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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원 Feb 18. 2022

느리고 느긋한 삶

느긋한 삶

느리고 느긋한 삶

손 원

 

한평생 한정된 시간을 살면서 많은 것을 이루려고 하다 보니 빨리빨리가 우선시되고 그만큼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많다. 빨리빨리는 비용을 줄이고 성취감과 만족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빠른 진행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함정에 빠지기 쉽고 실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동계올림픽 기간이어서 TV 실황 방송을 자주 보게 된다. 스케이트 칼날에 몸을 싣고 속도와 순위를 놓고 다툰다. 피땀 흘린 성과를 거두려고 최선을 다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인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 간의 경기에서도 가끔 실수가 나와 허탈해 하는 경우도 본다. 대부분의 실수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서두르다 보니 나오는 것 같다. 다소 속도를 줄이면 무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속도 경쟁에서 어쩔 수 없다.

 

시간 단축은 조건을 고려한 적절한 조합이어야 가능하다. 스피드 경기에서는 속도와 기술의 조합이 있어야 하고, 생산 과정에서는 재료의 특성에 맞게 조건을 맞춰야 제때 하자 없는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얼마 전 아파트 신축 공사장 붕괴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사고의 원인이 공기단축을 위한 무리한 시공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너무 황당했다. 조금만 느긋했더라면 방지할 수 있는 사고였기에 너무 아쉽다.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있는데 이를 간과하여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매사에는 필요한 기간이 소요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출산은 일러도 늦어도 곤란하다. 정기예금을 찾는 경우도 정해진 기간을 준수해야만 손해가 없다. 약속시간 준수는 상식이다. 우리의 일상은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경우는 어떤 것일까? 대표적으로 스포츠 경기일 것이다. 결승선 도착시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비용이 늘어나는 경제활동 전반도 완성이 빠를수록 좋다. 이렇게 볼 때 매사는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치는 않지만 느릴수록 좋은 것을 들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흘러가는 세월일 것이다. 세월이 느리게 간다면 좋겠지만 고장 없는 정속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절경의 협곡을 지나간다면 천천히 가기를 원할 것이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여야 느긋하게 절경을 만끽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휴식시간도 그렇고 연인과 밀회 시간도 그렇다.

 

중년을 넘기다 보니 빠르게 지나간 지난날들이 아쉽다. 남은 여생은 천천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세월이 천천히 흐른다면 보다 느긋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한 시간만 늘어난다면 늘어난 시간만큼 보람된 생활을 하고 싶다.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실천을 해 보고 싶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 왔지만 이웃을 위해 봉사한 일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간 시간과 여력이 부족하여  이웃에게 베풀지 못했다는 구차한 변명을 해 본다.

 

 은퇴생활은 시간이 많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마음이 느긋하기에 매사를 느긋하게 생각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 보면 내일 할 일이 있어 행복하다. 일을 미루어 두면 한 번 더 생각할 기회가 있기에 실수를 줄여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늙으면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매사에 느긋하기에 생각의 폭과  깊이가 더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큰 장점이기도 하다. 느긋한 마음으로 서예를 하고 창작을 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는 것 모두가 심신단련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것이 늙음의 혜택인 듯하다.

 

요즘  시내 차량 속도제한에 볼멘소리가 많다. 과거 시내 자동차 주행속도를 60km까지 제한했으나, 요즘은 50km로 했고, 어린이 보호구역은 30km 이내로 하고 있다.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여 단속하기에 여차하면 과속에 걸려들어 과태료를 물게 된다. 과거 속도제한을 느슨하게 하여 빠른 주행이 가능했다면 지금은 보다 느리게 안전운전행을 유도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는 불만이  많았으나 차츰 익숙해져 안전의식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 인간은 질주 본능이 있고  그것도 쾌속질주라 하여 거침없이 고속주행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잦아 속도를 제한하게 되었다. 어떤 도시는 시내에서는 차량 이용보다 걷거나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여 호응을 얻기도 한다. 매연과 소음이 줄고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우리는 조급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다소 느긋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라고 본다. 때로는 서두르야 하고 때로는 느긋할 필요가 있다. 즉 상황에 맞게 처신함이 답이다. 하지만 조급함보다 느긋함이 안정적이고 좋다. 느긋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시간을 여유 있게 잡으면 된다. 기차표를 예매하고 역까지 가는 시간을 감안하여 조금 앞당겨 집을 나서면 느긋해진다. 물론 미리 역에 도착하면 남는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그것은 느긋함을 위해 지불한 대가이다. 살아가면서 잠시도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다면 숨 막히는 삶이 될 것이다. 차를 기다리는 시간, 약속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느긋함 을 즐기는 시간이고 시간을 지키기 위한 배려의 시간이다.

 

우리의 삶 자체에 배려의 시간을 두어보자. 그것은 짬이 되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다. 느긋함은 그 자체로도 좋고 삶에 소금이 됨은 물론이다. (202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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