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누나는 디저트 카페를 한다. 파이, 케이크, 커피 등을 파는 동네 가게다. 가게는 내가 둘째를 낳은 다음 날 문을 열었다. 우리 둘째가 올해 15살이 되었으니 형님네 가게도 15살이다. 형님은 단골손님들을 위해 15주년 이벤트를 준비하며 신이 났다. 그날은 모든 손님에게 아메리카노와 직접 구운 스콘, 크림치즈를 바른 과자까지 서비스로 나갈 계획이다. 그녀는 카페 벽에 장식하고 선물 재료들을 준비하며 분주했다. “그날 저도 가서 도울게요” 주말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하루를 봉사하겠다 마음먹었다. 누구보다 우리 가족을 늘 생각해 주는 형님에게 이런 기회를 빌려 도움이 되고 싶었다.
형님은 손이 참 빠르다. 그리고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호두 파이, 피칸 파이, 무화과 파이, 치즈케이크, 초코케이크, 딸기 케이크, 마들렌, 각종 쿠키 등 모든 디저트는 형님의 손을 거쳐 나온다. 깔끔하기론 제주도 1등이다. 가게를 방역하러 오는 전문 업체 사장님 말이다. “많은 가게를 다니지만 이렇게 깨끗한 집은 여기가 최고예요” 거기에다,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진 디저트는 맛도 좋다. 이 모든 것이 카페 운영의 필수 덕목이라면 형님은 단연코 최고의 사장님이다.
몇 년 전, 갑자기 빠져버린 아르바이트생 대신에 긴급하게 올케인 내가 투입되었다. “몇 시간만 가게에서 좀 도와줄 수 있어?” “네, 괜찮아요. 갈게요” 흔쾌히 대답했다. 형님이 디저트를 만들 때마다 나오는 주걱, 볼, 제과 용기 등은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이제 곧 등장할 다른 도구와 함께 씻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그릇 하나가 나와도 바로다. 씻은 도구들은 건조기에 들어가고, 다시 꺼내 각자의 위치에 반듯하게 놓아야 한다. 열심히 설거지하고 있으면 어느새 사장님은 반죽하다가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며 다시 테이블을 정돈하고 있다.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척척 일해낸다. 아직도 개수대 앞에서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헹구고 있는 내 손이 미안해진다. “형님, 죄송해요, 제가 손이 느려서”, “아니야, 그래도 예전보다 아주 빨라졌네” 부지런한 사장님을 쫓아가려면 알바는 더 빨라야 한다. 형님은 자꾸 앉아서 쉬라고 하는데 의자에 앉으면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그다음 할 일이 생긴다. 몇 시간의 알바 대타가 내게는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15주년 행사 날, 몇 년 전 알바생의 마음으로 무장하고 아침 8시 집을 나섰다. 오늘의 주요 임무는 스콘과 크림치즈 쿠키를 테이블마다 준비하는 거였다. 낮이 되면서 가게가 바빠지기 시작하자 설거지와 재료 손질까지 도우미 영역을 넓혀갔다. 가끔 짬이 날 때 나무 의자에 앉긴 했지만 계속 들어오는 손님 덕분에 채 3분을 못 앉았다. 손님에게는 여유의 오후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즐거운 외침을 하며 김밥과 피자를 가게 한편에서 먹으며 꽉 찬 15주년 일정을 소화해 냈다. 주문이 들어와 메뉴가 나가고, 다시 테이블을 정리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2시간 이상 서 있었다. 매일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나인데 기특했다.
하루 동안 지켜본 15년이 된 가게에는 단골손님이 참 많았다. 동네 카페지만 굳건히 지켜온 덕분에 카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손님들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그 손자까지 단골인 가족들, 주말 오후 카페를 찾는 부부, 자매, 친구들.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서울 아저씨, 바이올린 언니, 유기농 언니, 프라다 언니 등 형님은 단골들의 특징을 별칭으로 불렀다. 일 년 내내 문을 열고, 사장님이 늘 자리를 지키는 동네 카페는 그들에게 특별한 공간 같았다. 동네 사랑방 같은 그곳은 사람들이 오가며 마음 편히 혼 차 할 수 있는 쉼의 공간, 여유의 공간이었다. 형님네 가게가 참새 방앗간이 돼버린 단골들은 그냥 그곳에 카페가 있는 자체만으로도 좋아하는 거 같았다.
카페 주인 역시 그들에게 감사해했다. 15주년 이벤트도 힘든 코로나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단골들을 위한 자리였다. 15년 동안 가게 주위에 크고 작은 커피숍이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했지만, 형님네 가게는 늘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고 늘 사람들이 찾아왔다. 오늘은 그런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 날이었다. 처음 오는 손님들은 아메리카노가 무료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내가 세팅한 작은 크림치즈 과자와 스콘을 행복한 듯 바라보았다. 소소한 디저트에 감사해하는 손님들과 그 마음을 느끼며 더 기쁘게 디저트를 내어놓는 사장님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소박한 이벤트를 통해 행사를 준비한 사장님도, 도우미를 자청한 나도, 카페를 찾아 준 손님들도 모두가 각자 선물을 받은 듯했다.
“형님! 오늘이 15주년인데 다음번 행사는 언제 하실 거예요? 5년 후, 20주년?” “아니, 딱 15년 후에 30주년 행사할 거야. 그때는 나도, 단골들도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겠지” 벌써 30주년을 그려보는 듯 그녀의 표정은 잠시 생각에 잠긴듯했다. ‘지금처럼 빠르고, 부지런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15년 쭉 갑시다. 저도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빨라진 동작으로 알바 대타 뛸 수 있을 거예요. 12시간 서 있어도 멀쩡하게 탁구로 체력을 키워볼게요’. 15년 뒤를 상상하듯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녀를 보며 마음으로 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