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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Feb 09. 2024

연말 연초 쉼없이 페달을 밟아 여유가 생겼다. 본업이 끝나면 집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집어먹고 저녁 피크 시간에 자전거를 탔다. 평균 두 세시간 일하는 거라 큰 수익이 나는 건 아니지만 쉬지 않고 매일 일하면 점심값, 기름값, 보험료, 관리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다.

아이의 킥보드가 고장난지 오래되었다. 씽씽 달리다 손잡이 기둥이 반으로 접힌다.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배달 일해서 번 돈으로 킥보드를 하나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딸에게는 멀쩡한 킥보드 대신 헬멧을 사주었다. 딸은 헬멧을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사줄 수 있어 기뻤다.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헬멧 안을 가득 채웠다.




6층 언니에게 배운 차 마시는 놀이





돌아가신 어머니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던 거 같다. 항상 뒤가 없이 사는 아들에게 보험 하나만 들자 하셨다. 그거라도 하나 들어두면 마음이 조금 놓이셨을지도 모른다. 어머닌 평생 들어둔 보험의 보험금을 지급받을 때 적잖이 애를 먹었다. 췌장암이 그런 병이다. 보험사 직원이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과지급되는 걸 막고자한 거겠지만 몸이 성치 않은 이에겐 그 또한 스트레스였다.

다치지 않고 자라길 바라는 건 꿈같은 일이다.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해야 성장할 수 있다.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며 부모가 브레이크 패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상시에는 로터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로터를 잡아주면 자전거가 멈춘다. 지금 내 자전거는 브레이크 패드 한쪽이 로터에 닿아있어 자전거가 시원시원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너무 감싸안고 키우면 아이의 발전 속도가 더뎌지는 것과 같다.

윤택한 가정의 부모는 스로틀로 손가락만 까딱 움직여도 아이가 저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고작 헬멧 하나 사준 거에 기쁘고 감사함을 느낀다.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네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고 있다고,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주는 부모처럼 어머닌 아들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나가자 더이상 따라올 필요가 없어졌는지 손주들도 만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명절 연휴 전 날, 아내가 전이랑 막걸리를 사다달라 한다. 모듬전을 사가 깻잎전을 한 입 베어먹었다.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주신 음식이다. 햄, 소세지, 불고기 반찬을 싸온 친구들은 깻잎전을 좋아했다. 난 늘 먹어왔던 반찬이라 친구들의 반찬이 더 맛있었다. 세상에서의 나는 기계 부품과 같아서 금새 다른 이들로 대체가 되지만 부모란 존재는 대체 불가능하다. 내가 없으면 빈자리를 채워줄 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란 신에 가까워지는 직책이다. 깻잎속에 사랑이 들어있지 않다. 아내는 고기나 야채 대신 값싼 재료를 넣어 그렇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라면 헬멧을 한 치수 크게 사줘야겠다. 지금은 아빠의 사랑이 꽉 낀다.
아이가 스몰일 거라 생각했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얼굴만 작지 머리는 크다고 한다. 결국 아이들의 단점조차 부모 탓이다. 부모는 서로 자기를 닮지 않은 거라며 오리발을 내민다. 뒤가 구리다.






매 순간 뒤를 봐줄 헬멧이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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