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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힘내."
"정말 모르겠어."
"알아."
"잘할 수 있을까?"
"잘 될 거야."
"어쩜 그럴 수 있니."
"그러게."
"정말 못 참겠다."
"정말 힘들 거 같아."
"집어 치고 싶다."
"그래,,."
"폭발하기 직전이야."
"아이고,,"
"대체 나한테 뭘 어쩌라고."
"참아야지, 어쩌겠니.."
"힘들어."
"힘내."
"정말 모르겠어."
"알아."
"......."
도돌이표 위로
도돌이표 생각
끝이 나긴 할까.
무력감의 무력, 무력의 무력감, 무력감의 무력,,
4개월이 넘게 위태위태한 상태가 지속됐다.
지금까지의 분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들은 대폭발 했다.
나는 늘 아들의 감정을 받아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20대에 이렇게 누구의 비위를 맞추는 인내가 있었으면, 아랍왕자도 꼬셨겠다. ㅜㅜ)
그러나 이 날은
그 날카로운 말들이 내 그릇을 넘쳤다.
하아. 더는 못 하겠구나.
울음과 절규를 녹음했다.
녹음분만 1시간 가까이 됐다.
심리상담센터로 갔다.
정말 오기 싫은 곳이다.
나에게서 지우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더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잘 안다.
놀이치료가 뭔지, 치료사가 어떻게 접근할지.
결국은 엄마의 책임과 의무로 전가되는 것도.
아이의 심리상담은 부모교육으로 흐른다.
당연한 거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국은 내가 받아내야 하는 문제니까.
"상태를 최대한 객관화해 분석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며,,
아이의 말과 감정을 들어주며,,
,,,,"
택도 없다.
자식 앞에서 무슨 객관화
"도와주세요."라는 문자와 함께 음성파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화난 아들을 모시고 센터에 갔다.
아들의 놀이 시간에
나는 대기실 소파에서 뻗었다.
이 아들을 임신했을 때
첫째 아들의 치료시간을 기다리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젠장"
놀이수업 후에는 아이는 나가고 부모상담이 이어진다.
나는 아들이 앉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음성파일은 들어보았습니다"
"네."
어머니,
이보다 더 뭘 할 수 없을 정도로
하고 계세요.
생각지도 못한 말,
녹초가 된 몰골로 책상만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아들의 말과 행동,
"도대체 왜 그럴까? 어떻게 해줄까?"만
연구하고 연구했고
음성파일을 보내면서도
솔직히 원장님의 코멘트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 '충격 같은 위로'는
의무감으로 벅찼던 나를,
최선에도 개선 없어 무력해진 나를,
고개를 들 수 없게 자책하던 나를,
그대로 인정했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아니고,
'내 노력이 쓸모없지 않을 거'라는 인정이다.
그래,
뭘 자꾸 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대로 있자.
이 문제의 주체는 아들이니
나도 인정해 주자.
아들아, 인정이 필요하니?
무슨 짐을 지고 있는 거야.
'인정'이라는 맥락으로, 아들을 다시 분석하기 시작한다.
또 고민한다.
'그래, 네가 내 아들이라서
어린 게 그렇게 고민이 많구나.
어쩌겠니.'
PS. '힘내'라는 위로는 서로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