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따쓸까. 저 털뭉치들을. 으........... 아들 넘들만 아니었어도.." 부들부들 떨다가도,
밥때만 되면 졸졸 쫓아다니는 털뭉치들, 한 게 뭐가 있다고 때마다 밥 내놓으시란다.
"야. 털들아. 밥값이 뭔지 아냐? 벌레라도 잡아라." 핀잔을 날리면서도,
늘 내 밥보다 냥이를 먼저 챙겨준다. 언젠가부터는 엄마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아! 하나도 쓸데없는데, 존재의 가치가 있구나. 쓸모가 존재의 이유가 아니구나.
너희의 효용은 '하찮은 소중함'이다.
첫째 <다람이>는
다람쥐의 다람, 생후 두 달 아깽이로 오셔서 1년 2개월 되셨다.이름처럼 날렵하지는 않다. 대신세기의 백치미를 자랑한다. 특유의 멍충미로 우리 집을 방문한 만인의심장을 흔들어 놓는다.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사료도 씹지 못해서 으깨서 주사기로 수유하며 키웠더랬다. 지금은 뚠뚠이다. 대부분 자고 있다.
둘째 <도치>는
고슴도치의 도치, 이제 9개월이다. 6개월에 파양 된 아이를 입양했다.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람이를 보고 구석에 숨어, 매우 하찮지 않고 심각하게삼 일을 잠도 안 자고 굶었다.삐쩍 마른 퀭한 얼굴로 호랑이처럼 으르렁 거리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를 어쩌나.
역시 하찮고 소중한 존재! 삼일째 되는 날 '츄르 하나'로 단숨에 개냥이로 변신했다.지금은 식탐왕, 순둥이로산다. 계속 귓 병이 생기는 거 말고는,
셋째는 <라지>란다. 미꾸라지의 라지가 될 거라 하신다. 가상의 존재이다.물론 라지는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 생명체는 아들들의 작명이다.
다람과 도치는 작은 아들에게소소한 재미를, 큰 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남편에게는 심란한 털뭉치를, 나에게는 쿰쿰한 감자와 맛동산을 매일 선사한다. ㅜㅜ
다섯의 수컷 속에 둘러싸인 나는 여자다. 무용지물의 효용을 나는 매일 느낀다.
ps.
<무용지물의 효용>이 가장 가치 있을 때가 있다.
아들들이 학원숙제를 안 하고 학원 쨀 때, 등교거부하고 소파에 붙어있을 때,
"그래, 너희도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지.
아무것도 안 돼도 상관없어. 아무것도 하지 마. 오타쿠 아들도 사랑해.
너희를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귀엽기만 하지.
앞으로 하루에 세 번씩 시리얼만 부어줄게."
고양이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니,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아들을 보는 게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