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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Dec 22. 2023

[단편 소설] 별에게, 안녕

 - 안녕


 겨우 신호를 해독해 낸 나는 종이를 내려다보며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별인 줄 알았다. 어느 정신 나간 별이 요란하게도 깜박대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그 요란함 속에 규칙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제야 그 별이 며칠 전부터 레이더에 걸리던 우주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우주선은 약 일주일 전부터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줄곧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레이더에도 내 채굴선이 걸렸던 것이겠지. 전에도 그런 우주선들은 많았기에 놀랄 것은 없었다. 그래봤자 이번에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갈 거라 확신했다. 대뜸 미친놈처럼 라이트를 깜박여 댈 줄은 나도 몰랐지.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먼지 묻은 통신책을 펼쳐 들고 하루 종일 해독법을 뒤졌다. 그런데 차고 넘치는 방법들 중에 모스 부호였다니. 누군지 몰라도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인간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별은 여전히 규칙적으로 깜박이며 하나의 메시지만을 지독하게 찍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얻자고 그깟 싱거운 방법으로 이깟 싱거운 메시지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정확한 속셈은 모르겠다만 나에게도 간만에 찾아온 새로운 유희였다. 그 끈질김이 가상하기도 했으니 나 역시 채굴선의 라이트를 최대로 밝혀 싱거운 답장을 보내주었다.


 - 안녕



*


 화성에서 사는 건 바란 적도 없었다. 화성의 궤도에라도 머물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달에서의 내 삶이 더없이 좋았다. 타락과 쾌락의 위성에서, 명확한 이름도 소속도 없이. 나의 존재가 인정되는 순간보다 부정되는 순간이 더 많다 해도 상관없었다.

 달에서는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소속도, 고향도 묻지 않았다. 화성의 유리 도시에 사는 화성인이든, 그 둘레의 인공위성에 사는 위성인이든, 우주를 떠도는 유랑인이든. 모두 한데 모여 암거래를 하고, 도박판을 벌이고, 마약을 들이켰다.

 가끔 화성에서 감사를 나오긴 했지만, 명목상일 뿐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화성인들도 수많은 규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달과 같은 숨구멍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달에서의 내 역할은 지구로 내려가 물과 산소를 가득 실어 오는 것이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직업이었기에 더욱 좋았다. 덕분에 내 자리가 사라질 걱정은 적었으니.

 커다란 채취선을 몰고 지구의 대기를 뚫는 순간은 매번 오금 저리게 짜릿했다. 화산재로 시커먼 대기층을 지나고 나면 온통 불바다에 물바다인 인류의 옛 고향이 한눈에 보였다. 몰락해 가는 와중에도 지구는 무채색의 화성보다 무자비하게 아름다웠다.

 빙하가 모두 녹아내린 지구는 널린 게 물이었다. 지면과 가까워지면 바다 가까이에 채취선을 착륙시킨 후, 파이프를 길게 내려 바닷물을 빨아들였다. 탱크에 모인 바닷물은 물과 공기로 분해되어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저장고를 모두 채우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서 한번 내려가면 족히 열흘은 지구에 체류해 있어야 했다. 그동안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이나 쓰나미에 죽을 뻔한 순간들이 적지 않았지만, 덕분에 내가 살아 돌아갈 때마다 기지장은 거한 밥상으로 포상해 주었다.

 방사능 차단복을 입고서 해변에 앉아 가만히 파도 소리를 듣는 순간들은 묘하고 이상했다. 한때는 사람으로 득실거렸을 행성에 홀로 남겨진 채, 이제는 사라진 것들을 손가락으로 멋대로 그려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가만히만 있어도 물과 공기를 뿜어내는 행성을 옛 인간들은 어쩌자고 멸망시킨 것일까. 지금 이런 행성의 가치가 얼마인 줄 알게 된다면, 돈에 환장한 인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려 했을 텐데. 물론 멸망해 가는 행성까지 내려와서 물을 쪽쪽 빨아들이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니 어떻게 이 상황까지 왔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모래사장은 어느새 나의 터무니없는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에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바닷물에 쓸려 내려가 버렸지만.


*


- 이름이 뭐야?


 꼬박 하루가 지나서 정신 나간 별은 새로운 메시지를 깜박대기 시작했다. 이름이라. 글쎄.

 한때는 엄마가 나를 백화라고 불렀었던 것 같다. 때 묻지 말고 하얀 꽃처럼 살라고. 이름만큼은 꼭 누구보다 예쁘게 지어주겠다는, 한 여인의 굳은 포부가 느껴지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이었다. 자신이 아는 가장 예쁜 단어들을 고르고 골랐을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면 왜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분에 넘치는 이름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는 걸 어린 엄마는 몰랐던 모양이다.

 달에는 나처럼 사창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은 곧 유랑선에 팔려 가거나, 시간이 지나 다시 사창가로 돌아갔다. 다행히 달 기지장의 아내는 자신의 딸과 닮은 나를 가엾게 여겨주었다. 나는 기지장의 저택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시키는 건 뭐든 하며 쓸모를 증명해 보였다. 저택의 하인들 중 가장 어렸던 나는 ‘얘’가 곧 이름이었다. “얘 이리 좀 와 보렴” 하면 그게 나를 부르는 말이었다.

 이후 유랑선에 팔려 갔을 때는 등에 붙은 번호가 내 이름이 되었다. 아직도 숫자 25를 보면 진저리가 날 정도로 주구장창 25번으로 살았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 중 나의 이름은 무엇일까. 백화. 얘. 25번. 어느 것 하나 정이 가지 않고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들이었다. 그럼 내 이름은 도대체 뭘까. 돌이켜보면 그전에는 누구도 나에게 이름을 물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채굴선의 라이트를 천천히 껐다 켜며 또 한 번 싱거운 답장을 찍어냈다.


  - 없어


*


 화성인들은 유랑인들을 야만족이라 부르며 경멸했고, 유랑인들은 화성인들을 위선자라 부르며 증오했다. 서로가 서로를 상종도 하기 싫어하니 자연스럽게 둘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은 달이 맡게 되었다.

 유랑인들은 주로 소행성 채굴로 얻은 희귀 금속들을 달에 팔았다. 그 돈으로 화성의 물, 공기, 식량과 같은 필수품들을 사들인 후 곧 다음 여정을 떠났다. 유랑인들이 기지에 머무는 그 며칠 안에 지구의 물과 공기를 판매하는 것 또한 나의 임무 중 하나였다.

 화성인들은 지구의 것이라면 기겁하며 손도 대지 않으려 했다. 아무리 정화를 했더라도 지구에서 온 것은 전부 방사능 덩어리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직 화성에서 만들어진 물과 공기만 사용했고, 이는 대부분의 유랑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나와 거래를 하는 자들은 방사능보다도 당장의 생존 여부가 두려운, 밑바닥 중의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딱 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래도 해가 거듭될수록 나를 찾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다. 지구의 것도 나쁘지 않더라, 하는 입소문이라도 난 것일까. 훨씬 저렴한 가격에 물과 공기를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내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빠르게 늘어났다. 이대로라면 기지장이 한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던 참이었다. 내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달콤한 날들이었다.

 물과 공기는 화성의 가장 큰 수출 품목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해 내 직업의 존재는 화성 대기업들의 자금줄에 구멍을 뚫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 하나로는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소문을 들은 유랑인들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면 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화성이 기지장에게 거래를 제안해 온 것은 그 때문이었을 거다. 지구에서의 채취 사업을 완전히 중단한다면, 달의 중개 수수료를 영구적으로 늘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것이니 기지장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가 달에서 영구적으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이기도 했고.


“네가 재주가 많다 보니 꽤나 비싼 값에 팔렸어. 들인 돈이 있으니 아마 아껴서 써줄 게야.”


 지구에서 막 돌아온 내게 기지장이 건넨 말이었다. 거한 밥상을 기대하며 한껏 들떠있던 나는, 그렇게 입에 숟가락이 아닌 재갈이 물려진 채 어느 유랑선에 팔려 갔다.


*


 언젠가부터 별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정확히는 별이 아닌 어느 우주선이겠지만.

 이 소행성에 떨어진 후로는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기다릴 일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고개를 치켜들고서 우주 속의 점 하나가 반짝이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처음으로 내 이름을 물어주었다는 사실에 감동이라도 받은 것일까.


- 너도 혼자야?


 별이 다음 질문을 보내온 것은 또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반으로 접힌 스케치북에 그날의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는 연필을 한쪽에 제쳐두고 조종석 앞으로 향했다. 굳이 질문에 끼워 넣은 ‘도’라는 글자 하나에서 차마 덧붙이지 못한 그 뒤의 말들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혼자야. 꽤 오랫동안. 혹시 너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

 물론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별이 기대하는 답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스위치를 깜박이는 나의 손놀림은 더욱 경쾌해졌다.


 - 응


나도 그래. 꽤 오랫동안.


*


 유랑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첫째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에서 채굴 사업을 하는 함선들이었다. 수백에서 수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정도로 거대한 함선들은 소행성 벨트와 달을 오가면서 희귀 금속을 거래했다. 이 금속 사업으로 한몫 크게 땡겨 화성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둘째는 원치 않게 우주에 나앉게 된, 속할 곳이 없어 하염없이 허공을 떠도는 우주선들이었다. 그곳에 몸을 실은 자들에게는 작고 초라한 우주선이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냥 떠돌기만 해서는 금세 물과 공기가 떨어져 오래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그들은 도적이 되어 다른 이들을 약탈하며 살아가거나, 자기 자신을 함선에 팔아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화성에서는 법적으로 노예 제도를 금하고 있었지만, 법 같은 게 유랑인들에게 통할 리 없었다. 숨을 한 번이라도 더 들이마시기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인간들이었다. 화성은 그들을 포기한 지 오래였고, 자신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뭘 사고팔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사슬에 묶인 채 달의 기지 밖으로 끌려 나갈 때도, 화성의 감사는 곁눈질만 한 번 하고서 마저 와인을 들이킬 뿐이었다.

 나의 괴성을 안주 삼아 잔을 부딪치던 기지장과 감사의 모습을 매일 꿈속에서 다시 보았다. 고깃덩어리를 썰어대던 나이프를 빼앗아, 바닥이 온통 와인 빛으로 물들 때까지 그것을 수없이 내리찍었다. 그날의 내 괴성이 그들의 괴성으로 덮일 때까지 찌르고 또 찔렀다.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건 결국 나였지만.

 지옥 같은 5년이었다. 내가 팔려 간 유랑선은 함선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 그렇기에 물품이 항상 넉넉한 편이었지만, 모두가 그 넉넉함을 누릴 수 있지는 않았다.

 노예들은 우주선 안에서도 갑갑한 우주복을 입어야 했다. 우리가 자신들의 공기를 함부로 마실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온몸을 둘러싼 우주복 속에서 산소통에 저장된 미약한 공기로 매일을 버텼다. 하루가 끝나기 전에 할당량을 다 마셔버리지 않으려면 매 호흡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들이켜야 했다.

 살아남기 위한 호흡법을 익히는 데에는 하루뿐이 걸리지 않았다. 우주복에 갇히게 된 첫날, 할당량을 체감하지 못했던 나의 산소통은 밤이 되기 전에 바닥나 버렸고, 질식해 가는 나를 보며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산소를 나눠달라고, 살려달라고, 동료들에게 아무리 애원하고 빌어 봐도 소용없었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빛에서는 나를 향한 질책들이 고스란히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렸니. 분수에 맞게 숨을 쉬었어야지.

 결국 소란을 듣고 찾아온 관리자가 혀끝을 차며 새로운 산소통을 끼워주었다. 내일의 할당량을 미리 끼워준 것이니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라고 했다. 비싸게 주고 샀으니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거라면서.

 그날 이후 분수에 맞게 숨을 쉬는 법을 익혔다. 처음엔 호흡을 의식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무의식중에도 숨을 아낄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삶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매 순간을 아득바득 버텼다. 그런 삶이라도 조금 더 살고 싶어서.


*


 우주선은 이제 내가 있는 곳과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그것이 뿜어내는 불빛도 더는 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져 있었고. 가까워진 만큼 우주선이 말을 걸어오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전에는 하루 간격으로 답을 해왔다면, 이제는 몇 시간 안에 새로운 메시지를 보내왔다.

 레이더 속의 우주선이 착실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면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씁쓸해졌다. 무엇을 얻자고 줄곧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얻어 가지는 못할 것이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은 떠나야 할 테니까.


- 안 심심해?


 훌쩍 커버린 별이 새롭게 깜박였다. 퍽 귀여운 질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굶거나 숨이 막히는 것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유랑인들끼리 나누기에는 태평한 질문이었다.


 - 조금


 내가 답했다. 이곳에서 지내는 것은 무척이나 따분했다. 그렇다고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 우리 만나볼래?


 몇 시간이 지나 우주선이 다시 물었다. 질문을 마치고 답을 기다리는 우주선을 한동안 가만히 보았다. 이 질문만은 아니길 바랐건만 빛은 착실하게 깜박여 기어이 문장을 완성해 냈다.

 헛수고 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라고 지금이라도 확실히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참 답을 망설인 나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답을 천천히 찍어냈다.


- 그건 곤란해


*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는 한때 무척이나 평화로운 공간이었다고 한다. 소행성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 벨트를 통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고, 충돌 사고가 일어날 일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유랑선들의 채굴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곳곳에서 소행성 채굴이 이루어지자 채굴선과 소행선 간의 충돌 사고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충돌로 인해 조각난 소행성과 우주선의 파편들은 서로 엉겨 붙은 채로 벨트의 궤도에 영영 갇혔다. 크고 작은 돌조각들이 무더기로 떠다니는 이러한 곳들은 소행성대의 ‘괴구름’이라 불렸다. 사실상 구름보다는 소용돌이에 가까운 그것과 만나면, 완전히 조각이 나서 결국에는 구름의 일부가 되어버린다는 괴담 때문이었다. 그러니 괴구름을 만나기 전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소행성을 이동시키는 것이 채굴 사업의 핵심이었다.

 내가 속한 거대 함선에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채굴선이 여러 척 실려 있었다. 노예 중 비행에 능한 자들은 그 채굴선에 올라 소행성을 운반하는 작업을 자주 맡았다. 죽을 가능성이 높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채굴을 하러 가는 날이 좋았다. 그날만큼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갑갑한 우주복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니까. 어쨌든 죽음을 각오하고 비행을 떠나는 일은 내내 해오던 것이니 새로울 것도 없었다.

 채굴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내가 소속된 곳처럼 규모가 큰 함선들은 소행성을 통째로 옮겨오는 것을 선호했다. 채굴선이 적당한 크기의 소행성을 벨트 바깥으로 끌고 오면, 그것을 함선으로 가져가서 더 정밀하게 금속을 채취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크기의 소행성이라도 그것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동료들이 괴구름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광경을 적지 않게 봐야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속에서도 나는 끝끝내 살아남았다. 끔찍하게 질긴 명줄에 나 자신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할 정도였다.

 더는 억울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의 분수에 적응해 갈 때쯤, 전투가 벌어졌다. 우주에서는 약탈을 위한 전투가 잦았지만 내가 속한 함선은 예외였다. 유랑선 중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터라 그 누구도 감히 싸움을 걸어오지 못했었다. 아무래도 적은 바로 그 점을 노린 듯했다. 전투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게다가 모양새를 보니 그들은 꽤 오랫동안 이 작전을 준비해 온 듯했다. 작지만 노련한 다섯 척의 도적선 앞에서 함선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적선이 발사한 포탄 중 하나는 하필 함선의 저장고에 정통으로 맞았다. 이는 모두에게 막대한 손실이었다. 함선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물과 공기가 부족해진 것이기도 했지만, 도적선의 입장에서도 가장 약탈하고 싶었던 부분을 자기 손으로 날려버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비상에 처한 함선의 지도자들은 서둘러 보급품을 구해올 방도를 모색했다. 이대로라면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달에 도착하기 전에 전부 굶어 죽을 게 뻔했다. 다행히 마침 근처에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또 다른 거대 함선이 있었다. 그곳과의 거래를 통해 부족한 물품과 무기를 구해온다면, 달에 돌아가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었다.

 함선을 몰래 빠져나가서 보급품을 받아오라는 지령은 나에게 떨어졌다. 채굴선 비행에 가장 능한 사람이 나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채굴선을 타고 근처의 함선까지 간 후, 보급 물품들을 무사히 거래해 오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임무에 성공하면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제시했으니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래에 활용할 희귀 금속을 가득 실은 나는 도적들이 재정비하는 틈을 타서 함선을 빠져나왔다. 나를 감시할 관리자 한 명과 함께였다. 도적선들은 뒤늦게 쫓아왔지만, 순간적인 위력이 강점인 채굴선의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나를 노예로 부렸던 수천 명의 목숨을 위해, 아니 사실은 나의 자유를 위해, 나는 하염없이 우주를 내달렸다.


*


 우주선은 어느새 나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이대로라면 고작 한 시간 후에 내가 있는 곳까지 다다를 예정이었다.

 조종석에서 일어나 벽 한쪽에 걸어둔 우주복을 꺼내 입었다. 우주복과 연결된 로프를 채굴선에 단단히 고정한 후, 문을 열고 선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혹시라도 우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항상 몸을 어딘가에 고정해 두어야 했다.

 채굴선의 외벽을 기어오른 나는 조종석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 위에 냅다 누웠다. 저 멀리 다가오는 우주선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위치였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떼우기 위해 실로 연결한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신 나간 별의 진짜 모습만큼은 레이더가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커다란 불빛에 불과했던 별은 빠르게 크기가 불어났다. 사과만 한 크기가 되었다가, 바퀴만 한 크기가 되었다가, 결국엔 어엿한 우주선의 모습이 되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주선의 차창은 마냥 뿌옇기만 했지만, 그 너머로 조종사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별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그도 나를 온전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그 사람도 이제는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서 자리에 멈춰 선 우주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괴구름 한가운데의 소행성에 완전히 갇혀버린 주제에. 박살이 난 우주선 위에 태평하게 누워있는 나를 보며 별은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겠지. 한때 내가 그랬듯이.

 그래도 나는 이 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은 채,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한때 별이 건넸던 인사를 돌려주었다.


- 안녕


*


 함선과의 거래는 예상보다 수월하게 끝이 났다. 다행히 그들은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미리 우리 쪽 함선의 연락을 받았던 그들은 약속대로 보급품들을 실어주었고, 주민들을 위한 물품을 무사히 확보한 우리는 빠르게 함선으로 돌아갔다.

 떠났던 우리가 다시 함선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정확히 3일이 걸렸다. 그 3일 만에 함선은 완전히 불바다가 되어있었다. 선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면 생존자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다섯 척이었던 도적선도 이제는 세 척만이 남아있었다. 그 누구도 원하는 것을 얻어가지 못한, 모두가 패배한 전투였다. 그런 상황에서 물품을 가득 실은 내가 등장하는 것은, 리본까지 예쁘게 묶은 선물 상자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살아남은 세 척의 도적선은 매서운 속도로 나를 쫓기 시작했다. 긴 여정으로 연료를 거의 소진한 터라 전처럼 폭발적인 속도를 내기는 힘들었다. 이대로 간다면 그들에게 꼼짝없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와 함께 있던 관리자는 가방에 값비싼 물품들을 마구 쑤셔 넣더니, 홀로 작은 탈출선에 올랐다. 어이가 없었지만 비행에 몰두하느라 배신감을 가질 틈도 없었다. 관리자를 싣고 떠나간 탈출선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도적선에게 붙잡혔다. 덕분에 나를 쫓는 우주선도 셋에서 둘로 줄어들었다.

 쏟아지는 포탄들을 피하며 무작정 소행성 벨트 쪽으로 채굴선을 몰았다. 도적선들은 장애물이 많은 곳의 비행에 익숙하지 않았다. 상황만 잘 따라준다면, 어쩌면 소행성대에서 그들을 따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기대했던 소행성 벨트의 모습은 적당한 크기의 돌덩이들이 적당히 자리 잡은, 충돌의 위험이 있지만 비행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구역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크고 작은 소행성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어마무시한 크기의 괴구름이었다.

 지금껏 적지 않은 양의 괴구름을 보아왔지만 이 정도로 커다란 규모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얄짤 없이 가루가 되고 말 게 뻔했다. 멈추지 않으면 가루가 되고, 멈추면 다시 노예가 된다. 손에 땀을 쥐며 갈등하던 나는 결국 축축해진 손으로 가속 레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겨우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숨통이 트이던 참이었다. 또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채굴선의 경고 음성은 친절하고 침착했다. 충돌까지 30초 남았습니다. 충돌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충돌까지 5초 남았습니다. 코스 요리를 설명하는 듯한 말투로 죽음을 안내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고통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끔찍하게 질긴 명줄이 이번에도 버텨주기를 내심 바라며.


 의식은 희미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온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채굴선의 바닥에 퍼질러져 있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던 물품들은 충격으로 인해 온통 흩뿌려져 있었다. 결국 도적선에게 붙잡힌 것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적막했다.

 우주복의 헬맷을 고쳐 쓰고서 밖으로 향하는 채굴선의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그 순간의 광경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돌무더기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었다. 주위로는 수백 개의 소행성들이 각자의 궤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벨트에 접근할 때는 이 모든 것이 그저 혼란스러워 보였는데, 그 속에 들어와 보니 이보다 고요할 수 없었다.

 우주복의 로프를 채굴선에 고정시킨 후 밖으로 걸어 나와 내가 착륙한 곳을 마주했다. 채굴선은 여기저기가 찌그러진 채 커다란 소행성에 처박혀 있었다. 착륙한 소행성의 직경은 가히 200m는 되어 보였다. 작은 것과 충돌을 했다면 이미 가루가 된 채 우주를 떠다니고 있겠지만, 거대한 것과 충돌한 덕분에 착륙이라도 시도할 수 있었나 보다.

 뒤를 돌아 채굴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선체는 온전해 보였지만, 한쪽 날개와 엔진이 떨어져 나간 탓에 더 이상의 비행은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소용돌이 속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영영. 이 소행성 위에 갇혀서, 죽을 때까지 이 돌무더기 사이에서 하염없이 공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아닌가.

 지긋지긋한 인간들과 더는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나만의 삶을 살고 나만의 죽음을 맞는 것. 내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듯이 그 누구도 이곳에 접근할 수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 소용돌이를 뚫고 들어올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떨어진 이 무인도는 감옥 같은 게 아니었다. 낙원이었다.


*


 전에도 주위를 맴돌다가 떠난 우주선들이 있었다. 대부분 내가 가진 보급품을 노리는 자들이었다. 괴구름을 뚫고 나를 약탈할 방법을 모색하던 그들은, 결국에는 전부 포기하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미련 가득하게 떠나가는 그들을 보며 보란 듯이 감자칩을 흔들어 주는 것도 꽤 재미있었는데.

 가만히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별의 모습도 그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며칠까지 버티다가 결국 포기하고 떠나려나.


- 갇힌 거야?


별이 작은 라이트를 깜박이며 물었다. 여전히 채굴선 위에 누운 채, 나는 헬멧에 끼워진 헤드라이트를 깜박여 답장을 보냈다.


 - 보다시피

- 언제부터?

- 3년 전쯤

- 외롭지 않아?


 잠시 답을 망설였다. 혼자라서 쓸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그립지는 않았다. 나는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지금이 좋았다. 


 - 별로. 인간 같은 건 이제 질려서


 고심해서 보낸 나의 답을 별은 단어 하나로 부정해 버렸다.


 - 거짓말


그리고 타이르듯 덧붙였다.


- 인간은 인간이 필요해


*


 소행성에서의 새로운 삶은 지루하고 평화로웠다. 첫 한 달 동안은 채굴선의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지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양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굶거나 숨이 막혀 죽지는 않겠다 싶었다.

 함선에서 받아온 보급품에는 사치품도 몇 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부유층들이 내게 따로 부탁한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스케치북과 펜, 연필 같은 필기구도 있었다. 물론 태블릿으로도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지만, 전자기기는 우주에서 금세 망가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함선의 여유로운 자들은 스케치북에 직접 그림을 그리며 취미 생활을 즐기고는 했다.

 처음으로 손에 쥐어보게 된 스케치북은 모든 물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다. 스케치북을 절반으로 접어서 구역을 나누면 한 페이지에 그림을 네 장이나 그릴 수 있었다. 그곳에 매일 한 편씩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금세 나의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언젠가 지구의 해변에서 그렸던 것들을 매일 스케치북에 꾹꾹 옮겨 담았다. 이제는 바다에 잠겨버린 마을, 웃으며 바닷가를 거닐었을 가족, 우주가 아닌 수면 위를 항해했을 함선들.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 지구의 모습을 멋대로 그려보았다. 이번에는 파도에 쓸려 내려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신경을 써서 손을 움직이게 되었다.

 소행성에서의 삶이 억울하거나 불행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면 분에 넘치는 결말이라 생각했다. 다만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차라리 그때 달로 돌아가지 말걸, 하는 후회가 가끔 찾아왔다.

 이렇게 소행성에 표류하게 될 인생이었다면, 달로 돌아가지 말고 지구에 표류할걸. 인간에게 버려진 그 무인도를 떠돌다가, 그냥 어느 파도에 휩쓸려 죽을걸. 다른 모든 것들이 그랬듯.

 가끔은 그런 후회가 들었다.


*


 별과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나를 따라 공전할 뿐, 별은 어떠한 형태로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다른 우주선들은 나를 약탈할 방법을 골똘히 고민할 때 그런 행동을 취했었다. 그럼 별은 지금 무엇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우주선이 말도 안 되는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라이트를 깜박여 침묵을 깨뜨렸다. 이제는 그만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이제 그만 가. 그래도 덕분에 재밌었어


 어쩌면 살면서 처음으로.

 메시지를 받고도 우주선은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랜 적막이 흐르고 나서야 우주선은 다시 천천히 빛을 깜박여 왔다. 내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아닌, 이전에 물었던 질문이었지만.


- 우리 만나볼래?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라이트를 켰다. 우주선은 아직도 정신이 나가 있는 게 분명했다.


- 이미 만났잖아

- 이렇게 말고


 우주선이 단호하게 깜박였다.


- 너랑 얼굴 보고 얘기해 보고 싶어


 저런 말에는 도대체 무엇이라 답해야 할까. 잠시 얼어붙어 있던 나는 이내 바쁜 손놀림으로 항의하듯 답장을 찍어냈다.


- 내 우주선은 박살 났어

- 내가 가면 돼

- 너도 박살 나고 싶어?


 별은 난데없이 ‘ㅋ’이라는 글자 하나를 마구 찍어냈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키읔을 여러 번 발음해 보았다. 웃음소리를 표현한 것 같았다.


- 나는 평생을 이 우주선에서 살았어


 별이 난데없이 말했다.


- 그래서?

- 비행 하나는 자신 있어


 자신감 가득한 별의 말에 픽 웃음을 지었다. 나도 한때는 비행 실력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 나도 그랬어. 그런데 지금 날 봐

- 정말 평생이라니까. 내 인생의 모든 순간


 별이 깜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어


 메시지를 보내고서 우주선은 정말로 엔진에 천천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밝아지기 시작한 엔진의 불빛에 나는 다급하게 라이트의 스위치를 마구 움직였다.

  

- 죽고 싶은 거야?

- 안 죽어

- 잘못하면 나도 죽어

- 안 죽는다니까

- 둘 다 죽어버ㄹ

- 죽고 싶은 게 아니야. 살고 싶은 거야


차분하고 담담하게 깜박이며 별은 자신의 입장을 마저 전했다.


-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어


 라이트 스위치를 단단히 붙잡고 있던 손의 힘이 천천히 풀어졌다. 나의 침묵을 암묵적인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별은 한 번 더 짧게 깜박여 왔다.


- 안에서 나오지 마


 미세하게 손을 떨며 조종석 창문 너머의 우주선을 보았다. 엔진을 완전히 작동시킨 우주선은 이내 방향을 틀어 내가 있는 곳의 반대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멀어져서 떠나버리기를 기대할 때쯤, 순식간에 다시 방향을 돌린 우주선은 매섭게 가속해 오기 시작했다. 혜성이라도 되는 듯이 질주해 오는 우주선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충격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머릿속이 날카로운 이명 소리로 가득 들어찼다. 문득 내가 이곳에 떨어졌던 날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회상 같은 것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주복의 로프를 다급하게 고정하고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충격으로 인해 떨어져 나온 물품들이 나를 뒤따라 우주 속으로 날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행성 저편에 꽂혀있는 어느 우주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미친놈. 누군지 몰라도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그 사람의 우주선은 완전히 뒤집힌 채로 소행성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뒤집힌 것을 제외하면 우주선의 상태는 괜찮아 보였지만, 이 정도 충격에서 조종사가 살아남았을지는 미지수였다.

 우주선의 뒤집힌 차창을 향해 마구 달렸다. 충격으로 피어오른 먼지 탓에 우주선의 차창은 시커메져 있었다. 다급한 손놀림으로 유리창의 먼지를 벅벅 닦아내었다. 나의 우주복이 온통 숯덩이 같은 색이 되었을 때, 마침내 유리창 너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주선의 조종석에는 누군가가 안전벨트에 단단히 묶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뒤집혀 있었다. 조종사의 얼굴은 우주복의 헬멧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선체에 구멍이 뚫릴 것을 대비하여 우주복을 입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정도로 위험한 짓인 걸 알면서도 뛰어들었단 말이지. 정신 나간 놈.

 유리창을 마구 두드렸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우주 속에서는 힘없이 흩어져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무작정 소리를 질렀다. 제발 일어나달라고, 살아달라고, 고요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한순간이었다. 힘없이 축 처져있던 팔이 움찔하면서 기력을 되찾았고, 불안하게 꺾여있던 목도 이내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왔다. 뒷목이 뻐근한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던 그 사람은,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가 향하자 머리 굴리는 것을 멈추었다. 헬멧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느린 손짓으로 그 사람은 자신의 헬멧을 향해 손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목뒤 쪽에 있는 잠금장치를 푸른 후, 천천히 그것을 벗어 올렸다. 그 사람의 손을 벗어난 헬멧은 두둥실 떠올라 뒤집힌 우주선의 바닥과 부딪혔다.

 마침내 마주하게 된 별의 얼굴을 보며 나는 실소 같은 웃음을 내뱉었다. 뒤늦게 민망한 얼굴을 지어 보인 그 사람도 엉망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한쪽 입꼬리가 휘어진 채로 그 사람은 입술을 움직여 무어라 말했다. 소리 같은 게 들리지 않아도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단숨에 알 수 있었다.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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