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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Mar 31. 2024

"어떻게든 살 수 있어."

외벌이로 결혼을 준비하는 내게 아버진 말씀하셨다. 자신 또한 외벌이로 아이 셋 키우며 살았다고, 사람은 닥치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 하셨다. 눈 꼭 감고 결혼을 결심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의 지하 단칸방 옷걸이에 걸려있던 잠옷들은 하나같이 내 키보다 길었고 컸다. 2X와 3X 사이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결단이었다. 힘들게 아이가 생겼고 여전히 외벌이로 지내고 있다. 4인가족 기준 중위소득이 540만 원이라는데 그에 한참 못미치는 벌이로 살고 있다. 이후의 10년이 걱정되어 아내 역시 취업을 예비 중이다. 아내는 경력이라고 내세울만한 직업이 없었고, 이 게 내가 결혼을 망설인 이유이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혼기가 찬 아들을 어떻게든 장가 보내고 싶어했다. 아버지께선 당시 만나고 계신 여자친구 분이 계셨고 언제까지 아들과 함께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아들의 독립은 결혼과 함께 이루어졌다.

아내는 결혼에 미쳐있었다. 뭐 하나에 꽂히면 다른 위험 요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결혼 생각이 없어 오랜 시간 혼자 지내던 나는 비교적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놀이터로 포교활동을 하러 온 집사님의 물음에 난 아니라고 부정했다.

"아내 분과 연애 결혼하셨나요?"

"아니요."

어디선가 또 닭이 울고 있겠지. 하나님 사랑의 빌드업이 시작부터 밑장빼기 작업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 10년도 전에 헤어진 이성에게 메세지를 보내 관계를 이어나간 건 과연 연애였을까? 나는 결혼 이후 과정을 부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보는 현실을 믿고싶지 않았다. 퇴근 후 허겁지겁 밥을 먹고 부업을 뛰러 나간 나는 집 근처 음식점의 조리대기 시간 텀이 있어 외투 한겹을 더 껴입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간다고 한지 1시간쯤 지나서였다. 아내는 식탁에 앉아 배달로 시킨 회를 먹고 있었다. 술과 함께. 나는 신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부디 사고없이 하루를 끝마치게 해달라는 기도는 늘 들어주신다. 냉장고에 남겨둔 회는 맛이 없었다. 모듬회인줄 알았던 회는 참치 회였고 나처럼 부업을 뛰다 생과 사의 기로에 막혔던 모양인지 힘줄이 내 목 아래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도 한이 서려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의 목숨에 한이라도 풀어주려 먹던 살을 뱉었다. 이 녀석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쳤을터인데 내가 나를 먹는 기분이라 먹고 있던 살을 뱉어버렸다. 어미가 되지 못한 개들은 잠에서 깬 나에게 치근덕거린다. 남길거면 나 좀 달라고. 그 눈빛이 "어떻게든 한 입만 안되겠니?" 라 말하는듯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안 꼴은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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