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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제적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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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Sep 23. 2024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하고 계세요.

이런 위로

      rockbalancersguide.com  


"힘들어."
                      "힘내."
"정말 모르겠어."
                      "알아."
"잘할 수 있을까?"
                      "잘 될 거야."
"어쩜 그럴 수 있니."
                      "그러게."
"정말 못 참겠다."
                      "정말 힘들 거 같아."
"집어 치고 싶다."
                       "그래,,."
"폭발하기 직전이야."
                       "아이고,,"
"대체 나한테 뭘 어쩌라고."
                       "참아야지, 어쩌겠니.."
"힘들어."
                       "힘내."
"정말 모르겠어."
                       "알아."
"......."


도돌이표 위로

도돌이표 생각

끝이 나긴 할까.

무력감의 무력, 무력의 무력감, 무력감의 무력,,




4개월이 넘게 위태위태한 상태가 지속됐다.

지금까지의 분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들은 대폭발 했다.

나는 늘 아들의 감정을 받아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20대에 이렇게 누구의 비위를 맞추는 인내가 있었으면, 아랍왕자도 꼬셨겠다. ㅜㅜ)


그러나 이 날은

날카로운 말들이 내 그릇을 넘쳤다.

하아. 더는 못 하겠구나.

 울음과 절규를 녹음했다.

녹음분만 1시간 가까이 됐다.


심리상담센터로 갔다.

정말 오기 싫은 곳이다.

나에게서 지우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더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잘 안다.

놀이치료가 뭔지, 치료사가 어떻게 접근할지.

 결국은 엄마의 책임과 의무로 전가되는 것도.

아이의 심리상담은 부모교육으로 흐른다.

당연한 거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은 내가 받아내야 하는 문제니까.

"상태를 최대한 객관화해 분석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며,,

아이의 말과 감정을 들어주며,,

,,,,"

택도 없다.

자식 앞에서 무슨 객관화


"도와주세요."라는 문자와 함께 음성파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화난 아들을 모시고 센터에 갔다.

아들의 놀이 시간에

나는 대기실 소파에서 뻗었다.

이 아들을 임신했을 때

첫째 아들의 치료시간을 기다리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젠장"


놀이수업 후에는 아이는 나가고 부모상담이 이어진다.

나는 아들이 앉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음성파일은 들어보았습니다"

"네."


어머니,
이보다 더 뭘 할 수 없을 정도로
하고 계세요.



생각지도 못한 말,

녹초가 된 몰골로 책상만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아들의 말과 행동,

 "도대체 왜 그럴까? 어떻게 해줄까?"만

 연구하고 연구했고

음성파일을 보내면서도

 솔직히 원장님의 코멘트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 '충격 같은 위로'는

의무감으로 벅찼던 나를,

최선에도 개선 없어 무력해진 나를,

고개를 들 수 없게 자책하던 나를,

그대로 인정했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아니고,
'내 노력이 쓸모없지 않을 거'라는 인정이다.


그래,

뭘 자꾸 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대로 있자.

이 문제의 주체는 아들이니

나도 인정해 주자.




아들아, 인정이 필요하니?

무슨 짐을 지고 있는 거야.


'인정'이라는 맥락으로, 아들을 다시 분석하기 시작한다.

또 고민한다.

'그래, 네가 내 아들이라서 

어린 게 그렇게 고민이 많구나.

어쩌겠니.'




PS. '힘내'라는 위로는 서로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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