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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맘 찐약사 Dec 22. 2021

조리원 - 지나고 보니 그곳은 천국

조리원 생활 이야기

2주간 묵었던 조리원 내방 그리고 조리원에서 바라본 전경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한 기간 포함, 총 열흘간의 병원생활 끝에 드디어 말로만 듣던 조리원에 입성하게 되었다. 내가 간 곳은 사설 조리원이었다. 병원 조리원과 비교했을 때 시설도 깔끔했고 산모와 아기 케어를 좀 더 잘해준다고 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누군가가 조리원은 천국이라 했다.

나 또한 기대하고 들어간 조리원 생활이 마냥 천국일 것만 같았다. 신생아실의 통유리창을 통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아기를 볼 수 있고, 조리원 밥은 맛있고, 산모들과의 공감 가득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조동(조리원 동기)까지. 여러모로 나는 조리원 생활을 무척 기대했었다.


조리원의 첫 느낌은 너무 좋았다. 깔끔하고 널찍한 방, 커다란 사이즈의 TV, 맛있는 밥. 유축기계의 샤넬이라 불리는 메델라 유축기까지 보고 나니 조리원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몸조리가 절로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내렸던 결론은 조리원이 병원 입원실보다는 훨씬 좋다는 것. 병원에서 보다 몸도 훨씬 회복된 상태였고, 병원과 비교했을 때 밥이건 시설이건 뒤떨어지는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리원 생활이 당시에는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아주 푸짐했던 조리원에서의 식사. 집에서도 누가 이렇게 차려줬으면 좋겠다.


조리원의 산모들은 매우 바쁘다. 기상 후 스케줄은 식사-수유-유축, 크게 이 세 덩어리로 반복이 되고 중간중간에 수업과 마사지가 포함되어 있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고봉밥에, 미역국은 한 그릇 가득 나왔고, 영양소가 고루 갖춰진 반찬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산모마다 먹는 양은 다르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식사를 거의 다 먹었다. 모유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많이 먹어둬야 한다. 억지로 먹은 건 아니었다. 실제로 수유를 하고 나면 허기진다.


수유시간은 3시간마다 돌아온다. 신생아들은 조금씩 많이 먹기 때문에 3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한다. 사실 수유는 산모가 아니더라도 수유실에 배치된 많은 선생님들이 대신 다 해주실 수 있다. 하지만 산모들은 조리원에서 수유를 자주 해 보면서 익숙해져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목적도 있고, 아기를 자주 안아보고 싶은 이유도 있기 때문에 3시간마다 수유를 하러 부지런히 수유실로 향한다.



병원 수유실에서는 30분 내외로 수유가 끝났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젖을 거의 물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젖병 수유만 하면 끝나기 때문이다.


조리원 수유실에서는 수유시간이 기본 한 시간이 걸렸다. 수유시간에는 직접 젖을 물려보며 수유 연습을 해야 하는데, 아기들도 제법 컸다고 젖 물기를 시도하고 안 물리면 있는 힘껏 울기도 한다. 이렇게 아기와 엄마가 합을 맞춰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어느 정도 연습을 했다 싶으면, 또다시 분유로 보충 수유를 해줘야 한다. 수유가 끝났더라도 아기를 안고 트림을 시켜야 했고, 아기를 안고 몇 분 더 바라보거나 수유실의 산모들과 간단한 수다를 떨다가 나오면 1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다.


유축은 수유를 하고 방을 돌아오면 바로 진행해 주어야 한다. 나의 가슴에는 젖이 돌기 시작했는데 빠는 힘이 부족한 아기가 양껏 먹지 못해서 가슴에 모유가 남아있을 수도 있고, 3시간마다 일정한 자극을 줘야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잘 돌게 되어 모유가 잘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축 시간은 한쪽 15분씩 총 30분이 소요된다.


유축기계의 사넬로 불리는 메델라 유축기


'식사-수유-유축'의 간단하게만 보이는 스케줄이지만 많은 양의 식사를 천천히 다 먹고 수유 콜이 오면 1시간 내외로 수유, 그리고 30분 이상 소요되는 유축까지...


그리고 좀 쉬다 보면 다시 수유 콜이 온다. 이 간단한 스케줄의 반복. 쉬는 시간에 혹 마사지나 수업이 끼어 있기라도 하면 쉴 수가 없다는 뜻이다.(조리원에서는 마사지받는 것도 일이다.)


이런 이유로 조리원 생활이 마냥 즐겁지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확산이 되어 남편의 조리원 출퇴근마저 금지되고 나니 나 홀로 조리원 생활이 외롭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조리원이 천국이랬어?' 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반전인 것은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쭈니가 집으로 오니 알겠더라. 왜 조리원이 천국인지를.


당시 나는 밤에 아기가 안 잘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단순하게 '한 번쯤 일어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리원 입소 당시, 조리원에서의 새벽 수유를 묻는 설문지가 있었는데, 당연히 나는 'No'에 체크를 했었다.(조리원에서는 산모가 원한다면 새벽 수유가 가능함)


그렇다.


조리원에서는 밤에 잠을 잘 수 있었다!


비록 새벽 3시쯤 일어나 한 번 유축을 하긴 하지만 단유한 엄마들은 유축을 안 해도 될 것이고, 한 번의 유축쯤이야...


집에서는 나의 생각보다 더 많은 횟수로 일어났다. 잠에 약한 내가 새벽에 3-4번씩 깰 줄이야. 그것도 일어나 짧게 수유 후 바로 잠드는 것도 아니고, 30분가량의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아기와 씨름을 하다 자니 새벽엔 거의 잘 수가 없었다.



결론은 만약 출산 후 조리원에 가게 된다면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어차피 아기는 집에 오면 24시간 내내 '내가' 보게 된다. 아기를 빨리 보고 싶고, 안고 싶고,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겠지만 조리원에서는 이 생활을 즐기며 내 몸 회복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정답은 아니고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ps. 훗날 쭈니의 동생이 생긴다면, 쭈니가 보고 싶어서 집에 빨리 돌아오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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