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를 지배하는 멀티플렉스 3사와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영화진흥위원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상영관 시장이 외국과 달리 회복하지 못하게 한 일차적인 책임은 상영관 시장을 수요 독과점하고 있는 세 개의 기업에 있다.
영화관 총매출액의 95% 이상을 나눠 가지고 있는 수요 독과점 질서는 여러 많은 폐해를 낳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가격의 책정이다. 세 개의 상영기업은 자사의 부채(와 신종증권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요와 무관하게 가격을 책정했다.
세 개의 상영기업에는 한국 영화산업의 지속가능성 보다 각 회사의 단기적 명운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각 회사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영관 시장을 세 개의 기업이 지배하면서 가격 경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 개의 상영기업이 동일한 가격 정책을 마치 '카르텔'처럼 형성하면서 소비자의 편익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소비자의 편익이 무시당하면서 관객의 영화관 소비 패턴의 변화를 끌어냈고, 상영관 시장을 기반으로 형성된 한국 영화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망가지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수요를 독과점하고 있는 세 개의 기업에 있지만, 정책 당국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우선 직접적으로 영화진흥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책임이다. 영진위는 코로나 이후 한국 영화산업이 당면한 문제를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영화비디오법 개정안도 만들고, 영화발전기금에 관한 연구도 추가로 진행하고, 문체부와 (독립영화계와 영화노동자를 배제한) 영화 현장과의 논의하며 대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대책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작년에 만들었다는 대책도 아직 집행되고 있지 못하다.
영진위는 최근 <서울의 봄>이나 <파묘>의 1천만 관객 동원에 환호하면서 한쪽에서는 '천만 영화 대비 다른 한국 영화 성적은 부진… 한국 영화 산업엔 허리 필요'하다고 진단하지만, 왜 한국 영화산업의 '허리'가 부실해지고 있는지에 대해 진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현상만 이야기할 뿐, 판단이 없다.
시장을 회복하기 위해 시장의 문제와 외부적 환경 요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했지만, 시장의 문제 파악도 부족했고, 외부적 환경 요소는 파악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 영화관으로 돌아오지 않는 관객 대상 설문조사도 없었다.
영진위만 무능한 게 아니다. 정부도 무능하다. 이 정부는 정말 무능하다. 무능하면서도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한국 영화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 대통령이 약속한 영화발전기금 추가 출연을 집행해야 했고, 2024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을 증액했어야 했다. 재정 지출 확대와 함께 코로나 이후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산업과 창작이 위협받고 있는데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출은 뒷걸음질 쳤다.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넷플릭스만 만났다.
독립영화나 지역 영화, 시나리오 등 한국영화의 R&D에 해당하는 예산이 모두 삭감되거나 감액되었다. 하지만 이런 예산 편성이 어떤 정책 판단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건 정부의 영화정책 재정이 정책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의 필요와 요구에 따른 재정이 아니라,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재정이 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한국 영화산업이 침체하는 건 현장에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 침체를 장기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지, 단기적인 침체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정책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기업 투자의 방향도 결정된다.
하지만 이 정부는 영화정책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기업의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의 위기 상황인데, 이 정부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원장 선임도 미루고 있다. 문체부가 영진위가 협의해서 만든 '한국영화 진흥기본계획(2024~2028)'도 발표되고 있지 않다. 무책임의 극치다. 이 사이 영진위 사무국은 잘못된 판단만 반복하며 헛발질하고 있고 현장과 더욱 멀어지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현재 상황에 대한 혹은 지난 박기용 영진위에 대한 평가 토론회 같은 것도 하나 열리지 않는다. 영화인들도 한국 영화산업을 포기한 건가.
각자 좋은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이 선택하게 하도록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영화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갈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각자가 어떻게 시장을 판단하고 있는지 생각을 나누고, 한국영화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영화발전기금의 고갈 문제 등 영화정책 재정은 어떤 원칙에서 설계되고 집행되어야 하는지, 연간 예산은 어떻게 편성해야 하는지, 정책의 수혜 대상자는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등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새로운 법 제도의 미래를 만들 고민도 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금 옛날로 돌아가자고 하는 건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영화계가 함께 새로운 질서의 뉴 노멀을 만들어야 한다. 그 뉴 노멀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서로의 기대와 희망, 요구와 필요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이걸 모아내야 한다.
원승환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산업과 독립․예술영화, 글로벌 영화산업에 대해 글을 씁니다.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관점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과거 글들은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