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문라이트 (2016)
흐리고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 예보와는 다르게 유난히 맑고 푸른 날씨를 자랑하는 4월 11일 오후 12시 57분. 643번 버스엔 어느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침부터 학교 가느라 고단했던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학생, 전날 방송했던 예능을 보고 있는 직장인 아저씨, 모녀가 다정히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을 바라보는 할머님, 그리고 이어폰 속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서 훨씬 더 빨리 도착해버린 영화관에 가진 여유를 부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수에 위치한 메가박스 아트나인 영화관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극장이다. 메가박스와 다른 층으로 위층에 위치해있으며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깔끔한 우드 인테리어는 이 공간을 만들어낸 사람만의 감각을 보여주며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도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데 한몫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극장 옆엔 연인 또는 가족들이 함께 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도 자리해있다. 생각보다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는데 다들 각자만의 이유로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예매해둔 영화 <문라이트>의 입장이 시작되고 알 수 없는 설레는 마음과 함께 극장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극장. 특이점은 극장 왼쪽에 큰 창문이 달려있으며, 흔히 재생되는 광고 영상 대신 아트나인 극장에서 하는 영화들의 예고편이 나왔다. 창문이 가려지자 관람 안내 글귀가 나왔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함께해 주세요. 함께 영화의 감동을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아트나인이 그리고픈 공간을 표현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 후,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리틀 - 샤이론 - 블랙, 케빈, 후안, 테레사.
“달빛 아래 선 흑인들이 블루로 보인대.”
“그럼 아저씨 이름은 블루예요?”
“아니, 결국 네가 무엇이 될지는 너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난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많아서, 이러다 눈물이 될 것 같아."
"그럼 바다로 뛰어들어버리게?"
"등신같이 살았지. 남들 말만 따라 했어. 그래도 지금은 삶이 있어 좋아. 걱정에 파묻혀 살지 않고 나를 살지."
Blue. Moonlight. Touch.
흑인 아이의 성장을 그린 영화 <문라이트>는 샤이론이 자라며 겪는 여러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보며 나는 공감, 이해보다 그를 통해 비참함을 겪어버린다. 행복하고 싶었던, 나로 살고 싶던 샤이론에게 변화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를 위해 눈물을 떨군다.
같은 샤이론이지만 리틀이라고 불릴 때, 샤이론이라고 불릴 때, 블랙이라고 불릴 때의 샤이론은 사뭇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샤이론이 입을 열어 이야기를 하고 표정을 지을 때, 그들이 비로써 한 인물임이 드러난다. 다른 듯 같은 그들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남는 건 공허한 눈빛 뿐인데 내 가슴도 저릿하게 아려온다.
그를 위로해 주는 이는 누구였는가. 그를 다독여준 이는 누구였는가. 그의 외로움을 달렸던 이는 누구였는가. 처음부터 다른 태도로 다가왔던 후안만이 그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고 다독여주지 않았을까.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 애정으로 그에게 대한 후안이 사라져버리고 그는 혼자 남아버린다.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샤이론은 결국 온전치 못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샤이론이 삶을 살아가던 도중, 케빈을 만나게 되고 과거에 받았던 위로처럼 또 한 번 위로를 받게 된다. 자신의 삶을 찾아 행복하다는 케빈의 이야기를 들은 샤이론은 허망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그의 삶은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버렸음을.
깊은 어둠 속의 크레딧을 끝까지 응시하고 나온 밖의 날은 야속하게도 여전히 맑고 화창하다. 그에게도 이런 날이 있었겠지. 하지만 당신의 삻에는 흐림만이 있었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겠지.
Black의 B는 결국 Blue의 B가 아니었을까.
[영화] 문라이트 Moonlight (2016)
드라마|미국
감독|베리 젠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