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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롱언니 Mar 19. 2024

14. 장례식장(1)

재롱은 여러 번의 수술을 했다. 매 수술마다 고비였다. 재롱은 노견이기도 했고 질병을 앓고 있기도 했으니까. 작은 흑색종을 제거하는 수술에도 온 가족이 숨 죽이며 두 손을 모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재롱의 마지막 수술은 재롱이 떠나기 1년도 더 전이었다. 인슐린 노마라는 병은 최종에는 췌장이 종양화되는 병이기에,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별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안 보이는 위치에 있을 수도, 더 깊은 검사를 해야 보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롱에게 마취하고 검사해야 하는 것들을 매번 하기에는 비용도, 재롱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그 당시 재롱의 인슐린 노마를 정기 검사하며 관리하던 게 2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날이었다. 어김없이 정기검진일이 다가왔다. 매달 첫 수요일에 검진을 갔다. 나는 그래서 월말만 되면 괜히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온종일을 불안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X-ray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었고, 바로 CT검사 예약을 했다. 지금까지의 검사에서와 다르게 보이지 않던 종양이 발견되었고, CT를 봐서 정확한 위치와 수술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다. 사실 당시에는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늘 불안불안했다. 이 상황을 아마 예측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 CT 촬영 결과 재롱의 췌장에는 종양이 자리잡고 있었다. 심지어 굉장히 좋지 않은 모양으로 췌장의 반을 덮고 있었다. 원장님은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꽤 어렵고 힘든 수술이 될 것이라고, 췌장의 반 이상을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위치도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둔다면 종양은 빠른 속도로 자라 재롱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또 무력하게 눈물만 흘렸다. 매 순간이 그렇지만 이럴 때 특히 더 재롱과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재롱 몸에 대해, 재롱의 아픔에 대해 재롱과 얘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원장님은 단호하게 해볼 수 있는 수술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결정만 해달라고. 어렵긴 하지만 성공한다면 재롱의 수명을 훨씬 늘릴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나는 그런 원장님을 믿고, 강한 재롱을 믿고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수술 후, 회복이 빠르게 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먹던 스테로이드를 끊었다. 재롱은 물도 겨우 마실 정도였다. 근 열흘을 입원해 있었고, 퇴원했다가도 아무것도 먹질 않아 다시 입원하길 반복했다. 퇴원해서도 뭘 먹지를 않으니 포도당 주사와 피하수액을 달고 지냈다. 결과적으로 수술은 잘 됐으나 재롱이 회복하지 못해 원장님께서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도 말씀하셨다. 


내가 욕심을 부려서 그런가, 생각이 들었다. 재롱은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마음을 많이 다스리려 노력했던 것 같다. 재롱도, 나도, 가족들도 각자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아마 죄책감을 갖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겠다. 후회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냐만, 나는 후회하는 게 싫어서 어떤 일이라도 어떤 생명에게라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는 덜한다.


그동안 재롱과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재롱은 아프니까, 가족들은 바쁘니까, 시간이 없으니까 미뤄왔던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재롱의 컨디션이 나은 날은 동네 애견동반 카페에 갔다. 재롱의 고구마와 간식을 싸들고 낯선 동네 산책을 했다. 맛있다는 수제 간식은 전부 사줘봤다. 재롱이 아는 맛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가족사진을 찍었다. 미루고 미뤄왔는데, 우리에게도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사진이 아닌 가족으로서 같이 찍은 큼직한 사진이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장례식장을 알아봤다. 장례를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막상 닥치면 분명 정신이 없을 게 뻔했고,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먼 미래였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다가올 재롱과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대한 잘 해주고 싶어서였다.


메모장에 리스트업을 해뒀다. 심각하게 절차와 비용, 옵션과 집에서의 거리를 가늠하며 순번을 매기고 있는 그 순간 재롱은 내 다리 옆으로 엉덩이를 대고 누워 있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더욱 더 이 시간을 오래 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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