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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Oct 25. 2023

3년의 안식년

이놈의 집구석을 나가야 한다

첫째가 곧 만 세 살이 된다. 그러니까 집에서 육아만 한 지 3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동안 둘째가 태어났고, 그 둘째도 15개월이 되어 간다. 사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육아를 하게 될지는 몰랐다.


3년은 길으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다. 그동안 논문도 몇 편 쓰고, 학술대회 발표나 토론도 가끔 하곤 했지만,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하진 않았다. 남들에겐 나름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 둘러 대긴 했지만 솔직히 말 그대로의 ‘안식(安息)‘은 결코 아니었다. 육아가 어찌 편안한 휴식일 수 있겠는가.


동네 이웃님들과 독서 모임을 하면서 나는 정말 외향인이구나 싶었다. (보통 mbti 테스트를 하면, 절대 내가 수긍할 수 없는 ”ENFP”가 나오곤 했는데, 어쨌거나 “E”는 맞는 듯…!) 단지 몇 시간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업된 듯한 느낌적 느낌. 평소 조신한 엄마 노릇하느라 참 힘들었다.


거기다 나는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집에서도 얼마든지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는 더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뭐든 혼자 오래 하면 지치게 된다. 나에게 있어 사람이란 적절한 자극을 통해 나의 나태함이나 맹점 등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질투는 어쩌면 나의 힘이기도…)


무튼 요즘은 ‘이놈의 집구석, 제발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마 오랜 기간 독박육아를 한 부모들은 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가들이 있으니 혼자 나갈 순 없다. 나가더라도 아가와 함께이다 보니 행동반경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거기다 아이가 한 놈이 아니라 두 놈이게 되면 혼자만의 외출은 훠어어얼씬 힘들어진다.


그나마 나의 남편은 착하고 아내를 사랑하기에 기꺼이 두 아들을 봐주어, 아내가 마음 편하게 외출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사실 이럴 때마다 남편이 출근할 때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누구보다 안심할 수 있는 아내에게 내 자식을 맡겨 놓고 집을 나간다는. 솔직히 얼마나 마음이 놓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두 아들놈으로 인해) 카오스인 집을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이 있을까.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만약 내가 일찌감치 사회 활동을 하고자 했다면 역시나 둘째를 낳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하나만 있으면 어찌 되었든 엄마는 우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이 욕심도 있었고, 첫째가 워낙 순하기도 했기에 나는 둘째라는 카드를 선택했고, 그만큼 나 자신의 사회적 욕망도 속으로 삭혀야만 했다.


문제는 이 안식년이 3년으로만 끝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것. 첫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던 학부모 운영위원회도 둘째가 아직은 너무 어린 것 같다는 이유로 거부 아닌 거부를 당한 나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백번 천번 맞긴 하다.) 애기 엄마들은 여러 면에서 실제보다 훨씬 무력한 존재라는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자식은 얻었지만, 솔직히 말해 자신감은 조금 잃은 것 같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무엇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런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엄마들 사이에는 처녓적 시절을 “전생”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애가 딸린 엄마는 애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사회 내에서는 마이너스가 된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말 걸 그랬나 하면, 그건 아니다. 아이로 인해 나의 삶이 180도 달라지고, 그게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되었더라도 그 부조리를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자식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번식’이라는 원시적이고 동물적 욕구이든 뭐든 내가 자식을 낳지 않고 자기 성장만 하는 삶보다 나에게는 더 와닿는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단순히 자기 계발과 자아 실현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훨씬 더 큰 목적이 있고, 거기에는 자식 양육이라는 몫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나의 엄마는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을 택하긴 하셨지만 거의 정년까지 일을 하셨다. 어쩌면 그런 삶을 택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가로 우리 형제들은 워킹맘 엄마에게 애정결핍이 어느 정도 씩은 있었다고 본다.) 어쩌면 엄마와 자식은 자신의 욕구를 놓고 투쟁하는 관계인지도…! 밖에 나가려고 엄마와 그런 엄마를 집안으로 붙잡는 자식들의 형국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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