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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나비 Feb 27. 2023

닫히지 않는 문

네가 열고 간 누나의 방


별아, 누나 방은 아직도 열려있어. 늘 네가 드나들던 그 문 말이야.


네가 우리 집에 오고부터 눈에 띄게 바뀐 변화가 있다면 방 문이 아닐까 싶어.

방은 안정감 있는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소통을 막는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하지. 네가 오기 전에 우리는 어느 보통의 가족들처럼 각자의 방에서 지내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 공부나 게임, 휴식을 위해 방 문을 닫기도 했지만 괜히 문을 닫고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가두고 서로를 외면하며 지낸 시간들도 있었지. 하지만 네가 오고부터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그 밀폐된 공간은 마치 마법을 건 듯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어.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놀기 바빴던 어린 슈나우저는 집 안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고 점점 자라날수록 그 영역은 거실을 넘어 문이 굳게 닫혀있던 각자의 가장 사적인 공간까지 넘나들었지. 굳이 표현하자면 '비집고 들어왔다'가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 어떻게 보면 억지로 열게 만들었으니깐 말이야.

간혹 속상한 일들로 여느 때처럼 방 문을 닫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문 앞을 서성이며 '킁킁'거리는 콧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문을 열으라 긁어댔어. 괜히 삐뚤어진 마음에 울컥 짜증이 나서 그만하라고 문을 열면 순식간에 폴짝 침대 위로 뛰어올라 '방에서 혼자 뭐 해? 나도 같이 놀아!' 라며 반짝반짝 거리는 눈을 하곤 꼬리를 연신 흔들어대는 너를 보면 순간 나를 가뒀던 속상한 이유들이 별 게 아니게 되더라. '피식'하는 실없는 웃음과 함께 어느새 방문을 활짝 열고 같이 침대에 누워 서로의 온기에 기대 훌훌 털어버리게 돼.

그런 너로 인해 점점 방에 있는 시간은 줄게 되었고 어느새 온 가족이 한 공간에 모여 너의 귀여운 재롱에 웃기도 하고 같이 네 이야기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지내게 되었지.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같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나중엔 우스갯소리로 겨울엔 추워서 방 문 좀 닫고 자는 게 소원이라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넌 각자의 방을 허물고 모두를 하나의 공간으로 이끌어 너와 함께 하게끔 만들었어. 어쩌면 반 강제로 우릴 모아놓은 착한 악동(?)이었달까? 그렇지만 그런 변화가 우리 모두 싫지 않았단다. 항상 모두 모여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했지.


그런 네가 떠난 후, 집에 있는 몇몇 문들이 닫히기 시작했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 더 이상 열어놓을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말이야. 거실과 부엌을 연결하는 미닫이 문도, 일로 객지에 떠나 있는 형의 방도, 씻을 때마다 그 앞에 엎드려 기다리곤 했던 화장실 문도 하나둘씩 닫게 되었지.

하지만 딱 하나, 여전히 닫지 못한 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누나 방이야. 여전히 한 번도 닫은 적이 없어. 사실 닫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해야 할까?

하루는 불을 끄고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들어오시더니

"너 습관 돼서 문을 안 닫고 자는 거야?"

라고 물으신 적이 있어.

"어? 그러게. 왜 안 닫을까? 나도 모르겠네. 그냥 이게 당연한 것 같아서."

라며 무심코 대답했어.

아무리 되뇌도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더라. 그냥. 맞아 그냥. 그냥 당연해진 거야. 네가 허물었던 방 문이, 그 열린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좋아서 이제는 닫을 수가 없는 거야. 네가 열어놓은 그 문을 나서면 여전히 함께라는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별아, 누나는 아직도 닫지 못한 그 문을 통해 너를 떠올리곤 해. 혼자 있지 말라고, 나와서 함께하자며 빛으로 이끌어 준 너를 말이야. 이젠 닫는 방법마저 잊은 저 방 문이 아마 네가 떠나더라도 혼자 방에 갇혀 슬퍼하지 마라고 나에게 남기고 간 너의 메시지진 않을까?

아마 오래도록 누나의 방 문은 닫히지 않을 것 같구나.




늘 열려있던 집 문과 그 문 앞을 지키던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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