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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Jun 01. 2024

생일 선물로 무얼 갖고싶냐고 아내가 물었다.

"생각해 보고 말해줄게."





결혼 후 처음으로 취업을 한 아내는 아무 말 없던 내게 옷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 학원비 낼 돈도 없이 빠듯해지고나서야 아내는 집이란 울타리를 벗어났다. 결혼 전부터 맞벌이 가정을 원해왔는데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아닌 건 아닌 거였는데 괜찮겠지 하고 묻어둔 선택이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맞벌이가 아니어도 결혼 생활에 큰 무리가 없을 거라며 안심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좋지 않은 조언이었다. 이혼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내비치셨던 아버지를 나는 더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최종 선택은 나의 몫인데 너무 아버지 의견에 비중을 실어 선택했을 따름이다.




나와의 사별을 경험할 수도 있고 이혼을 할 수도 있는데 아내 역시 자급자족할 힘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어떤 이는 힘의 기본 단위를 체중에 두기도 하고, 돈이나 집에 두기도 한다. 외모를 힘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인생의 정오가 지나면 외모의 힘도 서산너머로 사라진다. 꽃처럼 피어날 아이들의 시간에 힘이 되어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소망이 없어 생일 선물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루를 일로 채우고 보상받은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정작 무엇을 갖고싶다는 욕심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연애와 결혼, 자녀 양육도 사치인 나라에서 살아서 그렇다.





부업으로 하고 있는 음식배달비가 2000원 대로 줄어들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힘이 없다. 누군가는 1000원 대로 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너무 많은 라이더가 유입되어 단가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배달판을 떠났다. 놀이터에도 경쟁과 낙오가 기본값이다. 두 세살 많은 형, 누나들과 어울려 놀기 위해서는 벌칙으로 배제가 되는 룰을 없애야 한다. 조금 서툴더라도 다시금 기회를 주고 함께 다같이 성공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깍두기'를 게임에 참여시킨다. 그 게 내 아들이다. 아들이 힘을 키우고나서도 그 힘을 이용해 타인을 찍어누르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내 아버지가 노동자이자 건물주가 아니었던 시기, 아버지께서는 구멍가게를 자주 이용하셨다.

"큰 가게는 나 말고도 다른 이가 많이 찾아오지만 오늘 내가 이 곳에서 빵을 사지 않으면 아무도 이 곳을 이용하지 않을지 모른다."





큰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건물주가 되신 아버지께서는 힘이 부족한 이들을 쥐어짜야 자신의 힘이 유지될 수 있음을 인지하신듯 보인다. 슬픈 변화다. 나 역시 과거와 현재의 기준이 달라졌다. 내 스스로의 힘은 부족하지만 때에 따라 아버지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그것을 마치 내 것인양 위선을 떨기도 한다. 실제의 나는 힘없고 나약하고 좋지 않은 선택과 생각을 자주하지만 타인에게는 다 알고있듯이, 이미 지나간 일인양 훈수두고 조언한다. 정작 내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임에도 말이다.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저 나이만 어린 내 자신의 모습이 보여 소름돋게 행복하다. 나는 시대를 달리해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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