까지 2분이면 뚝딱 끝내는 베테랑이 되었다. 동생은 간호학과인데다 상처나 피를 무서워하지도 않아서 자칭타칭 우리집 간호사일만큼 크고 작은 상처 소독, 바늘 다루기에는 따라올 자가 없는데 재롱 한정해서는 우리집에서 내가 제일 능숙한 사람이 된 거다.


혈당을 재고 나면 피를 모았던 재롱 귀는 빨-개지고 어쩌다 깊게 찔린 날에는 피가 계속 나오기도 했다. 스왑으로 닦아주고 스테로이드 없는 연고를 발라주고 고맙다고 고구마 간식을 줬다.

재롱에게 자주 귀가 따가웠던 이유는 설명해줬는데, 지금쯤은 이해했을까? 다시 한 번 재롱에게 사랑을 담아 사과의 말을 전한다.

재롱, 이유도 모른채 피를 보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그동안 잘 협조해줘서 고마웠어. 재롱 덕에 언니도 한층 성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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