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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Sep 22. 2024

지평선은 언제나 내가 그었다.

그토록 싫은, 바 운 더 리(2)

처음 본 지평선


프랑스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곳은 몽생미셸이었다.

파리에서 렌트한 차를 몰고 달려가는 창 밖의 노르망디 풍경은

그야말로 대지와 지평선의 향연이었고, 생경함 그 자체였다.



"지구 표면에 산이 깔려있지 않을 수도 있구나. 산이 없다. 산이"



맞아. 내가 보는 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평지가 귀한 땅, 그 척박한 한반도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  

"애초에 평탄할 수가 없다"는 기막힌 현실에 직면했달까. 

주어진 환경이 너무나 달라 한탄과 애처로움에 부러워 밉단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몽생미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오는 길에 차에서 계속 봤던 몽생미셸은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오니 정작 보이지 않는다. 

"이게 가로막는 게 하나도 없는 그저 넓은 땅이구나.

 우리나라의 순천만도, 대관령 양떼목장도, 이 넓은 땅에 비길 수 없이 작구나."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로 했다. 아들들은 힘들다고 징징댔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지평선이 내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계속 넘어가며 새로운 선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마치 한계를 넘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걸었다. 

몽생미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이 멈춰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우리도 길가 벤치에 앉았다.

나는 지평선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서 이쪽저쪽 돌려댔다.


Mont-Saint-Michel


360도로 이 지평선을 담고 싶어.
음,
헉,
흡,
억,



이곳은 내가 살면서 있어본 가장 넓은 곳이다. 가장 숨통이 트이는 곳이다.

그런데,


지평선의 테두리가 나를 둘러싸며, 쭉~ 하나의 선으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넓은 땅이었는데, 갑자기 테두리만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테두리를 따라 내 머리 위로 반구의 돔이 덮이는 느낌이었다.














?

내 눈이 경계선을 자각하니, 나는 그곳에 갇힌다?

지평선은 내 눈이 만드는 걸까? 한계는 내 눈 안에 있었던 걸까?

나는 좁은 공간이 정말 싫은 사람인데,
갑갑한 게 싫고 탁 트여야 사는데,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는 데, 

여.기.까.지.라.는.

지평선은 언제나 내가 그었구나.

내가 그은 선 안에, 나를 가두고 있었구나.




내 바운더리는,

내 갑갑증은,

결국 나인가.

나가고 싶다.

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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