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무섭게 뛰더니 급기야 나는 쓰러졌다. 꿈이었다. 환하게 ‘엄마’를 불러대던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그때쯤 네댓 살의 귀여운 딸과 아들이었다. 얼굴을 맞대면 젖 냄새 가득했고 내 품에 폭 안길 때면 보드랍고 포동포동한 팔다리의 온기가 느껴졌다. 세상 전부인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 아들을 나는 다른 이에게 내어주었다. 이유는 모른다. 어떤 어색함도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윽고 통째로 삶아진 아들이 음식이 되어 누워있었다. 나는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장면이 급변하고 내 옆에서 어린 딸이 놀고 있다. '왜? 아들은 없는 거지?' 그제야 나는 아들을 찾아 헤맸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덩어리가 된 어린 아들을 보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 아들을 내가. 나는 식인종이었다. 온몸에 전기가 흘렀다. 무서웠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이야! 동생이 사라졌다는 것을 모른 딸은 혼자 놀며 동생을 기다렸다. 울부짖어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건 꿈이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꿈은 깨지 않았다. 숨이 목구멍 끝까지 찼다. 눈물도 말랐다. 가슴이 무서운 기세로 뛰다가 곧 급브레이크를 잡을 듯했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아이 이름을 불러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힘이 빠졌고 나는 쓰러졌다.
눈을 떴다. 심장박동은 미처 셀 수 없게 빠르게 달렸다. 꿈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불안해진 마음은 주체할 수 없었다. 등골이 싸해 왔다. 새벽녘 집안은 조용했다. '쿵' 하고 내려앉은 마음을 끌어올리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심호흡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던 아이 방을 기웃거렸다. 나는 누군가가 ‘세상에 보탬이 된 혹은 제일 잘한 일이 뭐냐?’ 고 물어본다면 똑같은 답을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거. 그런 내가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요즘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한 때문일까. 첫째 때, 딸아이와 우리 부부가 원하는 학교는 달랐다. 우리는 과연 아이에게 그 학교가 맞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결국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올 초에 딸아이는 다른 학교로 전학했다. 학교는 좋지만, 자신과 환경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진작에 좀 더 설득해서 말려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데 아들이 누나가 갔던 그 학교에 가겠다고 말한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법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노파심이 든다. 조심스럽게 아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두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은 티격태격하는 게 일상이지만 사이가 좋다. 누나가 동생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동생이 누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엄마·아빠도 함께다. 주말이면 같이 라면이나 떡볶이 같은 간단한 요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입이 즐겁기에 가벼운 대화부터 편하게 툭 하고 시작된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좋았던 일, 기분 나빴던 일, 황당했던 일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무엇을 해도 예쁜 아이들이니 말하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다. 어린 사촌 동생들과 또래처럼 뛰어놀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간식을 챙겨드리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사춘기가 왔었는지 모르게 다정하고 부드럽다. 핸드폰 갤러리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본다. 아이들 덕분에 기쁘고, 행복하고, 웃는 날이 참 많았는데 아이들이 참 빨리도 커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아이들을 소중함을 내가 잊었었나? 깎아 머리를 한 통통한 볼살에 어릴 적 아들 사진에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내가 감히. 내 사랑을 확인해 준 오늘 꿈은 완전 개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