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후면 정년퇴직을 앞둔 상사가 직원들에게 짧은 글과 함께 랜터 윌슨 스미스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시를 전체 메신저로 보냈다. 평상시 그가 얼마나 직장에 열심히 인지 아는 난, 그 시를 보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이 없어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눈으로 쓱 읽어내려간 시를 다시 볼 때쯤, 나도 모르게 답장 버튼을 눌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제 읽은 책의 문구가 생각나서 보냅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다.
한정원에 ‘시와 산책’이라는 책 속 문장이었다. 얇고 작은 책이지만 처음 읽었을 때 에세이 치고는 내용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에세이를 써야 한다면 나는 절대 못 쓸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글재주 없음을 아쉬워하며. 그런데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다시 보았을 때 이전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문장들이 곳곳에 들어있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잠시 후 모니터에는 메신지를 확인했다는 메시지가 깜빡였다. 그제야 시와 책에 파묻혀 있던 나의 정신이 사무실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상사에게 늙었다니. 누가 전체 메신저에 답장을 보낸다고. 잠시 감상에 젖어 회신을 보내다니. 그것도 늙었다고. ‘아!, 답이 없네’. 혹시라도 기분 상하진 않았을까. 어차피 수신확인이 된 이상 후회는 의미 없었다.
메신저 기억을 지우려니 생각은 다시 나이 듦으로 흘러갔다. 작가는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다는데, ‘온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늙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아름다운 표현에도 나는 늙는 게 싫은데.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제 내 키를 훌쩍 넘은 덩치 큰 고등학생 아이를 보면 깜짝 놀란다. ‘내가 이렇게 큰 애 엄마야?’ 아이가 크는 건 당연한 거지만, 내가 나이 드는 건 뭔가 손해 보는 거 같다.
그렇다고 안 늙을 수는 없으니 그럼 방법은 나이를 무시하는 거? 의식하지 않는 거? 어렵다. 초점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맞추는 것은 어떨까.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온 마음을 다하는 건 어떨까. 결국,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은 게 되겠지만 말이다. 계속되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고 있었다. 어느새 메신저의 기억은 잊혔다.
며칠째 비 오는 날씨가 이어지더니 날이 개었다. 딸이 아닌 며느리를 내놓는다는 따가운 봄볕에도 우리는 반가워하며 점심을 먹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저편에서도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바로 그 상사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답장 감사합니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 문구지요. 이렇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살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다음에 점심 꼭 살게요.”
그는 일행에게 메신저를 이야기하며, 감사해하고 있었다. 상사와 내가 서로 다른 방향 걸음을 옮겼을 때, 내 옆에 있던 직원들은 도대체 무슨 답장을 보낸 건데 이리도 칭찬하냐며 궁금해했다. 모두 같은 메시지를 받았지만, 답장 한 사람은 우리 중 나뿐이었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내내 ‘시와 산책’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책 제목을 어떻게 알았을까? 설마 인터넷에 검색해본 것일까? 어찌 됐든, 나의 작은 감성이 누군가를 그토록 행복하게 했다니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온 마음을 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