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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Aug 29. 2023

어라, 내 뭘 만들고 있네.

2021년 여름, 아이들을 재우고 육퇴 한 밤이었어요.

유난히 어질러진 집 꼴에 한숨을 쉬며 소파에 주저앉는 순간, 거실 한쪽 구석에 밀려 나 있는 비즈 상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충 주문한 탓에 큼직한 어린이용이 아닌 자잘한 공예용 비즈가 왔고, 미처 환불도 할 수 없게 순식간에 아이들이 봉지를 뜯어 놀다가, "아~~ 왜 이렇게 구슬이 작아~~"하며 채 5분도 안 돼 내던져버린 애물단지였지요. 


'저거나 해볼까?'


맥주를 한 캔 따서 드라마를 보며, 구슬을 꾀기 시작했죠.



처음 만든 비즈


'어라, 너무 재미있는데~~'


무념무상 하나씩 끼우는 것도, 패턴 생각하며 대칭 만드는 것도, 솔솔 하게 손재미가 붙더라고요. 우레탄줄 매듭지는 법을 검색한 유튜브에서 소녀시대 태연이 애완견에게 목걸이를 만들어 주려고 비즈 재료를 사러 동대문에 가는 영상을 보게 됩니다. 확 꽂혀버렸죠. 코로나 시기라 안 그래도 무료하고 답답하던 차에 이거다 싶었어요. 마스크, 손소독제, 니트릴 장갑으로 단디 무장하고,



동대문종합상가


다음 날 바로 동대문종합상가로 출발합니다. 세상에나.... 반짝이는 것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고, 새 하얀 진주들이 모양별로 알알이 꾀여 있는 구슬 세상이었습니다. '아! 내가 반짝이는 걸 원래 좋아했었나!', 잃었던 동심이 '나 여기 살아 있소', 외치는 거 같았죠.  볼 것이 너무 많아 눈은 이쪽저쪽 돌아가고 심장은 두근두근... '절제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계속 계산하고 있는 나를 말릴 수가 없었어요.


20만 원어치? 30만 원어치? 그 언저리




그날 새로운 세계를 영접한 나는 한 보따리를 지고 돌아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밤이면 밤마다 구슬을 끼우고, 낮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왜 있잖아요. 교회 권사님들이 주일마다 손수 뜬 수세미를 그렇게 나눠주시잖아요? 왜 그러시는지 알겠더라고요. 내 손으로 조물조물 만들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때, 그 기분이 아주 뿌듯하고 좋았어요. 핸드메이드라는 게 의미도 있고, 받는 사람한테도 주는 사람한테도 부담 없이 마음을 오고 갈 수 있잖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한테 새로운 취미가 생겼구나 했습니다.


비즈공예를 시작할 때




그런데, 작은 재미로 시작한 일도 하다 보니 덩어리가 커지더라고요. 일단, 재료 보는 눈이 생기니 더 좋고 비싼 자재를 사게 되고, 하고 싶은 게 늘어날수록 재료값은 선을 넘어갔어요. '아. 딱 재료값만이라도 벌 수 없을까? 자꾸 쌓이는 액세서리들을 어쩌지'하는 생각으로 제주도에서 동생이 운영하는 나무공방샵에 혈연을 매개로 위탁판매를 시작합니다. 


제주 '숲속나무공방갤러리' 위탁판매




물론, 하나의 판매 파이프라인으로는 재료값도 벌기 힘들었어요. 또 생각합니다. 이걸 계속할까 말까. 계속 생각합니다. 이게 계속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어느 날 밤에는 맥주를 마시며 제가 브랜드 이름을 짓고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또 로고를 디자인하고, 돌발적으로 사업자를 내고, '뭐 사업자도 있으니 통장도 있어야지'하며 계좌도 트고, '어라....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사업자 등록, 「티비필라」의 시작입니다.


2023.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마이주얼리 티비필라」



어쩌다 보니 수공예 주얼리 창업을 한 거죠.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커스텀 주얼리,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아주 작은 가게라 할 수 있어요.


현재 온라인은 인스타그램,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오프라인은 동생 매장에 위탁판매로 운영하고 있는 게, 회사 약력의 전부입니다. 사업자등록, 네이밍, 로고, 판매 사이트 딱 이 정도만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시작 단계요. 


근데요, 지금의 샤넬, 구찌, 에르메스, 루이비통도 모두 '수공예 창업'으로 시작했잖아요. 산업혁명으로 변하는 시대에 공예가 정신으로 시작해서 명품이 된 브랜드 맞잖아요. 물론 시대도 다르고 가진 능력도 다르겠지만, 수공예라는 것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커스툼, 맞춤형이 가진 미래가치를 믿고 한 번 달려볼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자기 최면에 들어갑니다. 내가 만든 액세서리에 '티비필라'라고 이름도 지어주며, 브랜드라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긱이코노미, 스몰 브랜드, N잡러가 워낙 대세인 세상에서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정신승리까지 하려고 합니다. 워워~~, 어디에 말하기도 부끄러운 '거창하다 못해 미천하게 소박한' 포부입니다.





별거 아닌 계기로, 별거 아닌 경험으로, 별거 아닌 재능을 가지고, 별거 아닌 창업을 하면서

다들 보라고 글까지 쓰는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시죠?




맞아요. 그래서 글을 씁니다.



첫 번째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때가 제가 하는 일이 별거 아니라고 느껴질 때였어요. 

두 번째 사업을 하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부질없다고 느끼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씁니다. 물론 첫 번째 사업할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훨씬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내면의 이유가 있어요.


[아주 작은 나의 브랜드, 티비필라]라는 제목을 달고 브런치에 매거진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별거 아닌 이유로 별거 없었던 듯 순식간에 그만둘까 봐 제 다짐을 유지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둘째, 별거 아닌 일이라 생각하며 창업을 하는 이들에게, 같은 길을 걸어가는 저같이 별거 아닌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멈추고 싶은 순간에도 동지가 있으면 같이 걸어가게 되잖아요. 

도전은 나쁜 게 아니에요. 무모하다는 건 결과론적인 거예요. 지금 판단할게 아닌 겁니다. 지금 내 자리가 아무것도 없는 '빈터'라면, 바로 거기를 출발점으로 만들어보아요. 내가 시작한 그곳이 출발점인 겁니다.


이런 생각으로 오늘 난데없이 상표등록도 했어요. 아무것도 안팔리는 스마트스토어 하나 만들어 놓고 '그걸 왜 하니?' 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 신청했어요. 수수료가 생각보다 꽤 들더라고요. 근데 그것보다 더 놀란 건, 급행으로 하는 고액을 지불하지 않으면 상표등록을 하는데 15개월이나 소요된다는 거죠. 시간이 걸려도 괜찮아요. 뭐, 제가 만든 이름이 얼마나 가치가 있겠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이건 깃발 꽂는 거다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한테는 15개월의 시간이 있다. 지지부진해도 용납받을 15개월의 기한! 그냥 이 속도대로 한 번 가보자.




작은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들, 우리 같이 걸어가 봅시다.


대박 나는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 쪽박 나는 길만 살살 피해서 자~알~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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