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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승환 May 22. 2024

한민수의 [영화도둑일기]와 시네클럽 문화

시네필의 욕망은 언제나 법제도와 시장의 허용 범위에 갇히지 않는다

한민수 씨의 책 [영화도둑일기]는 제목 그대로 ‘영화도둑’의 일기라기보다는 시네필의 비망록 같습니다. 책 제목은 꽤나 선정적이고 자기비하나 자조적인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제목을 이렇게 정한 건 스스로 부정하는 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한민수의 [영화도둑일기]

한민수 씨는 토렌트를 중심으로 지금 시대의 영화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토렌트라는 P2P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토렌트를 통해 연결된 컴퓨터와 컴퓨터를 통해 전송되는 파일이 저작물인 경우 더 이상 가치중립적이지 않게 됩니다. 이른바 저작물의 ‘불법’ 업로드와 다운로드가 되는 것이지요. 


한민수 씨는 합법적인 시장 안에서 유통되는 이른바 불법 파일과 불법 자막, 리핑 DVD 등의 사례나 합법적인 시장 내에 존재하지 않는 영화의 보물창고로서의 비공개 토렌트 사이트의 긍정적인 역할, 실험영화 등의 보존과 감상, 비평을 위한 토렌트의 긍정적인 기능 등을 예로 들면서 토렌트 같은 P2P가 영화의 적이 아니라 영화의 해방구일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의 논리는 꽤나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전례 없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새로운 건 토렌트라는 P2P 통신 기술과 매체 환경이지 문화는 아닙니다. 


한민수 씨의 [영화도둑일기]의 이야기와 이선주 선생의 [시네필의 시대]에 언급되는 1990년대 시네마테크 문화는 다른 시대의 같은 이야기 같습니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폭발한 영화문화는 VHS(혹은 LD 등의)라는 새로운 매체기술을 경유하여 활성화된 비합법적인 영화 상영과 감상, 토론, 비평문화에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이선주의 [시네필의 시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른바 비디오 매체를 활용한 ‘시네마테크’의 등장과 전국적인 확산은 VHS 기술을 통해 가능했고, 비합법적인 영화문화의 활성화는 정부의 시장과 문화 개방, 그리고 문화산업정책의 등장과 함께 예술영화전용관과 국제영화제로 대표되는 양지의 영화문화를 촉발시켰습니다. 


1990년대의 비디오 시네마테크와 지금의 토렌트(혹은 씨네스트)는 다른 것 같지만, 비합법성(다른 표현으로는 불법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디오 시네마테크의 비합법성과 토렌트(혹은 씨네스트)의 불법성을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1990년대의 시네마테크와 지금의 토렌트를 경유하는 ‘시네마’적 개념은 ‘시네클럽(혹은 필름 소사이어티)’라고 생각합니다. 주류 영화시장과 다른 영화상영 제도로서의 시네클럽은 주류 영화산업이 영화를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문화를 만드는 매개체였습니다. 아마도 시네클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유럽에서 시네클럽은 1910년대 이미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대중적인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후 주요한 개념이 되지 못합니다. (왜 우리나라에서 시네클럽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시네클럽 문화의 미래 가능성을 파악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나라에서 시네클럽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다음에 하기로 하고, 시네클럽 문화의 특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시네클럽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시네클럽 문화는 비합법적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시네클럽은 등장부터 합법적인 활동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네클럽이 등장하던 시기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영화 상영에 대한 규제가 없던 시절에 등장했으므로 상영 자체가 비합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네클럽의 상영작 중 다수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상영되었는데요, 현재의 저작권법 관점에서 보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를 어떻게든 보고자하는 시네필의 욕망의 집합체인 시네클럽의 상영작품은 당대의 합법적인 시장 내에 한계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합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각국에 영화 상영에 대한 규제 정책이 생기면서 극장이 규제 받을 때 시네클럽은 규제 밖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물론 법적인 규제 내에서 활동하는 시네클럽도 있었겠습니다만, 시네클럽이 당대의 영화문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법제도를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 시네마테크라고 부르는 비디오 매체를 활용한 시네클럽 활동은 당대의 법제도와 시장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영화를 욕망했고 그런 욕망을 채우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합법적인 영역의 국제영화제와 예술영화관을 확장시켰습니다. 오늘날의 토렌트나 씨네스트 등의 기능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비합법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영상산업에 속박하지 않는 영화문화가 꿈틀거릴 수 있고 확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토렌트와 씨네스트를 옹호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을 텐데요, 언제나 당대의 영화문화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법제도나 시장이 허용하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활동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답하겠습니다. 


1990년대 시네마테크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합법적인 영화제나 독립영화 배급사,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등의 운영자가 되었던 것처럼, 토렌트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물론 그때도 비합법의 영역은 존재할 것이고 합법적인 제도나 시장에 균열을 내겠지요. 그게 문화나 예술의 역동성이기도 한 것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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