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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Mar 04. 2024

22년 8월, 누나가 준 전기 자전거에 짐받이를 설치하고 배달가방을 달아 음식배달 부업을 시작했다. 10개월 전부터 승합차로 음식배달을 해오던 터였고 러우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뛰자 이것도 마진이 얼마 남지 않게되었다. 내 딱한 사정을 들은 누나는 사용하던 전기자전거를 주셨다. 순간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DSLR 카메라를 40만 원에 누나에게 넘겼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 기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또 하나 부끄러운 기억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이다. 지방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친구가 스키장 놀러가자는 말에 친구 차를 타고 스키장을 향했다. 강 건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저 강 건너에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이 있었다. 난 그 기억이 부끄러웠다. 항상 밥 먹었냐고 물어봐주는 어머니께서 삶의 끝자락이 찾아와 가족들에게 피해주고싶지 않다고 선택한 요양병원 행이셨는데 서른이 넘은 아들은 한가하게 친구들과 스키장에 다니고 있었다. 스키장 함께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어도 될 것을 바보처럼 대부분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해왔다. 결혼도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사귀는 상대가 결혼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나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지 못했다. 과로의 시작점이었다. 누군가는 업보, 또다른 누군가는 운명이라 한다.

 


부업을 할만한 동기는 충분했다. 한 달을 벌어 한 달을 소비하는 패턴이  고착화되었다. 결혼식을 올린지 반 년이 지나지 않아서 찾아온 결과였다. 영업직종이라 급여가 일정하지 않았다. 강아지 백내장 수술비로 200만 원 이상이 들자 생활비로 200만 원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아내는 지금 하고있는 일이 아닌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 했다. 그즈음부터 본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내가 오늘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길 해주었다. 내가 배달을 다녀온 후 오늘 하루에만 250만 원을 벌었다며 자랑하듯 말했다는 거였다. 아내는 그 말에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배달 일만 해도 먹고 살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매 달 250만 원 전후로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고 있어 그에 대한 기억과 남편의 배달 부업에 대한 기억이 수챗구멍에 걸린 머리카락처럼 뒤섞인듯 하다. 전기자전거로 하루 25만 원의 수입도 코로나 특수때 최대치 기대값이었을텐데 10배인 250만 원은 아무도 이룬적 없는 꿈같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아내의 꿈은 풍족함에 대한 갈증같았다.




아이의 꿈에 부모는 등장하지 않았다. 딱 어린 시절까지다. 아이가 크면 아이도 어른, 부모도 어른이다. 불행히도 모두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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