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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Apr 10. 2024

"가장 베스트는 지금 하고 있는 본업 퇴근 후에 부업으로 배달을 하는 거야."

"그럼 나 일 안 해도 돼?"

딱히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한 숨을 들킬까봐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학원비에 대학 등록금에 내 부모와 네 부모 역시 늙어갈텐데 아내는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였다. 혼자만의 벌이로는 현실이 나아질 거란 기대가 들지 않았다. 처음 꺼내든 카드는 퇴직이었다. 초강수였고, 직장 동료들이 뜯어말렸다. 1년 동안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시험에도 합격했는데 병원 실습을 돌며 확인서류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확인 서류 재발급을 위해 실습했던 병원을 다시 방문해야할지도 모른다고 빨리 서류 좀 찾아봐 달라 한다. 꼭 내가 그 서류를 숨겨둔 것처럼 말이다. 서류는 당선 후 사라져버린 공약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일할 의지 또한 보이지 않았다.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난 일하고싶은데"

단순 업무를 반복하다보면 몸이 업무를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일이 익숙해지면 머릿 속의 번뇌가 사라진다.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이런 기분이려나? 전업주부가 집에 있지만 출근 전과 퇴근 후 집 상태가 동일한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이다. 퇴근 후 반반 집안 일의 잔업을 수행해야 한다. 차라리 배달 부업을 하러 집을 나서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아내에게 한 숨 쉬는 걸 숨길 수 있으니 말이다. 아내의 하루는 동지지만 내 하루는 하지처럼 느껴진다. 동지를 구하기 위해 결혼을 했는데 전역이 없는 군인처럼 동지가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일은 번뇌를 사라지게 만들지만 과도한 업무는 자기 자신조차 사라지게 만든다. 꼭 아내가 찾고있는 서류처럼 말이다. 찾으려는 의지는 아내에게도 당선된 정치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아들에게 말했다.

"내 대신 행정 업무를 해줄 사람을 고르는 거야."

아들은 사진을 보고 자긴 이 사람이 좋다고 한다. 참고로 넌 아니다.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지역 농 축협 조합장 선거처럼 20년 전 당선된 사람이 아직도 후보자로 일하겠다고 말을 한다. 아마도 나처럼 집안 일이 하기 싫어 정치에 도전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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