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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Apr 17. 2024

특실에서 아침의 참새들처럼 재잘재잘 소리가 들린다.






어릴적 살던 집이 생각났다. 공장이 즐비한 성수동 골목길 한켠, 내 기억속 처음으로 살던 곳이다. 지금은 주차장 한 칸으로 쓰이는 공간에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출입문 한 켠에 튀김기계가 있는, 지금으로 치면 테이크아웃 치킨 가게였다. 업장 바로 뒤켠이 식구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나이가 어린 나는 가난을 알지 못했다. 공장 사장님 딸이 가지고 놀게해준 레일 위를 저절로 움직이는 전동 기차, 주인집 또래 아이가 가지고 노는 레고, BB탄 총, 재믹스 오락기의 유무로 부의 격차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청소년이 되어서야 아버지께서 소유한 차량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쌀집으로 업종이 바뀌면서 이사를 갔다. 아버지께서 몰고 다니시는 트럭에 이삿짐을 실었다. 나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을 터이다. 지금의 내 아이들처럼 그저 자기 장난감이나 애지중지 챙겼겠지. 모아둔 딱지 한 포대를 버리고 이사왔다는 부모님의 단호함에 마음이 아팠을 뿐이다. 치킨집에 살던 아기 참새들의 덩치가 커져 반지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사간 집에는 계단 두 세 칸만 오르면 천장에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양변기가 있었다. 화장실이 있는 집이었다. (치킨집 화장실은 건물 2층 공용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이사가는 날이니까 일찍 들어와"

일요일 아침, 그 말을 듣고 교회에 갔지만 어머니가 주신 헌금처럼 머릿속에 '오늘 이사, 일찍 가야함'을 잊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집에 돌아오니 빈집이었다. 전 날 미래를 내다보신 부모님께서는 대강 이사갈 집의 위치를 알려주셨고 그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버지 차가 보여 내렸다. 훗날 내가 부끄럽게 여긴 트럭이었다. 아무도 잃어버린 막내 아들을 찾거나 반기지 않았다. 이 지점까지 모두들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군입대 후에 이사가지 않아 다행이다.) 옥상을 사용할 수 있는 2층집은 근사했다. 세입자들은 1층 또는 반지하에 머물러서인지 우리도 이제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부자의 부를 담당하고 계신 아버지께서는 집이 춥다며 거실에 연탄난로를 설치하셨다. 검은 연탄이 지하 창고에 그득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연탄 부자가 되었고 여름엔 다시 가난해졌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데 이웃집 차량과 살구색 연탄을 빼내듯 차를 바꾸어 대지 않아도 되었다. 반면 아파트 관리비는 자동차보험금처럼 아까웠다. 1년 동안 아무런 사고가 없었다면 말이다.

내 자신이 직접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키워보니 참새가 집에 들어온 모양새다. 아이들은 쉬지 않는다. 엄마는 늘 조용히 지내라는 도덕 선생님처럼 자기 할 말만 하신다. 집의 크기가 줄어들어도, 층의 높이가 낮아져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의 외모가 주인집 엄마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다. 아빠가 친구 아버지가 타시는 멋지고 비싼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아빠는 여전히 아빠다. 참새들이 건강하게 자라 어릴적 기억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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