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운영위원회를 하면서
올해 두 아들 녀석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학부모 운영위원회 위원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회의도 불려 나가고, 원장님들을 자주 접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그전에는 없던 엄마들 간의 교류도 생겨났다.
가방끈이 긴 엄마들이 대체로 그러한데, 학부모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내면에는, 나는 배운 사람이라 아무 하고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눌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그런 오만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엄마들의 다소 감정적인 대화가 그들에게는 피로를 유발한다.
나 역시 어딘가 부족하지면서도, 또 좀 배웠다고 잘난 체하는 그런 재수 없는 엄마일 수도 있지만, 학부모 모임은 생각보다 생산적이지 않다고 본다. 모든 대화의 주제가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나열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면 그쪽으로 우루르 모여드는 군중심리가 어느 곳보다 강한 곳이 바로 학부모 모임이다. (맘카페, 육아 단톡방 등 모두 여기에 포함)
요즘의 이슈는 바로 “추석 명절 선물”이다. 어느 엄마 하나가 우리 다 함께 갹출해서 선생님들께 좋은 선물을 해드리자고 말을 꺼낸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정말 감사하다. 그렇지만 그 마음과 선물을 할 것인지, 선물을 한다면 얼마의 수준에서 할 것인지의 마음들은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저렇게 누군가가 큰 청사진을 제시하면 반대하는 마음을 내비치기가 어려워진다.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인데, 나는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소신 발언을 했다.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일단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공무 수행을 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선물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법대로 원장 선생님을 제외하고 선생님들에게만 선물하면 되는 걸까? 원 내부의 분위기상 그게 안 된다는 걸 알 것이다. 장이 받지 않는데, 그 밑에 선생님이 받는 게 마땅한가?
그리고 어린이집 내부에는 곳곳에 cctv가 있다. 나는 그저 조그만 선물이라고 준 것이 물적 증거로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감사의 마음 앞에 이렇게 수많은 법의 감시가 있고, 이런 것을 헤아리면 안 하는 게 맞다. 다른 엄마들의 부화뇌동을 무릅쓰고 이처럼 재수 없는 반대의견을 제시했으니 뒤에서 욕도 먹고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법을 떠나 좀 더 넓은 견지에서 보면, 나는 김영란법의 취지를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눈치 보는 분위기를 없애자는 것이다. 누군가 선생님에게 선물을 줬는데, 나는 안 주면 어떨까. 내 아이를 선생님이 좀 더 예뻐해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생님이 감사해서라기보다는 ‘내 아이를 다른 애보다 신경 써 주세요.’라는 이기적인 동기로 선물을 주게 된다. 선물과 뇌물은 이렇게 한 끗 차이다.
어떻게 보면 학부모 운영위원회에 속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아이 조금이라도 신경 써서 봐달라는 욕망이 어느 정도는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선생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원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즉 운영위원회 위원이라는 지위 자체가 특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어제는 첫째의 땅콩밭 체험활동이 있어 학부모로서 함께 현장에 나갔다. 가을이라는 절기가 무색하게 폭염주의보다 발동하여 매우 더웠고, 아이들도 지쳐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하나하나 신경 써서 다치지 않게 해야 하고, 아이들의 목을 추스를 수 있도록 물을 따라 주어야 하고, 무지하게 무거운 땅콩 마대를 들고 가야 한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선생님의 노고를 덜어드리는 일은 사실 선물 하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선생님이 좀 더 수월하게 일을 하도록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너무 떼쓰지 않도록, 스스로 많은 일을 혼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생님께 더 도움이 되는 일이다. 등하원 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하는 것도 매너이다. 그러니까 자기 아이를 착하고 바른 아이로 키우라는 것이다.
너무 꼰대 같은 말을 한 것 같아 여러 엄마들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눈치만 보면서 다수에 동조하기는 싫다. 욕 좀 먹더라도 엄마로서 그릇된 말이나 행동은 안 하고 싶다. (쓰고 보니 또 내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