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회사에서 겪은 레이오프 목격담
약 2년 전, 팬데믹 이후 글로벌 회사에서 경험한 인원감축 과정을 기록해본다.
코로나 직전 2019년, 회사의 실적은 최고치를 찍었다. 누적 OO 억 개의 판매 건수를 달성하며 CEO와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고, 2020년 1월 통보받은 성과급은 회사에 진심으로 충성을 다짐했던 액수였다. 워낙 업계 자체가 잘 나가고 있었고, 글로벌 플레이어 중 하나였으니 전성기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팀의 성과도 KPI를 몇 배씩 초과 달성하며 연달아 행복한 분기를 보내고 있었다. 팀 분위기도 좋고 일만 열심히 하면 그대로 성과로 나왔다.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역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성과 확인하려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즐거웠다.
2020년 1월 말, 중국에서 사람들이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는다는 뉴스가 나왔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과 일본에서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 업계에 있다 보면 외부적인 이슈가 생기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다.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나고, 불매운동을 하는 등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이슈가 터지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는 쉽게 지나가지 않았고, 회사의 매출은 지옥행을 타기 시작했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취소율이었다. 하루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의 광고비를 쓰던 회사는 대부분의 광고를 중단했다. 거의 모든 테스트성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그리고 모든 채용 프로세스를 중단했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며 슬슬 동종업계의 회사들이 인원감축을 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동료들이 불안해했다. 분기별로 하던 타운홀은 주간으로 바뀌었고, 매주 실시간 QnA를 진행했다. 우리도 인원감축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일 많았고, 몇 주 동안 CEO는 아직은 계획에 없다고 말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결정했고, 퇴사 통보를 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화상으로 진행된 타운홀에서 CEO는 레이오프를 말했다. 지금까지 CEO로서 내린 결정 중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며, 어쩔 수 없이 다운사이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타운홀이 끝난 후, 누군가에게 쉽게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혹시 이 친구가 해고 대상자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에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먼저 연락이 온 동료 몇 명과 서로가 해고 대상자가 아님에 안심하며 그날 저녁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회사 메신저를 켜는 것으로 출근했고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나와 불안하다며 이야기를 주고받은 동료의 계정이 비활성화되어 있었다. 회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의 커뮤니케이션 채널, 데이터베이스 등 모든 계정의 접속 권한이 끊겨있었다. 타 부서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타격을 많이 받은 부서는 1~2명만 제외하고 모두 해고를 당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사람들이 나가니, 남아있는 사람들의 업무도 난리가 났다. 회의에 들어가면 회의 분위기는 거의 장례식 분위기만큼 침울했다. 4명이 하던 일을 3명이서 해야 하니 업무량은 많은데 인수인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아 업무가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나와 접점이 있던 동료들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좋은 회사로 이직을 했다. 남아있는 동료들도 지금은 이미 퇴사한 동료들이 많다. 폭풍은 그렇게 지나갔다.
내가 해고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회사 구성원으로서 가까이 겪으며 느낀 점들을 써본다.
다행이었던 것
· 레이오프 대상자들이 다른 기회를 구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
회사에서는 타 회사의 리크루터들이 해고 대상자들을 찾을 수 있도록 희망자에 한해서 프로필과 이력서를 등록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주었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 높은 수준의 금전적인 보상 패키지
해고 대상자들에게는 꽤 높은 수준의 금전적인 보상이 있었고, 외국인들에게는 최대한의 비자 지원을 해주었다.
아쉬웠던 것
· 몇 번이고 구성원들을 안심시켰지만 바뀌어버린 계획
물론 인원감축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미리 구성원들에게 공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몇 주간의 타운홀에서 인원감축 계획이 없다고 거듭 말했으나, 결국 갑자기 발표한 것에 다들 큰 충격을 받았다. 큰 규모의 인원감축을 하기 위해선 꽤 오랫동안 체계적이고 신중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이미 해고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계획이 없다고 커뮤니케이션한 것은 아쉽다.
· 다른 대안들이 선행되지 않았던 것
레이오프 전, 직원들의 많은 질문 중 하나는 '레이오프 대신 월급 삭감을 하는 것은 어떻냐'였다. 자발적으로 월급을 줄일 의지가 있는 직원들도 많았고, 사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잠시 월급을 적게 받는 대신, 동료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지만 회사의 액션은 인원감축이었다. 회사는 월급 삭감도 이미 고려한 옵션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고 했다.
· 남은 사람들에 대한 케어
연구에 따르면 레이오프 이후 남은 직원들의 75%가 업무 생산성이 줄어든다고 한다. 동료들이 떠나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그들이 하던 업무를 해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에서 남은 사람들에게 더 세심한 케어를 해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