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의 국연수와 최웅. 전교 1등과 꼴등의 그들, 절대 엮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이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만났다. 전교 1등과 꼴등이 함께 학교를 다니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그들. 많은 것들이 다른 둘이었지만, 연수와 웅은 연애소설처럼 서로에게 빠져 연애를 시작한다. 함께 대학교까지 진학하며 알콩달콩한 연애를 이어가던 그들은, 연수의 모진 말로 오랜 연애를 끝내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역주행을 타게 된 그들의 학창 시절 다큐멘터리.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연수와 웅은, 열아홉의 그들이 찍었던 다큐를 스물아홉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찍게 된다.
순간의 소중함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그 힘든 시기가 끝나 있기도 하고 무뎌지기도 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시간이 약이라지만, 한번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고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온 연수와 웅의 다큐멘터리처럼, 힘든 시기의 상처들은 현재의 우리를 불쑥 덮쳐 그때의 기억과 마주하게 한다.
다큐 촬영이 끝나갈 즈음 시작된 연수와 웅의 연애는 24살의 나이에 끝이 난다. 일방적인 헤어짐을 고해야 했던 연수와 5년이 지난 지금도 헤어짐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웅. 두 사람에게 학창 시절의 다큐멘터리는 그저 피하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두 번째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그때의 기억과 마주하길 선택한다. 다큐 촬영의 과정에서 투닥거리는 연수와 웅의 모습을 통해 단순한 청순 멜로물로 나아갈 것 같던 드라마는, 그들이 다시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을 아픔 속에서 드러난 진심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한 편의 성장담으로 변모한다.
늘 혼자라고 생각하고 힘든 가정형편의 어려움을 짊어지려던 연수는 자신의 삶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졌던 기억으로 인해 안정된 삶을 추구하며 점차 스스로를 가둬가던 웅은 처음으로 지금 자신이 가장 원하는 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하나뿐인 엄마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지웅은 엄마에게 드리워진 죽음 앞에서 그녀를 위해 카메라를 켠다.
과거라는 게 그래요. 벗어나려 하면 꼼짝없이 그날에 가둬요.
꼼짝없이 날 가둘 것 같은 과거에서 그들은 지금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소중함으로 이겨낸다. 비록 지금 이 순간 역시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리지만, 지금의 소중함을 몰랐던 과거와 그 소중함과 함께 지나보낸 과거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그래서 그들은 늘 투닥투닥거리면서도 현재의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서로를 결국 보듬는다.
잔잔한 인기
<그 해 우리는>은 5.3%의 최고 시청률로 그리 높지 않게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주로 온라인 상에서 큰 화제를 불러오며 2030세대에 지속적인 잔잔한 인기를 끌어왔다. <그 해 우리는>은 뻔하디 뻔한 로맨스 드라마다. 사실 로맨스 드라마에서 클리셰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때문에 뻔할 수밖에 없는 재료들로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가 관건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본 드라마는 극적인 장면들보단 현실적으로, 인물들의 연애스토리임과 동시에 성장스토리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성장이 없는 드라마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결핍은 보다 현실적이었고 그렇기에 먹먹함이 더했다. 등장인물 각자가 가슴에 담아뒀던 아픔을 통해서 이별하고, 재회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시청자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었다.
<그 해 우리는>의 핵심 소재는 다큐멘터리다. 국연수과 최웅을 이어주는 다큐라는 소재는, 가슴속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는 본 드라마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장치로 작용했다. 회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터뷰 장면은 극 중에서 인물들의 중요한 심경을 대변하는 내레이션을 어색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내레이션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직접적인 장치이기에 느껴지는 어색함을 드라마의 구조로 극복해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절절한 대사들은, 배우들의 감정적인 표현을 한층 더욱 살아나게 했다.
그 해 우리는
지금을 되돌아보고 싶어.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연수의 곁엔 늘 함께해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함께 유학길에 오르자는 웅의 제안에 한국에 남아있길 택한다. 소중했던 지금을 되돌아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과거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하루를 과거라는 거울을 바라보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과거가 될 '지금'의 순간엔 과연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 해 우리는 비록 아픔을 안고 살아왔을지라도, 그 순간순간의 우리는 소중했고, 헛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 해 우리는 어떠한 모습일지 기대하며 카메라를 켜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