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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21. 2024

<3> 2019, 기생충

5년이 지났는데

2019년도에 <기생충>이 개봉했을 때가 아직 기억 난다. 황금종려상의 명성으로 천만영화 벽을 쉽게도 뚫었다. 의외로 내가 기생충을 보게 된 건 개봉 당시가 아닌 몇 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관람하지 않은 이유를 꼽으라면 매우 자자했던 주변인의 악평이었다. 물론 이제는 내가 직접 보고 줏대 있게 판단하자는 파지만……. 아무튼 개봉 당일 기생충을 보고 난 친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데 너무 찝찝해!


실제로 기생충을 보기 전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제아무리 스포일러를 피하려 해도 기생충이 우리 사회 빈부격차, 사회 현실을 꼬집는 문제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기에는 쉽지 않았다. 사람을 돈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돈을 기준으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구분한다면 나는 명백하게도 못사는 사람 쪽이었고 기생충의 후기에 방어 기제가 생겼던 것도 같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영 천만 영화를 피할 수 있을 수는 없다. 줏대 있는 판단력의 필요성. 그래서 봤다.



눈치 채지 못하는 빈곤



“제시카는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기생충을 봤다면 잊을 수 없는 장면과 노래다. 부잣집에 들어가기 전 그들은 자신의 행색을 가다듬고 꾸미기 위해 본인의 모습에 거짓을 꾸민다. 영화의 상류층으로 표현되는 집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우와 기정은 잘 사는 척을 시작한다. 기택의 가족이 행색을 갖춘 모습으로 등장하면 연교를 비롯한 부잣집 가족들은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사랑까지 하는 수준이다.


영화적인 요소로 과장 되긴 했으나 이는 현실과 크게 동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상에서는 반지하의 숨기지 못한 냄새로 기택의 가족과 관련한 특징을 부각하나, 그 냄새는 그들의 거짓을 눈치 채는 요소로 기능하지 못한다. 빈자의 편견은 번지르르한 말과 위조 서류로 부수어진다. 누군가 가난하고 못살기 때문에 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미디어가 만든 갖은 편견으로 그들과 거리를 둘 뿐이다. 임대거지나 이백충이라는 말이 기사로 등장하는 시대, 못사는 사람을 배척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집으로 침투했을 때도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직접 눈치도 못 챌 편견에 격차를 두어 하는 차별의 실존은 아이러니 하다.





비가 내리면 같이 내리는 삶



<기생충>은 비를 기준으로 바뀌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택의 가족에게 문광과 김기사는 그들과 경쟁 관계에 속한 이들이다. 두 사람을 쫓아내 동익 가족에 취업을 한 그들과 대적을 이룬다. 특히 문광과의 경쟁 관계는 비 오는 날 절정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또한 한 가지 사회 비판이 드러난다. 빈곤층으로 대표된 두 가족끼리의 싸움, 결말에 닿기 전까지 그들은 자본가에게 덤비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서로' 싸운다. 그들의 대적 관계가 그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영화와 사회는 더욱 아이러니해진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한때는 기사화가 되어 욕까지 먹던 이동진의 <기생충> 한줄평론이나 나는 이처럼 정확한 말로 이 영화를 표현한 한줄 평이 있을까 싶다. 비가 오는 그날, 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의 가족은 비에 집을 잃지 않기 위해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하강은 더 큰 하강을 부르고 최종적으로 기택은 반지하가 아닌 진짜 지하까지 내려가게 된다.


동시에 비 오는 날은 차이를 보여 준다. 기택의 가족은 비가 와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가 무너졌지만 동익의 가족은 텐트를 치고 다음날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혹자에게는 위험이라 볼 수도 없는 작은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곧 생존으로 직결된다. 쏟아지는 처참한 비에서 사회 현실이 계속 펼쳐진다.



막을 수 없는 호우를 비롯한 자연재해는 물론이거니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돈까지 이 모든 것이 <기생충> 가족의 삶에 담겨 있다. 월세를 내지 못한 취약계층의 기사, 빈곤을 비관한 죽음의 기사 등이 잊을 만하면 대두가 된다. 취약계층을 대표하는 반지하 거주로 나온 기택 가족에 못지 않게 쪽방에 거주하며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마저 있다.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가난할수록 더 삶에서 멀어진다.


영화가 찝찝하다는 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는 몰락을 그리고 극복할 수 없는 사회를 비판하고 나타내기에. 로봇이 인간을 너무 닮으면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일어난다고들 한다. 가상의 영화가 닮을 수록 불쾌한 이유는 <기생충>이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생충>이 세게에 사회를 비판한 이후 우리 사회는 5년간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무래도 '찝찝하다'와 '충격'의 가벼운 감상을 넘기는 현실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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