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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만보 Jun 06. 2023

5년차면 회사에서 울지 않을 줄 알았다.

신입사원 시기를 지나면 회사에서 울지 않을 줄 알았다. 5년차 정도가 되면 새로운 일을 받아도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관계에 대한 처세술도 터득해 나를 지키는 일에도 나름 능숙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같은 팀 내에서 파트가 바뀌게 되면서 A파트의 월 정산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직전 월 매출/매입의 정산을 차월 영업일 4일까지 마무리했어야하는데 차월 영업일 8일이 되어서야 겨우 끝냈다. 그 과정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우습게도 생전 처음 같이 일하게 된 재무팀 선배 앞에서 울어버렸다. 


 인수인계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후배에게 일을 가르쳐줄 때, '어떻게 하면 후배가 최소한의 시간을 투입해서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엑셀 수식, 고객사 히스토리를 업데이트해서 주는 성향인 나와는 다르게 그는 "나는 효율적으로 업무하는 방법은 생각 안했으니 너가 한 번 해봐"의 태도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엑셀에 인수인계 자료를 정리해서 내 업무를 이어받을 사람에게 주는 것은 인수인계의 끝이 아닌 시작인데 "자료 읽어보고 스스로 해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의 식이었다.


 여기서 '뭐가 이상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신입사원도 아니고 5년차면 업무의 큰 흐름을 아니까 인수인계서 보고 혼자 해보고 모르는 걸 물어보는 방향으로 인수인계해도 되는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해야하는 회사원이다. 데드라인을 못 맞추면 그냥 일을 못한 것이 된다. 업무의 효율성을 목표로 놓고 보면 선배가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을 빠르게 알려주고 후임자가 그 일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도록 돕는게 인수인계의 미덕인 것이다. 아무리 큰 흐름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옆에서 붙어서 알려주지 않으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기가 십상이다. 한 예로, 사내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메뉴를 써야하는 상황인데 인수인계서에는 'a프로그램의 b메뉴에서 처리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적혀있다면 a프로그램의 b메뉴에서 어떤 항목을 추가하고 제거해서 자료를 만들어야하는지 모르는 후임은 바로 일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야속한 시간만 흐른다.


 개인적으로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후배들이 일을 물어보면 아무리 바빠도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같이 보는 편이다. 내가 모르는 일이라면 "나도 모르겠다. 더 위의 선배에게 물어보라"라고 얘기해주고 내가 아는 일이라면 방법을 단 시간내에 알려줘야 그들도 시간낭비 하지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차의 선배가 일을 던지듯이 줘놓고는 자기도 새롭게 맡게된 일 때문에 바빠서 못알려주겠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루는 인사고과 결과가 나와서 출근하자마자 그걸 보고있는 그를 보고 '바쁘지 않구나'라고 생각해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얘기하니 인사고과 페이지를 빠르게 닫으며 "지금은 바빠서 못봐준다"는 얘기를 했다. 또 다른 하루는 다른팀으로 발령나기 전에 팀장님과 그분보다 더 높은 선배가 시킨 일을 안하고 가서 팀장님과 선배가 "그 일은 너가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지", "하기로 한 일은 잘 하고 있지?"라고 얘기했더니 "저도 지금 바빠서 못해요. 저 없었으면 팀내에서 알아서 해결하셨을테니 팀내에서 해결하세요"라고 말하며 퇴근하는 걸 보고 믿어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며 쒸익쒸익대는 나를 보고 남자친구는 "왜 불합리한 것을 이야기하지 못하냐"라고 물었다. 주말에도 일하고 주중에도 혼자 10시까지 일하는 여자친구를 생각해서 해준 말인 것은 알겠지만, 팀장님과 한 직급 위의 선배가 일을 시켜도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에게 "왜 인수인계 제대로 안해주세요? 저도 제대로 인수인계 못받아서 못하겠어요! 라고 해봤자 손해보는 사람은 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사람은 저 사람인데 내가 후배라고 굽신굽신대며 일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불쌍해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이 일에만 몰두했어야 했나?', '빠르게 먼저 들이 받았어야했나?', '조금 더 전략적으로 이번달에는 스스로 못하겠으니 반반나눠서 해주셔야 한다고 강력하게 어필했어야 했나', '이런 상황을 보며 방관하는 팀장님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등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팀장님에 대한 원망이 생겼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일'이었다. 어찌됐건 스스로 터득해서 매월 해야하는 일이기에 "새로운 팀일도 바쁘신데 계속 여쭤봐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모르는 걸 물어보며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 개고생하고 다음 달부터는 혼자 잘 할 수 있을거란 희망이 생겨 다행이다. 어찌됐건 이번 경험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잘하는 인수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다. 하기 정의는 혹시나 미래에 입퇴사자가 많은 팀의 팀장이 된다면 요긴하게 쓰려고 한다.


 첫째. 인수인계서는 최대한 상세하게 적어서 공유한다.  

        예) 프로그램의 메뉴를 사용하는 방법(날짜는 x월~y월 지정 등)과 같이 디테일한 내용을 적어놓는다.

 둘째. 인수인계의 주체는 3명이어야한다. 일을 넘기는자. 일을 받는자. 그 팀의 팀장.

         왜냐하면 후배들은 인수인계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선배에게 직접 불만을 토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장의 관리 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셋째. 인수인계는 3단계로 진행한다. 선임이 후배에게 일을 하는 방법을 직접 먼저 보여주고, 똑같은 일을 후 

       배에게 시켜보고, 배가 했을 때 막히는 것을 같이 봐주는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인수인계서만 넘겼을 경우, 업무 시간만 늘어나고 일은 진행이 안되기 때문이다. 

넷째. 후배가 선배에게 인수인계 받을 때, 질문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예) 팀장님이 두 사람을 앉혀놓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번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업무가 익숙해질 때까지 알려주는 것도 당연하다" 라고 얘기하며 결국 인수인계의 목적

        은 새로운 사람이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르는 것임을 강조한다. 


 물론 인수인계는 일을 넘기는 사람만이 잘해야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배우는 사람 또한 적극적인 자세로 최대한 빠르게 일을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의 태도가 잘못됐다면 그 또한 따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5년차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생활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회사의 뜻에 따라 일하고 싶지 않은 파트에서 일을 하면서도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참 힘들게도 산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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