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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Aug 30. 2024

BBK  김경준과 흑금성

  1990년대 초 전국 교정기관에는 집시법 위반 등으로 수용된 대학생 공안사범들이 많았다. 내가 근무하는 소에도 5,6명의 공안사범들이 독거실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6사동 중층과 상층 독거실 1,2,3방이 그들의 수용거실이었다.

당시 공안사범 전담직원이 있었고 그 직원들 외에는 접촉을 거의 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시 야간 취사장 보조 근무자로 각 사동에 배식 리어카를 끌고 가는 수용자들을 계호하며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 이슈가 있을 때 단식을 하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밝고 예의 바르게 생활했으며 직원들도 학생들에게 잘 대해 주었다.

  징역 5년을 받은 Y는 성격이 좋아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수용자들과도 잘 지냈는데 Y를 볼 때마다 "정상적으로 대학을 다녔다면 잘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9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대학생들이 수용되었던 6사동 중, 상층 1.2.3방은 혼거수용을 할 수 없는 소년수용자들이 독거수용되었는데 2010년에 천안소년교도소가 외국인 및 한국인 성인교도소로 기능전환되었고 미국 국적인 BBK 사건의 김경준이 6사 중층 독거실에 수용되면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BBK사건은 당시 대통령이던 MB와 관련된 사건이라 김경준과 관련된 일은 상급기관인 교정본부나 법무부에서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는데 특히 기자들이 친지를 가장하여 김경준과 접견하며 BBK 사건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민원실에서 기자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김경준과 접견을 허용하였고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던 기자가 법무부에 전화를 걸어 김경준이 기자에게 말한 내용을 물어보았고 법무부에서 교정본부에 김경준이 기자와 접견한 것을 추궁하자 대전청에서 우리 소 관련 직원들을 조사한다며  퇴근하지 말고 대기하라 하고 밤 11시 넘게까지 조사하였다. 다행히 당시 소장님이 좋은 분이라 직원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조사받느라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었으나 관련 직원들에 대한 문책은 막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총무과 인사업무를 보고 있었고 김경준 전담 직원은 나와 동기였는데 다음날 아침 보안과 휴게실에 가보니 풀이 죽은 동기가 소파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보안과 행정주무로 그동안 김경준을 잘 관리해 왔는데 한순간에 행정처분을 받고 한직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동기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소장실로 올라가 관련 직원들을 어떻게 처리하실 거냐? 고 물어보자 기자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민원실 근무자. 접견 진행하면서 기자인 줄 알면서도 곧바로 제지하지 않은 접견 담당 직원들이 문책을 받을 것이며 전담직원인 동기는 행정처분과 동시에 행정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였다. 나는 소장님께 동기가 그동안 김경준을 잘 관리해 왔으니 행정처분만 주고 한번 더 기회를 주시면 더 열심히 근무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소장님이 잠시 생각하시더니 내 의견대로 해주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몇 달 지난 어느 날 총무과 사무실밖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70대 노인 한분이 총무과장실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김경준의 어머니가 김경준이 피부암의 일종인 기저세포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왔는데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시켜야겠다고 얘기하지 총무과장이 천안에도 대학병원이 2개나 있으며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니 천안에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하자 천안병원은 믿을 수 없고 세브란스병원에 아는 의사도 있고 하니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였고 서울로 가면 수술 후 입원기간 동안 직원들이 몇 명씩 교대로 근무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그렇게 해준 사례도 없다고 말하자 막무가내로 큰소리로 계속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화가 안 통하자 총무과장이 소장님께 보고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에 김경준 어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기품이 느껴졌으며 미국에서 김경준을 상위 몇%에 드는 인재로 키웠는데 한국에서 징역 8년형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플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동료직원이 김경준 어머니와 얘기하는 동안 서로를 존중하며 부드러운 분위기였는데 한국 교정기관 현실과 우리 소 입장을 얘기하자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였는데 총무과장이 돌아오자 목소리 톤은 낮아졌지만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시키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김경준과 관련된 모든 것은 법무부에 보고를 하고 진행시켜야 했고 일반 수용자도 다른 지역에서 수술할 경우 상급기관의 허가가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었기에 김경준의 세브란스병원 수술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일반수용자와 똑같이 처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원들 모두 김경준이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받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법무부에서 김경준의 기저세포암 수술을 세브란스 병원에서 하도록 하였그로 인해 직원들이 며칠 동안 숙박업소에서 자면서 김경준을 지키며 교대 근무를 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몇 달 후 총무과 근무를 마치고 보안과에 들어가 야간근무를 할 때 김경준이 수용되어 있는 사동 순찰을 돌 때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준과 어느 직원에게 누군가에 대해 물었을 때 "자신이 가지고자 물건이 방안에 있을 때 문이 잠겨 있고 열쇠가 없다면 보통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쇠를 찾아 방문을 열고 물건을 가져올 텐데 그 사림은 열쇠 찾지  않고 벽을 부수고 들어가 물건을 가지고 나올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는데 김경준은 상당히 해박하고 표현력이 좋았다. 직원들은 김경준에게 특별히 잘 대해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말들이 많았으며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고 한 사람은 범죄자가 되어 징역을 살고 있었으며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교도관인 내 생각은 재판부의 판단과 달랐다. 대한민국 최고의 큰 사기꾼이 누구인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2015년 교감으로 승진하여 대전교도소로 전출 가서 야근팀장을 할 때 미전향 장기수 등 공안 사범 및 JMS 등 비중 있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 독거사동 및 조사, 징벌 사동 팀장을 할 때 담당 근무자가 내게 와서 흑금성 박채서 수용자가 교도소에서 자신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려 한다며 수용자가 교정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긴 사례가 한건 있는데 그 사건 관련 내용을 샘플로 삼아 소송 서류를 작성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였다. 담당 직원이 "계장님! 천안에서 오셨죠?"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김경준 잘 아냐? 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교정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긴 사람이 바로 김경준이었던 것이다. 접견 관련 소송이었는데 변호사 없이 김경준이 직접 서류를 작성하여 이긴 사건이었다.

흑금성 사건은 1990년대 중반, 대북 공작원의 정체가 드러나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안전기획부의 대북 비밀 공작원이었던 박채서의 암호명이었다. 박채서는 육군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군정보사령부에서 일하다가 1991년부터 대북 공작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98년에 안기부에서 해고되었고 이후 대북활동에서 일종의 비선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 이중간첩 행각이 발각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수용되어 있었다. 출소를 1년 앞둔 시점의 그를 보게 된 것이었다. 우리 부 담당 직원이 박채서 씨와 신뢰를 쌓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으며 내게 들려주고 있었다. 당시 자신은 억울하며 자신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실제로 출소 후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황정민 주연의 "공작"이 박채서 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그 사건중 하나가 BBK, 흑금성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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