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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Nov 07. 2023

두 아들 양육과 난초 기르기

적당한 양육이 주는 즐거움

두 아들이 어느덧 더 자라 엄마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규칙성을 담보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들이 예상가능한 시간에 일어나고 자며, 이런 음식을 이때 먹으면 잘 먹는다는 나만의 일가견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육아가 조금 더 쉬워진다. 척 하면 척이 된다.


이와 더불어 난초에 꽂혀 난을 하나 둘 모으고 있는 나에게 이 녀석들을 돌보는 것에 나름의 일가견이 생기는 경지에도 이르렀다. 경력이 오래된 식집사들에게도 진입장벽이 높은 식물종이 바로 난초이다. 다소 비싸기도 하지만, 잘 죽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난초 하나를 거의 7년 넘게 키우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고, 그에 매력을 느껴 초보 난쟁이가 된 것이다.


난초를 죽이지 않으려면 공부가 좀 필요하다. 육아를 하기 위해 기초적인 육아 상식이 필요한 것처럼. 그리고 이 녀석들은 다른 식물들처럼 일정한 간격에 맞춰 물을 주면 쑥쑥 잘 크는 애들이 아니다. 난초는 늘 뿌리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런데 뿌리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그래서 뿌리를 아예 볼 수 있게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일명 수경재배. (혹은 부작에 붙여 키우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너무 건조해서 말라 죽임.) 하지만 수경으로 키우다 보면 너무 천천히 큰다. 혹은 곰팡이가 필 수도…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잎을 보거나 분을 들어봐서 이 녀석이 얼마나 배고픈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난초를 키우는 데는 기다림의 미덕이 필요하다. 마음이 간다고 너무 자주 물을 주면 안 되고, 그들의 컨디션을 늘 면밀하게 예의주시해야 한다. 아이를 키울 때 울음소리를 듣고 이게 배고파서인지, 졸려서인지, 아니면 정말 어디가 아파서인지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이건 이론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몸으로 경험해서야만 체득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육아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생겼고, 난초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의 감이 생긴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쉽냐 하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식물이다. (그래서 아기를 보느니 밖에 나가 밭 맨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 무언가를 기른다는 것은 늘 내가 어떤 존재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어느 정도 여유 있게 할 수 있다면 세상에 그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육아가 쉴 새 없는 노동이라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의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솔직히 자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책 보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한동안 그럴 여유도 없었고, 잠깐 독서를 하다가도 아이들 때문에 이내 집중이 흐트러지는 일이 허다했는데 말이다.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정체성과 동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제야 조금씩 나만의 세계가 다시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키우고, 난초를 기르는 것이 보람되고 재밌으며 이것도 어쩌면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들이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으며, 가끔 예쁜 꽃을 피워 웃음 짓게 한다는 점이 좋다. 우리 두 아들의 함박웃음이 유난히 귀여운 늦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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