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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Feb 15. 2023

메마르지 않도록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해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퇴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루 중 지하철이 가장 붐비는 시간에 나 또한 몸을 구겨가며 붐빔을 보탠다. 지하철은 복작복작 사람들로 들끓지만 왜인지 그 어느 때보다 큰 공허함이 느껴진다.


휴대폰으로 지난밤 보다 잠든 넷플릭스를 마저 보는 사람, 타자를 열심히 치며 버추얼 수다를 떠는 사람,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에 아직 취한 듯 보이는 사람, 힐끔힐끔 다른 이를 구경하는 사람, 종잇장을 만지작 거리며 책 이야기에 빠져있는 사람, 역과 역 사이 틈틈이 눈을 붙이는 사람,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는 사람 …


각자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곳을 향해 가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는 바짝바짝 메마른 눈빛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작지만 중요한 일들을 하느라 바빠 나 자신을 돌아보기를 소홀히 한다. 누군가에겐 짧고 누군가에겐 긴 출퇴근길, 나 자신을 칭찬과 격려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그래도 조금은 삶이 덜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지난밤 보다 잠든 넷플릭스를 마저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화를 기다려보고, 가까운 사람에게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애정 어린 카톡을 보내보고, 점심시간 뜨끈한 순대국밥으로 해장할 생각에 술기운을 버텨보고, 다른 이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아보고, 책 속의 주인공에 이입해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고, 짧지만 아주 단잠으로 부족했던 에너지를 채워보고, 그저 멍을 때려 보고. 그냥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운치 하나만.


조금은 지친듯한 그 눈빛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세상을 살고 있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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