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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과사색 May 25. 2023

가능성 있다는 착각

착각이 아니게 만드려고 알부터 깨고 있다

창조를 동경한다. 창조를 통해 자아를 표출하고 실현하는 행위 자체를 동경한다. 글로 창조된 예술은 나의 자아가 발현해 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순히 쓰는 것을 넘어서서, 글로써 탄생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 안에서 확장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게 엄청난 의미를 가져다준다.


그렇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 단순히 기억 니은 디귿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나의 자아가 실현되는 글, 그 글을 구성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큰 부담이다. 마치 초등학교 미술시간 때 찰흙으로 무언가를 빚어내야 하는데 꾸물거리면 찰흙이 굳어서 더 이상 빚어낼 수 없고, 한번 굳히고 나면 다시 복구할 수 없는, 그래서 애초에 신중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다행히 글이라는 것은 꾸물거렸다고 굳어져 다시는 손쓸 수 없게 되는 속성은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마음을 재촉하지 않다 보니 신중하고 싶다는 변명이 잘도 먹혀서 이때까지 나는 이런 모습이다. 나의 소명은 글로써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한 번도 작가라는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는데 스스로를 작가라고 인식하고 있는 웃긴 무의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나태했다.


(그리고 내게 스타트업도 이와 비슷한 무게이다. 내 생각이 실물로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그래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아주 자주 깊게 생각한다.)


그러다 작년에 마치 내게 '제발 이거 보고 정신 차려라'고 누가 써놓은 것만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사람들은 '난 이거 잘해', '언젠가는 무언가가 될 거야'라는 '가능성'의 늪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그게 편하고 기분 좋으니까. 막상 실행하고 도전했다가 본인의 재능에 대해서 엄청난 비평을 듣거나, 부족해서 실현하지 못하거나, 현실적으로 결국 가능하지 않다는 결과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우니까. 그래서 주위 몇몇 친구들이 해주는 칭찬과 스스로가 주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가능성' 있는 상태로만 머무른다고.


이 문장들을 다 읽고 나서, 몸서리 처지게 싫었다. 나 또한 그 '가능성'의 상태에만 머무르는 자아도취된 한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말 싫었다. 도전하고 부딪혀서 고꾸라졌으면 고꾸라졌지, 착각에 빠져있는 내 모습은 가장 싫은 모습이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알을 깨고 나가는 시도를 하고 있다. 내가 만들어낸 글로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내가 만들어낸 스타트업 아이템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주하는 현실은 역시나 기분 나쁘다. 누군가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과 평가와 조언과 거절은 늘 기분 나쁘다. 어떤 거절을 받았을 때는 실망감에 하루종일 멍했고, 어떤 거절을 받았을 때는 화가 나서 매섭게 날이 서기도 했다. 어떤 비판을 받았을 때는 '네가 뭘 알아'라고 맞받아치기도 했고, 어떤 비판을 받았을 때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기도 했다.


아무래도 부딪히면 타격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가만히 있을 땐 평화롭다.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도, 내가 부딪혔기 때문에 들리는 자연스러운 충돌소리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동안은 타격과 충돌소리에 무뎌지는 연습이 필요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이상할 만큼이나 영혼 없이 발표를 다녀왔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평가의 말과 '그게 잘 되겠어?'라는 눈빛에도 마음이 흔들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평가할 만큼 알아?'라는 생각이 드는 오만한 경험을 하고 왔다. 난 평가받는 입장이니 엄연히 그들의 경험과 능력치가 나보다 나은 것이 객관적인 사실인데 이런 오만한 생각이 들다니, 웃겼다. 모르겠다. 결국 내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밖으로 나오려면, 자꾸 부딪히려면, 어느 정도의 무디고 단단하고 오만한 마음도 필요한 듯하다. 안 그러면 쉽게 꺾일 것 같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물러서 터지는 것보다는 '네가 뭘 알아' 하고 튕겨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쉽지는 않지만,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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