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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룬 Jan 04. 2022

일본에 우유 마시러 왔습니다만

먹는 것에 열과 성을 다하는 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대학교와 대학원은 일본에서 다녔다. 이런 이력을 들으면 ‘왜?’라고 묻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예전에 대학원 동기와 통화하던 중에 이런 질문을 들었다.

 “어쩌다 일본에 유학 오기로 결정한 거야?”

 “나? 우유 마시려고.”

 “에?”



 친구는 거듭 물었다. 정말 우유를 마시러 유학을 왔냐고. 나는 다시 대답해주었다, 우유를 마시러 바다 건너왔노라고. 친구는 못 믿는 눈치였다.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다 보니… 같은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보여주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바로 자취방 냉장고를 열어 사진을 찍은 다음 라인 메신저로 전송해주었다. 냉장고 문 쪽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우유팩 세 개의 사진'을 말이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 대박! 말도 안 돼!”

그렇게 놀랄 일인인가? 나는 진심이다. 그리고 여전히 생생하다. 우유를 마시며 ‘나, 일본에서 살래’라고 다짐하던 그 순간이.


 때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목적지는 일본. 가족들과 다 함께 패키지로 도쿄와 인근 도시를 여행했다. 호텔도 제법 괜찮은 곳에서 묵었고, 조식도 만족스러웠다. 조식은 양식, 일식을 전부 아우르는 뷔페 스타일이었으나 주위를 보니 ‘간단 식사 파’가 많았다. 신문을 읽으며 간단하게 토스트와 커피 혹은 주스를 마시는 사람, 시리얼만 먹고 나가는 사람, 미소국과 쌀밥, 달걀 요리 등만 조금씩 퍼서 자리에 앉는 사람 등등……. 그 가운데 나는 아침부터 열정적으로 먹어주었다. 양식, 일식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먹고 음료 또한 종류별로 섭렵했다. 단, 우유만 빼고. 아침부터 차가운 우유를 마셨다가 배탈이 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것치고 아침을 꽤나 대담하게 먹어서 신빙성 없이 들리겠지만)


 3박 4일 여정의 마지막 날,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우유도 꼭 한 입 맛보기로 다짐했다. 또 양껏 식사를 해주고 마지막에 우유를 떠 와서 한 모금 마셨다.

 이거 그냥 흰 우유 맞아? 어쩜 이렇게 달달해!

 우리 가족끼리만 식사하는 장소였다면 그대로 큰 목소리를 내 감탄했겠지만,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 애써 진정하고 우유를 두 컵 떠왔다.

 “엄마, 우유 조금만 마셔봐.”

 “아이, 아침부터 무슨 우유는 우유야.”

 “그냥 우유가 아니야 진짜 한 번만 마셔봐.”

 “우유가 다 똑같지 무슨.”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우유 컵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표정이 활짝 펴졌다.

“어머, 어머. 이거 뭐니?”

 그래, 마치 소화제 짤로 유명한 (사실 제산제 광고지만) 배우 김하균 씨의 속 시원해진 표정과 같은 모양으로. 우유에 매료된 엄마와 나는 호들갑 떨기 바빴다. (다른 가족도 우유가 특별하게 맛있다는 것에는 동의했으나 태생적으로 반응이 건조한 사람들이다.) 엄마는 설탕을 탄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펼치기도 하고,  나는 호텔이라 특별하게 비싼 우유를 공수하는 걸까 추측하기도 하며 우유를 두고 담론을 나누었다.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한 잔 마셨던 우유는, 반대로 나에게 미련을 심어주었다. ‘아, 진작 매일 아침마다 마실걸’, ‘돌아다니다가 음료 마실 때 우유 사 마셔 볼걸’ 등등. 한국에 돌아온 뒤로 한동안은 우유를 마실 때마다 엄마와 호텔 조식 우유를 추억하곤 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일본 우유는 엄청 맛있다는 글들이 보였다. 미련은 더 커졌다. 그러나 이미 떠난 기차를 어떡하리, 다시 비행기 타고 가는 수밖에.

 그래, 언젠간 일본에서 살아야겠어.

 그리고 원 없이 마셔주마.


 지금은 한국의 우유도 맛있어졌으나, 우유 종류의 다양성만큼은 여전히 일본이 압도적이다. 우리보다 면적이  넓은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는 얼마나 폭넓을지!) 여러 지역의 많은 목장에서 우유를 생산하기 때문에 다양한 우유를 만나볼  있다. 그리고 유지방 퍼센트 또한 다양하므로 선택지가 참으로 풍성하다. 우유를  종류나 쟁이고 마시던 이유다. 나는 유지방분이 4.5% 이상인 , 3.5% 이상인 , 저지방 우유,    종류를 구비하고 지냈다.


 그리고 용도에 따라 기분에 따라 선택해서 마셨다. 라떼를 만들어 마실 때는 4.5% 이상, 평소에는 3.5% 이상, 가벼운 스무디를 갈아 마실 때는 저지방 우유, 이런 식으로. (스킴밀크도 구비하고 지냈지만 여기서는 액체 우유만 논하고자 한다.) 또한 수많은 목장과 제조사가 경쟁하고 있는 덕분인지 유지방의 진함과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젖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기술의 힘─이라고 쓰고 유제품 기업 연구원들의 , , 눈물이라고 알아야겠지만─일까? 어쨌거나 중학교  우유에 감명 받은   많은 시간이 지났으나 우유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뜨겁고 진심이다.




누군가 우유 하나에 마시는데 뭐 그리 복잡하게 살아가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목표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뭔 말이냐고요? 하하, 그게 말이죠. 제가 중학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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