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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Jul 04. 2022

죽음마저 뛰어넘는 사랑

연극 <엄마 이야기>

 연극 <엄마 이야기>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한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대에는 거친 질감의 높은 벽이 세워져 있으며 곳곳에 창문과 문이 나 있다. 벽 앞에는 잎사귀들을 잃은 채 말라버린 나무들이 세워져 있어 전반적으로 황량하고 건조한 느낌을 자아낸다. 밝은 색채를 가진 기존의 아동극 무대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다. 본격적인 연극의 시작 전, ‘죽음’이 나타나 관객들에게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를 한다. 백발의 머리와 창백한 얼굴, 회색빛의 거대한 손을 가진 죽음의 모습은 그가 환상적인 존재임을 암시한다. 죽음은 연극 속에서는 죽음과 같이 추상적인 것들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극 속 등장인물을 하나씩 소개한다. 무대 곳곳에서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이는 극의 세계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출처: 종로문화재단, 아이들극장 홈페이지


 극이 시작되면, 어느 겨울밤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 곁에서 7살 아들 태오가 심한 열병으로 죽게 된다. 죽은 태오 앞에, ‘죽음’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태오를 데리고 저승의 길로 떠난다. 작품은 엄마가 태오를 되찾기 위해 죽음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 여정을 그린다. 엄마는 태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들에게 항상 불러줬던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랫소리를 들은 죽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아름답고 따스한 목소리에 매혹되고, 노래를 빼앗아 가려고 한다. 그렇게 맑고 아름다운 엄마의 목소리 위에 죽음의 낮고 어두운 목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엄마는 아들을 데려간 죽음에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지만, 끝내 죽음은 엄마로부터 노래를 앗아간다. 이 장면은 아들과의 소중한 기억이 담긴 노래를 지키려는 엄마와 노래를 훔쳐 그녀를 좌절시키려는 죽음의 대립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생의 세계에 있는 엄마가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존재했다. 태오를 향해 다가설수록 엄마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된다. 강을 건너기 위해 괴물 물고기에게는 두 눈을 떼어주고 태오가 있는 죽음의 정원에 들어서기 위해 문지기에게는 옷과 젊음을 내어준다. 어둠이 가득한 숲에서는 살아있는 존재의 침입으로 화가 난 숲의 정령으로 인해 거센 바람과 맞서야 했다. 엄마는 숲에 홀로 있던 가시나무에게 도움을 부탁하지만, 나무는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사실 가시나무는 내면에 큰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와 뾰족한 나뭇가지들에 상처를 입고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함께 떠나버리는 이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절한 엄마의 모습에 가시나무는 죽음을 뒤따라갈 방법을 알려준다. 다가서면 분명 다칠 거라는 가시나무의 경고에도, 엄마는 숲을 떠나기 전, 망설임 없이 다가가 가시나무를 껴안고 아무 나뭇잎 없이 앙상하게 메말라 있던 나무에 한 송이의 붉은 꽃이 핀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여정은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희생할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드러낸다. 또한, 주인공인 엄마는 고유한 이름 없이 ‘엄마’ 역으로 칭해져, 아이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확장한다. 


 상징적인 오브제와 의상의 활용은 작품이 가진 기괴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완화했다. 괴물 물고기는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엄마가 내려놓은 눈을 가져가고 새로운 눈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물고기는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새로운 눈이 어떠냐며 자랑스럽게 묻기도 한다. 그런 물고기의 헤엄을 표현하는 배우의 움직임은 장면에 생명력을 더했다. 문지기는 배우가 상반신에 인형 탈을 쓰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따라서 관객은 인형과 함께 배우의 하반신만을 볼 수 있는데 문지기가 엄마로부터 젊음을 얻자, 입고 있던 인형을 벗어낸다. 처음으로 무대에서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고 이는 이전의 모습과 확연한 대비를 보여준다. 문지기 곁을 지키는 사냥개인 ’검둥이‘ 역할의 배우가 보이는 역동적이고 활발한 움직임은 장면에 순간적인 몰입도와 흥미를 더했다. 


출처: 종로문화재단


 극 속에서 ‘태오’는 대부분 인형을 통해 표현되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배우가 줄 인형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태오가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인물로 표현된 순간은 단 두 번이다. 태오가 죽음과 함께 떠난 뒤, 엄마가 살아있던 태오의 모습을 회상할 때와 기나긴 여정 끝에 태오를 만났을 때, 태오는 인형이 아닌 배우를 통해 표현된다. 엄마가 태오를 통해 가장 극적인 감정을 느낌에 따라서 태오는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정원에 들어간 엄마는 끝내 태오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에 태오는 무서움을 느끼며 도망쳐버린다. 엄마는 그런 현실을 부정하며 정원의 꽃을 꺾어 죽음을 협박하려고 하지만, 죽음에 의해 그 꽃들은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함부로 꽃이 꺾인다면, 그 아이들의 영혼은 이승을 떠돌게 되는 것이었다. 꽃들을 손에 쥐고 있던 엄마는 결국 모든 꽃을 놓아준다. 태오는 엄마에게 이제 자신은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결국, 엄마는 아들 태오를 죽음의 세계로 보내준다. 

 죽음과 모성이라는 소재가 아이들에게 다가서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지만, 다채로운 연극적 요소의 활용과 정교한 서사를 통해 이를 깊이 있게 다뤄냈다는 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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