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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꽃지 Sep 24. 2024

무용지물의 효용

어따쓸까, 이것들을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집 개체수가 늘어나 있었다.

밥때만 되면, 반려 수컷들이 하나씩 내 주위에 모여든다. 총  다섯이다.

중년 남자인간 하나, 10대 아들 두 넘, 그리고 나머지 둘은 고양이들, 다람과 도치.

암튼 난 다섯 수컷을 거둬 먹이고 있는, 절대 밥권(?)을 가진 여자다.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무용한 것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내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면서, 즉 내가 투입하는 거에 비해

쓸모가, 기능이, 정말로 티끌만큼도 없다. 아웃풋이 이토록 하나도 없는 존재는 처음이다.


"어따쓸까. 저 털뭉치들을. 으........... 아들 넘들만 아니었어도.." 부들부들 떨다가도,

밥때만 되면 졸졸 쫓아다니는 털뭉치들, 한 게 뭐가 있다고 때마다 밥 내놓으시란다.

"야. 털들아. 밥값이 뭔지 아냐? 벌레라도 잡아라." 핀잔을 날리면서도,

내 밥보다 냥이를 먼저 챙겨준다. 언젠가부터는 엄마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아! 하나도 쓸데없는데,
존재의 가치가 있구나.
쓸모가 존재의 이유가 아니구나.

너희의 효용은 '하찮은 소중함'이다.





첫째 <다람이>는

다람쥐의 다람, 생후 두 깽이로 오셔서 1년 2개월 되셨다. 이름처럼 날렵하지는 않다. 대신 세기의 백치미를 자랑한다. 특유의 멍충미로 우리 집을 방문한 만인의 심장을 흔들어 놓는다.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사료도 씹지 못해서 으깨서 주사기로 수유하며 키웠더랬다. 지금은 뚠뚠이다. 대부분 자고 있다.




둘째 <도치>는 

고슴도치의 도치, 이제 9개월다. 6개월에 파양 된 아이를 입양했다.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람이를 보고 구석에 숨어, 매우 하찮지 않고 심각하게 삼 일을 잠도 안 자고 굶었다. 삐쩍 마른 퀭한 얼굴로 호랑이처럼 으르렁 거리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를 어쩌나.


역시 하찮고 소중한 존재! 삼일째 되는 날  '츄르 하나'로 단숨에 개냥이로 변신했다. 지금은 식탐왕, 순둥이로 산다. 계속 귓 병이 생기는 거 말고는,



셋째는 <라지>란다. 미꾸라지의 라지가 될 거라 하신다. 가상의 존재이다. 물론 라지는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다.


이 세 생명체는 아들들의 작명이다.


다람과 도치는 작은 아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큰 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남편에게는 심란한 털뭉치를, 나에게는 쿰쿰한 감자와 맛동산을 매일 선사한다. ㅜㅜ



다섯의 수컷 속에 둘러싸인 나는 여자다.
무용지물의 효용을 나는 매일 느낀다.



ps.

<무용지물의 효용>이 가장 가치 있을 때가 있다.

아들들이 학원숙제를 안 하고 학원 쨀 때, 등교거부하고 소파에 붙어있을 때,


"그래, 너희도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지.

 아무것도 안 돼도 상관없어. 아무것도 하지 마. 오타쿠 아들도 사랑해.

 너희를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귀엽기만 하지.

 앞으로 하루에 세 번씩 시리얼만 부어줄게."


고양이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나니,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아들을 보는 게 한결 편해졌다.


"난 괜찮다."

물론 우리 아들들도 괜찮다.


그들은 세상에 시리얼 종류가 몇 개인지 검색한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나는 사육 난이도가 가장 낮은 사람이 될게."


어따쓸까. 이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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