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토끼를 求하기 위해 헤이그에 왔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특사로 파견된 이준열사는 나라를 求하겠다며 각국 대표를 설득하고 국제여론을 환기시기 위해 노력했으나 열강의 냉담한 반응에 실망했다. 결국 지병으로 네덜란드에서 순국했다. 유서 깊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온 이유는 관광이 아니다. 손녀의 토끼인형은 작은아이가 헤이그에서 구입해 선물한 것으로 손녀의 애착인형이 되어 잘 때도 안고 자고 어린이집 갈 때도 들고 간다. 구입한 지 2년이 되어 토끼옷은 너덜너덜할 정도로 늘어났고 때가 꼬질꼬질하다.
어린애들은 보편적으로 토끼를 좋아하나 보다. 인형 파는 상점에 가면 토끼인형이 많고, 손녀에게도 토끼인형이 여럿 있지만 다른 토끼인형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애착인형이 더러워져서 세탁하자고 해도 싫다 하고 너덜너덜해진 토끼 옷을 사준다고 해도 ‘토끼는 평생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살 거야’ 라며 인형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준열사는 나라를 求하겠다며 헤이그에 왔고, 나는 불쌍한 토끼를 求하기 위해 헤이그에 왔다. 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토끼를 위해 토끼 친구를 사주던가 옷을 한벌 사줘야 한다. 인형가게에 왔지만 같은 모양의 토끼나 옷을 求하지 못했다. 다른 모양의 토끼는 많았지만 손녀가 갖고 있는 모양의 토끼는 결국 구하지 못했다. 실망이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네덜란드까지 왔는데 토끼를 구하지 못하다니
결국 다음날 암스테르담에 가서 토끼인형을 求했고 할아버지의 이번 해외여행 첫 번째 미션이 완료되었다. 암스테르담 인형판매점에서 똑같이 생긴 토끼를 구입했다. 단 하나 남은 새 토끼인형은 고개도 빳빳이 들고 있다. 칙 늘어져 힘없는 토끼가 원래 모습인 줄 착각했다. 토끼에게 미안하다 그동안 혹사시켜서
walter benedict라는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크지 않은 음식점이지만 egg benedict라는 메뉴가 색다르고 일품이다. 헤이그에서 egg benedict를 먹지 않았다면 후회했을뻔했던 맛이다. 음식점 분위기도 고풍스럽다.
구글로 맛집을 찾고 평점과 메뉴를 확인하고 들어온 식당이다. 음식을 맛보곤 평점을 부여한다. 구글에 의해 편리해지고, 대중에 의해 평가되고, 대중에 의해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놀라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으며 참여하고 있다. 플랫폼 사회, 놀라운 신세계가 열렸다.
두 번째 미션은 납작 복숭아를 맛보는 것이다. 유럽에 세 번 왔으나 매번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이번에도 납작 복숭아 철이 지나 동네 쇼핑몰에서는 납작 복숭아를 팔지 않는다. 납작 천도복숭아는 보이는데 일반납작복숭아는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아이가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했으나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자기 단골가게에 가보자고 한다. 아마도 단골가게에 가면 납작 복숭아가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헤이그에 살았을 때도 다른 가게에서 구하기 어려운 과일이 그 가게에는 있었다고 한다. mikros라는 마트에 가니 납작 복숭아가 있었다. 크지 않은 가게에 진열된 과일의 당도가 높은지 벌들이 윙윙거린다. 가게 밖 화분에는 올리브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막내에게 ‘아마도 여기 주인이 그리스인 일거다’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놀란다. 해외여행 전 그리스 신화를 읽은 덕이다. 가게상호인 ‘mikros’가 그리스 지명과 유사했고 가게 밖 화분 올리브나무를 보고 유추한 것이다.
토끼인형을 求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에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정문만 봤다. 문 앞에 걸린 배너의 소녀는 부드러운 얼굴선과 신비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모델의 정체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일부학자는 베르메르의 딸이라 주장하기도 하고, 혹자는 하인의 복장인데 귀한 진주귀걸이를 했기에 가상의 인물이라 말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히잡(Hijab)을 쓴 여인을 많이 봤다. 얼굴선과 분위기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비슷하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그려졌기에 모델은 네덜란드 소녀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많다. 실제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인과 다른 얼굴 윤곽을 갖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인물화는 네덜란드인의 얼굴윤곽을 잘 묘사하고 있다. 네덜란드인의 얼굴윤곽은 각이 지고 콧방울도 도드라진 형태를 띠고 있다. 며칠 다니다 보니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들 대부분은 얼굴선이 매우 부드럽다. 세계적인 해상무역부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외국과의 교류도 활발했으므로 히잡을 쓴 여인이 모델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자들이 연구해도 정체를 밝히지 못했으므로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뭐라 잔소리할 사람은 없다. 예술은 느끼는 사람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느끼는 사람이 소유하는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