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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Mar 16. 2024

겨울이었다. 어떤 이유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속옷을 입었을까? 벗고 있었을까? 맨발에 시멘트 바닥 위에 오들오들 떨고있다.

"나가! 엄마 아빠 말 안 들을 거면 밖에 나가서 살아!"

반지하 1호와 2호엔 다섯 식구가 옆 집엔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셨다. 작은 철문만 닫혀있으면 골목에서 사람들이 나를 볼 일은 없다. 골목길 초입 첫 집이었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던 나이도 아니었던지라 온 몸의 옷들이 벗겨진들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될 용기가 있었다. 현관문 안은 조용했다. 집 안은 따뜻하겠지? 언제 열어주시려나? 옷이라도 입었다면 밖이라도  나갈텐데 신발도 양말도 없이 겨울을 이겨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는지 15분이 지났는지 알 길 없다. 기억력이 무딘 나조차도 그 추위의 감각을 기억해내고 있었다. 삶을 기록하는 건 생존감각이었다. 그 후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오은영 박사님도 포기하셨을지 모를 동물에 가까운 나를 키운 건 나를 만든 부모님이었다.

딸은 엄마를 닮아 내 말을 자주 무시한다. 아마도 엄마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를 배운듯 하다.

"너 집에 들어오지마!"

눈치없는 동생은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누나의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었지만 딸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두툼한 외투도 신발도 갖춰져있었다. 아빠의 초반 기싸움 빌드업이 실패한 셈이다. 이웃 주민이 왜 현관 앞에 서있냐는 물음이 들린다. 아빠는 순식간에 딸을 버린 그런 몰상식한 주민이 되어있었다. 반지하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부동산에 딸 아이 교육을 위해 반지하집을 구한다고 전화드릴까? 부동산집 사장님은 아내가 일하러 나가면 컴퓨터에 저장된 야동을 보신다. 대출관련 제출 서류가 있어 사장님께 부탁했더니 실무는 아내가 담당하고 있어 자신은 모른다며 직접 컴퓨터에서 관련 서류를 출력하라 하셨다. 거기엔 야동이 저장되어 있었다. 참 은혜로운 삶이다.

딸을 집으로 맞이했다.

"아빠가 들어오지 말라매"

자꾸 같은 말을 반복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도 말한다. 참 당돌한 녀석이다. 아내가 친정에 간 사이라 딸에겐 아빠의 부두술을 방어해줄 보호막이 없었다. 그래도 밥은 챙겨줘야지. 뱃속이 든든해지니 아깐 미안했어요란 소리가 들린다. 엊그제도 들었던 말이다. 딸은 그래도 사과는 잘 한다. 난 내 어머니에게 그 흔한 사과나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 녀석은 엄마를 닮아 먹으면 바로 화장실 가는 강아지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잘 표현한다. 고맙다. 사과는 받아주지.






노래 선수가 되겠다 한다. 재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영역을 선수라 칭한다면 부모는 인내 선수쯤 되겠다.


인내의 강물에 비친 내 과거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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