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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룬 Jun 01. 2023

아침의 기적을 믿으며 퐁당퐁당

《아침 글쓰기의 힘》(할 엘로드 외 2인 저, 윤정숙 역)을 읽고

최근 들어 오전 시간을 공연히 흘려보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뜨고 뭘 한 것도 없이 금방 점심시간. 오전 시간에 뭐 하나라도 확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 《아침 글쓰기의 힘: 단단한 나를 만드는 탁월한 습관》을 발견했다. 필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늘 필력에 대한 갈증과 스트레스를 느끼던 터라 ‘아침’과 ‘글쓰기’가 공존하는 제목에 확 끌렸다.


하지만 책을 펼쳐 들고 얼마 안 가 당황했다. 설마 《미라클 모닝》의 저자가 쓴 책이라니, ‘미라클 모닝’의 글쓰기 버전이라니! 아침 어쩌고는 아무렇지 않아 하고선 미라클 모닝에는 당황하는 나의 모순적인 태도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나는 미라클 모닝이 무서웠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


나에게 미라클 모닝이란 새벽 네다섯 시쯤 일어나 명상, 영어공부, 운동 등을 하다 출근하는 철인삼종경기 같은 존재이므로 단어만 들어도 움츠러들게 된다. 그런데도 완독할 수 있던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저자가 아기 엉덩이 보듬어주듯 살살 달래며 말해주기 때문이다. 삶의 기적을 말하는 자기계발 서적의 저자치고 아주 부드러운 어조다.


책은 미라클 모닝이란 무엇인지, 왜 좋은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관해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앞서 말했듯 미라클 모닝을 고통스러운 수행 정도로 인식했던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미라클 모닝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더 길고 힘든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더 ‘잘’ 일어나서 올바른 시간을 ‘더하는’ 것

-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하루를 시작해 자기 뜻대로 일을 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중요한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보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고방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벽 다섯 시가 기적의 아침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침 아홉 시가 기적적인 시간일 수 있는 것이다.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미라클 모닝이 철인삼종경기가 아니라 조깅 정도임을 알게 된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끝까지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적은 꼭 아침에만 일어나는가?’

‘왜 아침에 해야 하는 거지? 밤이야말로 창작자들의 시간이 아니었던가?’


저자가 아침 시간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 오후와 저녁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글쓰기 시간에는 지장 없다는 점

-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어서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

  (이 장점은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만 누릴 수 있겠지만)

- 정신이 맑고 에너지가 넘치는 데다 창의력이 소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의지력의 재발견》의 공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을 발표한 적 있다. 어떠한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한 자기 통제력(self-control)이나 어떤 행동을 유지하려는 의지력(willpower)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우마이스터의 말에 따르면 의지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시간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의지력을 천천히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지력이 사라지면 온갖 유혹들에 버티기 어렵다. 그러니 되도록 아침에 글을 쓰는 것이 좋다. ───87쪽

결론은, 아침은 뭘 하기에도 좋은 최고의 시간이니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책은 뒤로 갈수록 아침 글쓰기의 이점과 꾸준히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팁들을 준다. 실질적인 팁이란 마음가짐을 개선해 줄 전략들과 실제로 쓸 수 있는 비즈니스 팁들이다.


《미라클 모닝》이 아침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하루를 생산적으로 살 수 있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성공적인 인생이 될 것임을 말한다면, 이 책은 거기에 ‘글쓰기’라는 한 가지를 더한 것이다. 말하자면 미라클 모닝, 글쓰는 사람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뒤로 나의 아침은 명확해졌다. 원래는 기상 시간의 폭이 2시간 정도로 꽤 넓었는데, ‘몸이 필요한 만큼 자는 게 적정 수면시간이다’라는 나만의 지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슨한 아침은 시간 손실이란 부작용을 낳는다. 기상 시간이 랜덤인 만큼, 당일에 눈 뜨고 나서는 하루를 어떻게 운용할 건지에 관한 고민으로 시간을 써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전에는 일어난 다음 이미 놓인 상황에 맞춰 부랴부랴 하루를 계획했다면 현재는 하루를 미리 계획하고 대비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니 오히려 여유롭다.


미라클 모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기상 시간이 여덟 시 반이었으니, 이른 시간은커녕 일반 회사원보다 한참 늦은 시간이다. 그래도 여유롭고 주도적인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기상 시간이 일러서가 아니라 미리 대비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리라. 미라클 모닝을 이어오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욕심이 생겨 현재는 일곱 시 반에 일어난다. 비록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고 있진 못하지만, ‘기본값’을 설정해 둔 터라 이변이 없는 한 행할 기준점이 있다는 건 참 효율적이고 기쁜 일이다. 마치 교복이 정해져 있어 아침에 별 고민 없이 옷 입고 나가는 기분이랄까?


저자는 일어나는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만의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는 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내 맘대로 느슨함을 한 가지 더 부여했다.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프리랜서로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변수를 맞이하는 게 일상이다(일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받는 것이 인지상정).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칼 같이 아침 루틴 지키는 게 물리적으로 어려운 날이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늦게까지 작업하다 자는 날도 있기 마련인데, 이런 날까지 미라클 모닝을 지키려고 했다간 오히려 기적과 멀어질 것 같다. 아무튼 나의 이런 부족함을 스스로 감싸기 위해서 만든 ‘매일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 퐁당퐁당 미라클 모닝’은 나름대로 잘 운행되고 있다.


기본값의 기상 시간과 다른 시간에 일어난 날에 자책하는 마음은 당연히 생긴다. ‘내가 시간을 더 잘 운용했으면 일찍 자고, 기상 시간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불신감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 은근히 눈치 준다. 그렇지만 현상유지편향이 잘 발휘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여기기 때문에 마음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괜찮다. 실행을 하면 실행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실행을 하지 않은 상태면 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할 나의 몸이 보내는 신호.


비록 내가 오늘 당장 미라클 모닝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내 몸과 마음은 미라클 모닝을 계속해서 신경 쓰고, 언제든 다시 기준점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사실을 느끼기에 안도한다.


눈앞에 마감이 여러 개 겹친 나는 오늘 밤도 늦게까지 작업하다 내일 아침은 미라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작심삼일이든 오일이든, 아니 하루든 항상 나의 기본값이, 돌아갈 기준점이 정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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