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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롱언니 Jan 23. 2024

8. 미용실 연대기- (2)

그렇게 또 미용실 떠돌이가 됐다. (?)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게, 또 나에게 유독 힘들었던 건 재롱을 위한 선택을 할 때였다. 재롱과 짧은 대화라도 되면 좋으련만 그건 모든 반려인의 꿈이었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로지 내 선택에 의해 재롱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니까 막중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집에서 살짝 멀어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말티즈를 반려하는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기에 멀지만 처음으로 방문했다. 소문대로 강력한 말티즈도 얌전히 미용받고 오는 미용실이라니 .. 약간의 기대를 안고 미용실로 향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작은 매장이었다. 주차가 가능하다는 점도 좋았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미용실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밝은 미소로 반겨주셨다. 첫인상이 좋았다.

가격도 다른 곳보다 살짝 저렴했다. 재롱이 그 미용실에 처음 간 무렵에는 사람들이 노견이라 부르는 나이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예전에는 재롱이 미용하고 예뻐지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전부 필요 없었다. 그저 재롱의 스트레스가 최소화되며 재롱에게 좋을 정도로만 위생적이면 됐다.


재롱은 또 워낙 예민한 강아지였다. 나에게도, 재롱에게도 새로운 공간이기도 했고 처음 만나는 사람이어서 재롱에 대해 일러드릴 것이 꽤 있었다.

발이나 얼굴을 만졌을 때 싫다는 표현을 하면 미용을 멈춰도 된다고 부탁드렸고, 노견이니 중간에라도 아파하거나 어떤 증상을 보인다면 바로 연락 달라고 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걱정도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재롱은 떠나기 전날에도 미용실에 갔었는데 그때까지 한 번도 아파하거나,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사장님도 재롱보다 나이가 더 많은 노견을 케어중이었고, 내 마음과 재롱 마음 모두를 헤아려주셨다. 그게 너무 감사했고 한편으로는 믿음이 갔다. 


처음 가고, 두번째, 세번째까지는 재롱이 걱정되어 맡기고 나서도 근처 카페에 앉아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재롱과 사장님을 믿는 마음 때문인지 편하게 집에 가서든, 볼일을 보며 기다리고 있을 수 있었다. 


재롱이 떠나고 나서도 사장님께 알려드려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늘 재롱의 건강을 염려해주는 마음과 응원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마 재롱도 비슷하게 느꼈을 거다. 코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말씀 드렸을 땐, 너무너무 안타까워 해주셨다. 비슷한 입장에 서있는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를 진하게 받았다.

재롱이 떠나고 나서도 몇번 종종 찾아뵈었다. 재롱 미용사로서도 너무 좋은 분이지만, 사람으로서도 따뜻하고 편한 분이라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내 욕심에서였다. 


앞으로는 위로받고, 위로하는 사이가 아닌 재롱을 기억하며 웃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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