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보다 많은 공급과 도전적인 영화가 발굴되는 장의 축소
오늘날 한국 독립영화가 당면한 큰 문제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독립영화를 보는 관객(aka.수요)보다 더 많은 영화가 공급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네마 시대라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영화 역사상 가장 쉬워졌고, 장편영화를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를 발산시키고 실현시키는 것이 과거에 비해 어렵지 않은 시기라 과거보다 훨씬 많은 장편영화가 공급된다. (단편영화는 말해 뭐하겠나.)
지금은 과거보다 한국 독립영화를 선택하는 수요가 훨씬 많이 늘어났겠지만, 안타깝게도 수요의 증가 폭 보다 공급의 증가 폭이 훨씬 크다. 그래서 공급은 항상 수요를 초과한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멀티플렉스가 주류를 이루는 상영관 시장에서 한국 독립영화 유통은 역성장의 경향을 보이고 있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실은 점점 두드러진다.
독립영화가 많이 제작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문제로 인식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더 많은(혹은 다양한) 영화가 창작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영화제나 유통시장 등에 공급되는 독립영화의 편수가 늘어나는 것이 어떤 일들에게는 한국 독립영화의 성과나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영화정책의 성과로 인식되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이게 성과로만 평가될 수 있는지 검토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 유통 시장에서 독립영화의 수요나 유통의 성장은 제자리걸음이고, 독립영화를 통해 등장하는 새로운 창작자에게 주어지는 산업의 기회나 두세 번째 공공지원의 기회는 뒷걸음질 치거나 제자리걸음 중이다.
지속가능한 독립영화 창작, 다르게 표현하자면 독립영화 창작자의 창작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수요가 필요하다. 영화의 공급이 자동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므로 공급 중심의 독립영화 정책은 대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독립영화가 당면한 두 번째 큰 문제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것이 문제’라는 첫 번째 문제보다 더 논쟁적일 수도 있겠지만) 제도와 시장, 그리고 도덕률에 대항하는 독립영화가 발굴되는 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제도와 제작된 영화를 발굴하여 선보이는 영화제는 제도와 시장, 그리고 현행 도덕률에 대항하는 영화를 발굴하고 있을까.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영화제를 통해서 발굴되는 ‘다르게 가치 있는’ 영화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다르거나 기존의 구조에서 볼 때 ‘위험한’ 영화는 많지 않다.
검증이 된 미학에서 벗어나지 않거나, 제도나 시장이 허용하는 도덕률을 배신하지 않은 영화를 기획해야 공적인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공공지원으로 운영하는 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는 게 아닐까나.
영화발전기금이나 지자체의 재정 등으로 운영되는 영화제나 각종 지원 제도가 반(反)사회적으로 재단될 수 있는 영화나 기존의 도덕률에서 인정받기 힘든 영화를 선정하거나 지원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도덕률을 위반하여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영화를 지원하거나 선정하면, 영화제나 공적 지원 기관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거나 (행정감사나 국정감사 같은 장을 통해) 행정적인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며, 이를 사유로 사업 예산이 삭감되거나 아예 사업 자체가 폐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이고 행정적인 지탄이나 반발을 우려할 수 있는 영화제의 작품 선정 단위나 제작 지원의 운영 단위는 미학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안전한 기획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공 부문의 제작지원을 받고 싶은 창작자는 자기검열을 통해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수용이 될 만한 창작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이 영화제와 극장 등을 통해 유통될 것이다.
이미 그런 세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사회적 의제가 되지는 못한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주제나 소재를 다룬 작품이 공공 지원이나 영화제에서 배제되면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이나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주제나 소재를 다룬 작품의 경우 공공 지원이나 영화제에서 배제되더라도 별 논란은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해당 작품이나 창작자가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받거나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취급될 뿐이겠지.
한국 독립영화계가 성장 동력으로 선택한 공공 자본과 영화제 등의 배경이 되는 ‘공공성’은 공공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기획과 작품은 배제할 것이며, 이미 많은 기획이 이런 사유로 배제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답답하고 한심해 할 이들도 있겠지만, ‘독립’ 창작이 시장과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방법론이고 이 창작의 방법론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면, 이미 존재하는 도덕률이나 가치 체계를 돌파하려는 창작이나 창작자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지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
공공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지원 등은 공적인 제도 밖에서 할 일이라고 단정해 버린다면,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으며 만들어온 공적인 지원제도나 영화제는 기존이 제도나 가치 체계, 도덕률 안에서 수용 가능한 것만을 소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 각종 제작지원 심사에 참여하거나 영화제에서 상영작을 선정하는 우리의 인력풀은 과연 한국 독립영화가 이전 창작자들이 가지 않은 길로도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을까. 이런 자기 점검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공적인 지원 제도나 지자체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영화제의 한계에 대한 논의까지는 해봐야하지 않나 싶다.
지적한 두 가지 문제는 가장 보편적인 독립영화 지원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독립영화 지원 정책이 한국 독립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한국 독립영화를 정말 더 나은 방향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인지, 지원 제도의 변화는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 관성에 빠진 제도가 외려 필요한 변화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할 시간이다.
기존의 제도가 나쁘다고,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독립영화가 변해야 한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가야한다면, 지원 정책의 방향성과 방법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제도의 반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것의 반복일 뿐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원승환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시장과 독립․예술영화, 글로벌 영화시장에 대해 질문하고 글을 씁니다.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관점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과거 글들은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