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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Oct 18. 2022

예술을 행위하는 방식

2020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오픈 스튜디오 <싹 브리핑>

 코로나 19로 많은 거리예술 축제가 취소, 연기되는 상황 속, 2020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Seoul Street Arts Creation) 오픈 스튜디오 <싹 브리핑 SSACC BRIEFING>이 10월 22일–25일, 4일간 개최되었다. 간추린 간단한 보고나 설명이라는 ‘브리핑’의 뜻에 걸맞게, 이번 <싹 브리핑>은 국내 거리예술 분야 유망 예술가 양성 프로그램 [서커스 펌핑업], [거리예술 넥스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공연과 거리예술, 서커스 장르 활성화를 위한 창작지원 사업 과정의 리서치 결과물을 선보이는 [거리예술, 서커스 창작지원: 리서치]를 오픈 스튜디오 형태로 구성하였다. <싹 브리핑>이 개최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특색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수돗물을 공급하던 옛 구의취수장을 2015년 리모델링한 국내 최초의 거리예술, 서커스 창작기지이다. 따라서 리서치 결과 피칭, 쇼케이스, 전시는 결과물의 성격과 부합하는 야외마당, 제1,2 취수장, 경비실 앞, 레지던시의 옥상, 계단과 같은 다양한 공간들에서 진행되었다.


창작자들의 시선과 그것의 확장

 [거리예술, 서커스 창작지원: 리서치] 결과 발표 과정으로 취수장 내부의 작은 연습실 공간에서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가려진 그러나 극명한 그것> 피칭이 진행되었다. ‘코끼리들이 웃는다’는 사회에 존재하는 각 커뮤니티와 예술의 공간을 확장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피칭에서는 시민 참여 공연의 확장을 목적으로, 제주에 거주하는 예멘 난민, 청소년 집단, 성 소수자 집단 등 다양한 커뮤니티와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실제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리서치 진행 상황을 공유하였다. 직접 커뮤니티와 대면하고 부딪히기 전에는 그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일한 편견만을 가지게 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기획 단계에 있는 14주 차 프로젝트를 실행해 장소와 참여자의 제약 없이, 누구나 어디에서든 참여 가능한 공연 형식 개발을 목표로 하는 결과물까지 발전시킬 것임을 밝혔다.


 또 다른 리서치 피칭이었던 <요람의 기억: 홀로의 공간>(아이모멘트)은 앞선 <가려진 그러나 극명한 그것>과 비교해 리서치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드러나기 시작한 프로젝트로, 5회의 쇼케이스 후 피칭을 진행했다. <요람의 기억: 홀로의 공간>은 반복되는 흔들림이라는 요람과 흔들의자의 특성을 이용하는 배우의 군무와 퍼포먼스로 개인 고립과 고독 그리고 일상의 리듬을 표현했다. 피칭에서는 이 오브제들이 공연의 요소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닌, 일상 공간 속에서 시민들을 위한, 시민들에 의한 공공 오브제로 기능하도록 개발하는 것까지 목표로 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퍼포먼스 자체가 가지고 있는 홀로 있음의 시간 속 내면의 고독과 사색이라는 주제 의식과 함께 작품의 확장과 실제적 적용을 고찰하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프로젝트의 실현 방식은 상이하지만, 두 피칭 모두 공통적으로 ‘거리’ 예술만이 가지는 특성을 통해 예술의 공간을 제약 없이 확장하고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와 노력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동시대적인 시선과 감각들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자 했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현시대 흐름 속에서의 단체의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이 전달되었으며 이후의 발전 과정과 결과물을 기대하게 만든 피칭들이었다.


  거리예술X서커스 이동형 전시 <수집가들>(창작그룹 노니)는 2개의 컨테이너 박스에 각각 거리예술의 역사와 국내외 종사자, 비 종사자들의 인터뷰 아카이빙을 전시했다. 타임라인 위에는 다양한 거리예술의 사진들과 주요 키워드들, 시대에 따른 거리예술의 흐름이 정리되어 있었다. 전시 곳곳에 AR 증강현실을 통해 관련 이미지, 아이콘을 드러내어 전시에 재미를 더했고, 인터뷰 내용이 적힌 책자들과 QR코드를 함께 활용해 관람자가 그 인터뷰의 녹취록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귀를 통해 들려오는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활자와는 또 다른 인상을 느끼게 하였다. 순간 예술이라는 거리예술의 특성에 따라 그저 소멸해버릴 수 있는 순간들을 세부적으로 기록해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전시였다.      


열려있는 공간 속에서의 시도들

 거리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거리예술의 특성에 따라, 이번 <싹 브리핑>에서도 공간을 이동하며 관객과 퍼포머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들이 존재했다.


 <물먹은 기억>(김민주)은 ‘기억’을 주제로 다룬 관객 참여형 이동형 공연으로, 물이라는 두려운 기억을 마주하고 극복한 퍼포머의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퍼포먼스이다. 센터의 입구에 위치한 경비실 앞에서 대기하던 관객들은 일렬로 줄을 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일종의 기차놀이를 하기 시작한다. 출발 직전, 해녀복을 입은 퍼포머가 등장하고 그를 선두로 관객과 출연진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준비된 짐볼들이 쏟아져 내려와 거리를 채우고 퍼포머는 그 짐볼을 이용한 무용과 움직임을 드러낸다. <물먹은 기억>은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기 어려운 짐볼의 특성을 개인의 기억과 연결해 퍼포밍을 구성했고, 관객 또한, 그 짐볼에 앉아 퍼포머의 움직임을 관람하게 된다. 불안정한 짐볼 위에서 유영하는 듯한 움직임을 통해 쉽게 통제되지 않는 기억이라는 소재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물먹은 기억>과 같이, 관객 참여형 공연인 <남겨진, 남은>(김현기)은 관객을 극의 구성 일원으로서 작품에 참여시켰다. 관객은 퍼포머를 따라, 레지던스 건물을 돌아다니며 죽음과 관련한 인물들의 에피소드와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퍼포퍼는 무덤을 파듯, 흙을 퍼내거나 흙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퍼포머의 재치 있는 움직임과 춤으로 작품의 분위기가 무겁게만 유지되지는 않았다. 극의 마지막에서 일부 관객은 자신의 죽음 이후 남을 것을 상상해 이를 아크릴판에 직접 작성하고 전시하는 시간을 갖는다. 바위 주변에 향들이 피워져 있고, 그 위에 놓인 각기 다른 묘비명들은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을 자아냈다.


 개인들 간의 소통 단절 문제를 중점으로 다룬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윤예은)은 레지던시 건물의 계단 구조를 이용한 작품이었다. 반복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문을 여닫지만, 서로 마주치지도 소통하지도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그려냈고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공을 활용해 관객과 호흡하며 소통 단절에서 벗어나, 화합하는 장면을 구성했다. 작품의 내용과 주제 전달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도 했지만, 관객 참여를 통한 소통과 열린 공간 속에서의 작품 확장 가능성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음악의 시간성에 주목해 거리에 존재하는 소리를 찾고, 그 소리들과 움직임의 싱크를 연결해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싱크싱크 프로젝트>(삼세판), 불규칙적인 드론과 파쿠르의 움직임을 융합시키는 <프렉탈 실험>(창작집단 숨비)와 같은 실험적인 시도를 보이는 작품들도 공연되었다. 또한, 야외마당과 별도로 설치된 서커스 텐트에서 공연한 [서커스 펌핑업]에서의 <원대한 소리>(최진호), <욕망이란 이름의 날개>(이민영), <적응>(이석원), 재주 넘어 말 걸기>(우보람)은 발전 과정 단계에 있는 작품들로 완성도 면에서 미흡한 지점들은 존재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동시대 서커스의 시도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원대한 소리>는 마술 공연으로 마술, 탭댄스, 음악의 요소를 활용해 관객의 이목을 이끌었고 후에 진행될 공연까지의 관심을 유발했다. 야외마당에서 공연된 <너울>은 조선 시대 여성들이 외출 시, 필수적으로 착용했던 너울을 모티브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주요 오브제인 흰색의 긴 천을 통해 강렬한 공중의 움직임을 만들어냈고, 기존의 서커스 통념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현대 서커스를 시도한 점이 돋보였다.


 이번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오픈 스튜디오 <싹 브리핑>에서 접한 모든 작품에 창작자들의 현시대 속에서 거리예술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시도가 반영되어있었다.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공연 중반에 관객으로 합류하고, 제한 없이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모습들에서 거리예술만의 확장성이 드러났다. 향후 작품들이 발전한 형태로 거리에서 펼쳐질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되는 동시에 창작자들 고유의 방식으로 예술을 ‘행위’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접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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