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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승환 Feb 06. 2024

원주 아카데미극장 재생이 ‘전통시장 살리기’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 운동의 의미

2016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 운동이 아카데미극장 철거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 보존운동을 주도했던 원주시민과 이 운동에 연대했던 영화인 등 26명을 공무방해와 업무방해를 이유로 경찰에 고발했다. 원주시의 고발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탄원과 후원을 받고 있다.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 탄원서 연명 동참하기 https://forms.gle/ehD4hjT5rR9J37ra7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종종 잊어버리는 것 중 하나는 사람이 많이 찾는 번화가에는 상점들이 늘어선 시장과 사람들이 줄을 서는 영화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 도시의 번화가에도 상점가와 함께 영화관이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안에 영화관이 있는 풍경은 비단 오늘만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중반 전 세계 많은 도시의 백화점에는 영화관이 입점해 있었다. 우리나라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중일전쟁이 장기화하던 1937년 서울의 미츠코시, 미나카이, 조지아 등 세 곳의 백화점은 미나카이백화점 뒤편에 영화관을 지어 일정 금액 이상의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무료입장권을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고, 이에 대응해서 화신백화점은 6층 다목적홀을 영화관으로 개조하여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화관을 운영했다.


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 신관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상점가와 영화관이 함께 있는 풍경은 원주시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을 전후하여 미군이 만든 C도로(현 평원로)에 원주극장(1956년), 시공관(1962년), 아카데미(1963년), 문화극장(1967년)이 차례로 문을 열었는데, 이곳은 원주시의 전통시장인 중앙시장, 자유시장이 위치한 곳이다. 1950년대 초반 평원로에서 시작된 중앙시장은 1965년에 등록된 원주의 첫 상설시장이다. 1970년 지상 2층 규모의 구조물이 준공되며 현대화된 중앙시장은 영서권의 종합쇼핑센터로 기능했다. 중앙시장은 중앙로의 영화관과 같은 시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중앙시장이 먼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주 시공관. 원주지명총람 제공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유통산업은 백화점과 재래시장이 양분하는 구조였으나, 유통시장 개방과 대형마트, 무점포판매업 등으로 다변화되는 구조 변화에 따라 대형업체가 주도하는 ‘기업형 유통’으로 전환되었다.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 이후 대형마트는 매출액이 1998~2008년까지 연평균 19.9% 성장하면서 제1의 소매업태로 부상하였다. TV홈쇼핑, 인터넷쇼핑, 오픈마켓 등 무점포판매업은 매출액이 1999~2008년까지 연평균 32.5%라는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으며, 편의점 또한 점포 수가 1999년 2,339개에서 2007년에는 8,903개로 증가하고 매출액도 1997~2008년까지 연평균 15.8% 성장하였다. 반면 백화점은 경쟁 업태의 부상으로 매출액 성장률이 1997~2008년까지 연평균 4.1%에 불과했고, 재래시장은 매년 시장 수와 종사자가 줄어들며 쇠퇴했다. 


원주의 재래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중앙시장은 1층의 분식집, 소고깃집, 한복집, 2층의 금세공 등 특성화된 상점만 제 기능을 유지할 뿐이었다. 혁신도시와 신도시의 개발은 도심의 심장부인 원도심의 공동화를 가속했고 중앙시장으로 유입되는 인구 감소는 도심 상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중앙시장이 쇠락하던 시절에도 평원로를 지키던 영화관은 2005년 10월 단구동에 롯데시네마가 개관한 후 2006년 문화극장을 시작으로 모두 문을 닫았다. 


1960년대 원주 중앙시장. 원주 중앙시장 60년, 삶을 기록하다. 2017 강원아카이브


원도심에 위치한 영화관의 쇠락 원인은 재래시장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1990년대 후반 제일제당과 동양그룹은 외국계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자와 합작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 사업을 시작했다. 제일제당은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Golden Harvest), 호주의 멀티플렉스 빌리지 로드쇼(Village Roadshow)와 합작하였고, 동양은 미국의 로이스 씨네플렉스(Loews Cineplex)와 합작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출했다. 경험이 많은 외국 사업자와 함께 준비한 멀티플렉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직접 소비가 벌어지는 영화관이 영세성에서 벗어나면서 영화산업 전체가 제대로 산업화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고, 상영시장의 잠재적 수요도 늘어나게 되었다. 반면 기존의 영화관들을 경쟁력을 잃고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재래시장의 쇠락 이후 원도심을 지키던 영화관마저 문을 닫자 원도심의 공동화는 심화하였다. 2000년대 초반 유통시장이 양극화되고 재래시장이 쇠락하자 2004년 ‘재래시장육성을 위한 특별법’ 이 법은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2006)으로 이어졌고 2010년 ‘재래시장’을 ‘전통시장’으로 명칭변경하였다.

이 제정되고 ‘재래새장 활성화 조치’(2004)와 ‘자영업자 지원대책’(2005)이 발표되었다. 지금 원주시가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차시설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근거가 바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 운동의 의미


2016년 시작된 아카데미극장을 재생시키자는 운동은 ‘전통시장법’의 목적과 다르지 않다. 아카데미극장 재생 운동은 ‘아카데미극장을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재생하자’는 시민운동이다. 과거 지역 공동체의 소중한 공간이었던 영화관은 유통시장 개방과 이에 따른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지원이 전무해 속절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영화관은 여전히 지역 공동체의 행복한 삶을 도모하는데 문화적·사회적·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다. “아직 건물이 남아있는 중앙시장 인근의 아카데미극장을 재생시켜 원도심은 물론 원주시의 지역 발전의 밑거름이 되게 하자”는 것이 ‘아카데미의 친구들’과 이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함께 하는 활동의 전부다.


이 활동은 원주시의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과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시장법에 근거해 원주시가 추진해 온 문화관광형 시장 사업과 가장 부합하는 시민 활동이 바로 아카데미극장 재생 운동이고 ‘아카데미의 친구들’의 활동이다. 원형을 보존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인 아카데미극장을 잘 재생시키고 운영하였다면, 원주 중앙시장은 전국 어느 전통시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2020년 이래 ‘레트로’를 새롭게 해석한 ‘뉴트로(New+Retro)’가 MZ세대의 메가트렌드로 인기를 끌고 있다. 뉴트로는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지 않고 산업의 지표까지 바꾸고 있다. 지난 세대에게 레트로는 ‘추억’ 일뿐이지만, MZ세대에게 레트로는 추억이 아니라 신선한 재미다. 전국의 영화관 중 대체불가능한 뉴트로인 아카데미극장은 중앙시장과 미로예술시장에 새롭고 신선하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가치를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다른 지자체의 전통시장은 절대로 복제할 수 없는 원주 중앙시장만의 독창적인 가치였을 것이다. 


원도심의 옛날 영화관을 유산으로 복원하여 지역 공동체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성화에 이바지한 일본의 사례와 지역 활성화를 위해 없던 영화관을 새로 영화관을 만들어 운영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다카다 세계관


다카다 세계관


니가타현의 조에쓰시에는 1911년에 설립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영화관 ‘다카다 세계관(高田世界館)’이 여전히 운영 중이다. 상설영화관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지만, 주류영화관에 밀려 성인영화관으로 운영되다 2007년 건물의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철거 위기를 맞았다. 일본의 영화유산인 이 극장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시민과 영화팬이 중심이 되어 보존 활동을 시작했고, 2009년 NPO법인 ‘거리의 영화관 재생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자발적인 활동은 극장 소유주의 마음을 움직였고, 소유주는 거리의 영화관 재생위원회에 극장을 양도했다. 극장을 인수한 거리의 영화관 재생위원회는 보존 방안과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계했고, 재생을 위한 모금 운동을 진행했다. 시민의 모금과 지자체 및 민간 재단의 보조금으로 복원이 진행되었고, 다시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의 복원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영화관의 활용이 최종 목적이라는 생각으로, 그래야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카다 세계관은 2009년 경제산업성으로부터 근대화산업유산 인증을 받았고, 2011년엔 국가등록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후카야 시네마


후카야 시네마


일본 사이타마현 북부에 있는 인구수가 14만 명의 후카야시에는 2002년 지역민들이 만든 영화관 ‘후카야 시네마(深谷シネマ)’가 있다. 1990년대 후카야시의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아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게 되자 시민들이 직접 영화관을 설립 운동을 시작했고, ‘NPO법인 시민극장 F’를 설립하여 원도심 활성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2002년 7월 후카야 시네마를 개관했다. 원도심에 극장이 없었으므로 폐점한 ‘사쿠라금고’ 건물을 영화관으로 개조하였다. 이후 8년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원도심 활성화에 이바지한 이 영화관은 2010년 시가지의 구획정리 사업에 따라 인근에 있는 폐점한 ‘시치우메 주조장’을 빌려 이전했다. 전국 유일의 양조장을 활용한 영화관이라는 독특함이 크게 홍보가 되었고, 영화관 외에 고서점과 카페, 갤러리 등을 함께 운영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57석의 작은 영화관이지만, 인근 지역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상영하면서 후카야 시외 지역에서도 이곳을 찾아 연간 2만 5천 명이 방문하는 영화관이 되었다. 


후카야 시네마 외에도 NPO법인 다카사키 커뮤니티시네마가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다카사키(シネマテークたかさき)’ 등 지역 재생 사업과 보조를 맞춰 설립·운영 중인 영화관이 존재한다. 


시네마테크 다카사키


- 2023년 5월 24일 상지대학교 학술정보원 6층에서 진행한 "[학술심포지엄] 원주 아카데미극장, 미래가치와 가능성"의 토론문.




원승환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산업과 독립․예술영화, 글로벌 영화산업에 대해 글을 씁니다.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관점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과거 글들은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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