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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Oct 14. 2022

오만과 편견

얼마 전 그를 떠올리게 하는 손님을 기내에서 만났다.

갑자기 그때의 일이 기억나, 오래된 일기장을 뒤적이듯 2년도 더 지난 일을 되뇌어본다.




불이 꺼진 기내에서 홀로 빛을 내고 있는 노트북.

무언가 바쁘게 서류를 뒤적이며 일을 하던 모습.


모두가 영화를 보거나 잠이 든 사이, 홀로 일하는 그의 모습은 대단해 보이기도,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손님에게 다가가 커피를 권했고,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은 후, 손님은 나에게 부탁을 했다.


“저기,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제가 가방을 좀 찾아야 하는데, 오버헤드빈(기내 수화물함) 안쪽에 들어있는 거 같아서요”


손님의 가방을 찾으려고 열어본 오버헤드빈은 여러 손님들의 가방들이 마구 뒤엉킨 채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이거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요? 찾으시는 가방 종류와 색깔 좀 알려주시겠어요?”

“제 가방 색은 파란색이고, 중간 사이즈의 백팩이에요.”


나는 손님이 말씀하신 가방을 찾아, 조심조심 다른 가방들 사이를 헤매기 시작했다.


“손님, 찾으시는 게 이 가방인가요?”

“아- 이거보다는 약간 커요.”


뒤적뒤적.

“이 가방인가요?”

“그거보다는 약간 더 어두운 색이에요.”


그날따라 비행기가 만석이라 오버헤드빈은 정말 가득 차 있었고, 기내도 어두워서 가방 색도 다 비슷하게 보였다. 다른 가방을 올리고 내리고 하며 열심히 그의 가방을 찾아 보여주면, 그는 고개도 한번 돌리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한 채, 그 가방이 아니다. 색이 더 어둡다, 더 뒤쪽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라는 말만 하면서 자리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본인의 가방을 찾아 나 혼자 온갖 짐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데, 최소한 일어나서 도와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성의 있게 보는 척이라도 하던가. 줄곧 정면만을 응시한 채 대답하는 그의 태도가 오만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힘들게 그의 가방을 찾았고, 겨우 표정관리를 하며, 가방을 건넸다. 가방을 받은 그가 또다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뭐. 저런 손님이 다 있담.

올라오는 감정을 다스리며 뒤를 돌아가려는 순간, 손님이 말했다.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요. 목이랑 어깨를 움직일 수가 없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다고 말을 하는 그는 역시나 정면을 보고 있었고, 옆에 서있는 나를 보기 위해, 두 눈동자만이 힘들게 내 쪽을 향해 있었다.




아.

순간 몽둥이로 머리를 강하게 맞은 듯했다.


나는 정말 어리석구나.


왜 진즉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을까.

왜 당연히 모든 사람이 행동에 불편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가 단지 귀찮아서 나를 돕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 괜찮습니다. 필요하신 거 있으실 때 언제든지 편하게 불러주세요.”

나는 창피함과 죄송함으로 붉게 물든 나의 얼굴을 애써 숨기며 인사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를 오만하다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과 무의식 속에 있던 나의 편견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 비행기가 도착한 후 그가 있는 쪽을 확인해 보니, 그가 주변 승객들의 도움을 받아서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내리시는 동안 인사를 하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죄송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렇게 그날의 비행 몸보다 마음이 더 무겁게 끝이 났다.




비행 중에는 좋은 일도 있지만, 화가 나는 일도, 슬픈 일도 또 부끄럽고 창피한 일들도 생긴다. 비행을 하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가끔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는 비행을 하며 일도 배우고, 인생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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