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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레인 Dec 23. 2021

#1.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제목 때문이었다. 여자가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라는 영화를 본 것은. 평소 꿈이 많던 사람이었다. 


주인공 엔드레는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밤이면 몽환적인 꿈을 꾼다. 뿔이 아름다운 사슴이 되어 설산을 달리는데 눈이 슬픈 암사슴과 함께다. 나란히 걷거나 달리며 홀로 두지 않는 것이 둘에겐 사랑인 듯 보였다. 여주인공 마리어는 엔드레와 같은 회사에 다닌다. 둘은 이따끔 구내 식당에서 스치는 정도였을 뿐 이렇다할 대화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는데 사내에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며 서로 얽힌다. 심리 치료사 면담 중에 둘이 매일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리어가 작은 사슴이었다. 꿈에선 뿔이 근사한 숫사슴과 눈이 슬픈 암사슴이 나란히 달렸고 현실에선 엔드레와 마리어가 나란히 잠들었다.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여자는 감독 이름을 검색했다. 헝가리 감독 일디코 엔에디는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묶은 맨 얼굴의 여인이었다. 사진을 몇 장 더 찾아본 것은 눈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눈을 하고 무엇을 보며 살았길래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굵은 뿔테안경 너머 커다란 갈색눈이 여자의 눈과 닮은 것도 같았다. 


'너는 눈길이 멀어 마주 앉은 사람을 외롭게 하지.'


떠나며 남자가 남긴 말이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남자는 자주 질문했는데 대개 여자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너를 보고 있지." 대답하면 아직 사랑이었을 때 남자를 피식 웃었다. 사랑이 끝난 뒤엔 원망했다. 보이는너머 먼 어딘가를 향하고 있어 마주 보고 있지 않는 듯하다, 같이 있는데 더 외롭다고 했다. 그러나 여자는 계속 남자를 보고 있었다. 방송국 복도에서 인연을 먼저 알아본 것은 여자였다. 여자는 꿈에서 남자를 먼저 만났다. 현실에서 마주친 것은 일주일 뒤였고, 특별한 사이가 되는 데까지는 한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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