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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Feb 08. 2023

덩실한 덩어리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차갑고 외로운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때때로 혼자 있을 때 흐릿했던 생각과 감정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방해와 소음 없이 주변과 걱정이 선명해지듯이. 하지만 때때로, 괴괴한 적막에 둘러싸인 나를 발견할 때 찾아온 불청객이 선사한 압도적인 질량에 숨이 막힐듯하다.


지난한 희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고독을 둘러메고 막막하고 숨 막히는 이야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 구덩이를 빠져나와야 다른 세상으로 향할 수 있다. 내 세상과는 다른 세계의 시간 속으로 옮겨지고, 잠깐 동안, 지겨운 굴레를 제쳐뒀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막연하지만 새벽빛이 비치는 축축한 습기가 연해지는 그곳은 나의 판도라 행성. 


묵직한 덩어리가 두둥실 실룩대는 그곳을 나를 색색의 치명적인 낯섬으로 망각하게 했다. 구름이 모양을 바꾸고, 바꾸는 광경을 본다. 그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떤 것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영원을 상기시킨다. 아릿한 감정이 녹슬었던 슬픔에 광을 내고, 쾨쾨히 묵은 평화로움을 사근한 봄 이불솜으로 속아냈다.


구름은  항상 나에게 매혹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모습을 좋아했고, 의뭉스러운 형상으로 몽상이 풍성해짐을 감사했다. 때론 칙칙한 어둠에 물들어 진득한 빗방울로 청량한 연주를 할 때면 깨를 벗고 춤추고 싶었다. 삭은 슬레이트 냄새, 먹먹한 먼지 냄새, 부서진 빗줄기의 파편으로 뭉글한 시멘트 마당,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친 물줄기를 소화하지 못하고 결국 질식해버린 마당의 하수 구멍. 삭은 슬레이트 지붕의 공명을 들으며 뻣뻣하게 줏대를 세운 빗살에 넋이 나간 어릴 적 내가 보인다.


고독한 순간에는 길을 잃고 토라지기 쉽다. 감당 못할 치졸한 옹심이 남을 탓하기 전에 못난 객을 쫓고 포슬한 날 찾아야 한다. 못나고 구질한 날 떨구고 덩실히 떠 있는 덩어리를 좇고 있는 날 데리고....달뜬숨을 뱉으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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