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막의 연금술사 Oct 07. 2022

난기류가 너무해

비행 전 기장님들과 크루들이 모두 모이는 브리핑 시간, 기장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출발 후 1시간 뒤에 터뷸런스(=난기류)가 시작될 거예요. 오늘 가는 길 내내 좀 심하게 예상되니까 다들 조심해요.”


아. 오늘 비행 쉽지 않겠다.




오늘 비행 중 난기류가 예상된다는 기장님의 멘트는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주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서비스를 모두 끝내야 하는 크루들의 입장에서는 서비스 도중에 난기류가 시작되면 매우 난감하기 때문이다.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난기류가 심할 경우, 식사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티 커피 서비스 중 갑자기 난기류가 시작될 경우, 손님들이 뜨거운 음료를 쏟아 화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기류가 예상되는 시간을 미리 알고 있는 경우, 크루들은 그 시간 안에 서비스를 끝내기 위해 서두른다.




기장님이 말씀하셨던 시간이 다가오면 비행기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이윽고 ‘띵’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 사인이 켜진다.


안전벨트 사인이 켜짐과 동시에, 크루들은 캐빈으로 나가서 손님들의 안전벨트 착용 및 캐빈 안전점검을 한다. 갤리(=기내 간이부엌)를 맡은 크루들도 바빠지는데, 난기류로 인해 갤리 내에 적재되어 있는 수많은 컨테이너가 떨어지거나, 카트가 움직여서 크루들이 다칠 수 있으므로, 물건들의 걸쇠 부분이 잘 잠겨있는지 확인하고, 갤리 선반 위에 놓인 떨어질만한 물건들을 모두 치운다.




비행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난기류를 만난다. 난기류는 살랑살랑 아기 요람을 흔들듯이 약하게 오는 것들도 있지만, 내가 지금 비행기를 타는 것인가, 디스코 팡팡을 타는 것인가 헛갈릴 정도로 굉장히 심하게 오는 것들도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오지만, 기내 서비스 카트가 공중 부양할 만큼 심한 난기류도 있고, 난기류로 인해 크루와 손님들이 다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기장님께서 미리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난기류가 갑자기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나 같은 경우도 기내를 지나가던 중 시작된 급작스러운 난기류에,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서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든 적도 있었고, 갑자기 뚝 떨어지듯 시작되는 난기류에 복도에 주저앉았는데, 손님들이 붙잡아주신 적도 있었다.




난기류를 막을 방법은 없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얼른 지나가라고 비는 수밖에.


혹시 난기류로 인한 공포증이 있으시다면?

비행기 뒷자리는 난기류가 더 심하게 느껴짐으로, 비행기 티켓 구매 시 자리는 최대한 앞쪽으로 예약하고, 승무원에게 오늘 예상되는 난기류가 있는지 물어보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예고 없이 일어나는 난기류를 대비하여, 비행 중 안전벨트는 항상 착용하고 계시고, 난기류가 시작되었을 시, 옆 사람과 대화를 하면 긴장이 조금 풀어지니,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추천드린다.




얼마 전 비행에서도, 급작스러운 난기류가 시작되었다. 안전벨트 사인과 함께 기내 점검을 하고 있는데, 히잡을 곱게 두르신 중년 여성 한 분이 나를 부르셨다.


“저기... 저기요... 너무 무서워서요... 이거... 안전한 거... 맞죠...?”

사색이 된 얼굴빛과 떨리는 두 손으로 핸드백을 꼬옥 쥐고 있는 손님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나는 난기류로 인해 걱정하시는 손님분들을 응대할 때마다, 더 밝은 표정과 하이톤의 목소리를 내는데, 내 표정이 혹시 어두워 보이면 ‘비행기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생각하실까 봐 더 웃으면서 다가가고, 너무 낮고 딱딱한 말투이면 불안한 손님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봐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순간은 내 안의 낯가림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붙임성 좋은 새댁 모드로 손님과 대화를 한다.


“비행기가 오늘 좀 흔들리죠? 그런데 안전해요:) 기장님께서 비행 전에 오늘 난기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요~ 비행기에 문제 있거나 위험하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로 손님을 안정시킨 후에 ‘어디 가시는 길이냐, 거기 가보니까 이게 좋더라, 저게 맛있더라’로 대화를 이어간다.


손님과의 대화 중 다시 한번 울리는 ‘띵’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 사인의 불은 꺼지고, 기내는 다시 잠잠해졌다.


“안전벨트 사인 꺼졌네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어느덧 손님도 안정을 찾으신 듯 보인다.

“진짜 고마워요.:)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환하게 웃으시는 손님의 얼굴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손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갤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다른 콜 벨이 울린다.

“네에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저기 아까 커피 주문했는데요. 이제 받을 수 있나요?”

“그럼요~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난기류로 인해 연기됐던 음료 서비스의 여파로 커피와 차를 주문하는 콜 벨들이 연이어 울린다.


안전벨트 사인이 꺼졌다.

자아. 이제 티 커피의 향연이다. 기내 스타벅스를 오픈해 볼까나!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39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41


작가의 이전글 승무원의 직업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