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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Feb 19. 2024

B

혼자만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정신의 성장은 멈춘듯한데 몸은 의지와 무관하게 자라거나 수축한다. 부모의 시간을 할애한들 자녀의 운명이 늘거나 확장되지 않는다. B장애인 부모의 죄책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아이는 껌딱지처럼 중력에 붙어있다. 부모와 자녀는 참으로 질긴 인연이다.

추위에 옷깃을 여미고 Bㅏ이크 페달을 밟는다.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이면 근심이 사라진다. 어느새 도착지에 와있다. 음식이 식지 않아 다행이다. 너무 멀리 가면 음식도 사랑도 차갑게 식어버린다. 아내 또한 그러했다. 밥벌이 하러 나갔다 돌아와도 내 몫은 없었다. 결혼식때 참한 색싯감인 거 같다고 말해주던 삼촌은 나의 B참함을 알고 계실까?



"나 왔어."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안방에 누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밥솥에 밥은 없고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해결한다. 돈이 모일리 없다. 한 달 벌어 한 달을 생활하는 B급인생이다. 아침으로 무얼 먹었느냐는 장모님의 주말 문안인사 물음에 아내는 '라면'이라 답한다.

"잘 했어. 이쁜 내 딸~"

라면도 내가 끓여준 거였으니 굶지 않고 잘 먹고 산다는 행위에 대한 칭찬 같았다. 며칠 전 만난 할머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릴적 학교에서 일본어를 알려주어 자기가 일본인인줄 알고 살았다고 다. 해방될 무렵 자기 나라가 망한줄 알고 슬퍼했다고도 다. 대강당에 모여 위안부로 소집된 아이들에게 애국자라는 칭호로 환송해주었다고 덧붙이셨다. 그에 비하면 장모님 따님은 분명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물론 그 어떤 고난을 내밀어도 전쟁 세대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세대에게 지금은 굶지 않고 지내는 평화로운 시대지만 전쟁 이후 세대인 우리는 휴전 중이란 사실조차 잊고 지낸다.



B가 내리고 음악이 흘러야만 난 휴전 중임을 생각한다. - 로댕


한반도에서 전쟁은 "뻥이요" 멘트처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결과지만 다음 세대의 평화를 위해 살아생전 종전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나와 내 아내의 관계처럼 힘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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