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 평범한 삶
저도 작가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작가 신청을 앞두고 활동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첨부 내용을 읽었다. 대략의 목차… 나는 목차라는 말에 흠칫하고 놀랐다. 내가 써 내려가는 두서없는 글에 목차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목적을 가진 글을 써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결국 책으로 만들어질 가치가 있다는 것은. 글들이 하나로 묶이고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어 작가가 지향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들은 나를 좌절시켰다. 일기장에 써 내려갔던 감정들을 글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수년간 적어낸 이야기는 나의 일기일 뿐이라고.
나는 이와 비슷한 좌절을 느낀 적이 있다. 비슷한 우울을 다르게 써 내려가며 같은 현재를 살고 있었다고 자각했을 때였다. 그때부터 글쓰기를 멈추고 생각하는 자아를 버려뒀다. 그때의 좌절은 마치 파도처럼 발끝에서부터 일렁이더니 단숨에 올라와 어느새 잡아먹을 듯 거대해져 있었다. 무기력하지만 단 한숨도 잠에 들지 못하고 생활하던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한다. 결국 글도 책도 멀리하고 고립된 방에 나를 가둬뒀던 그 당시의 나. 그런 나를 움직이게 한 건 마음으로 흘러들어오는 글과, 안쓰럽게 바라보는 눈빛과, 손끝으로 전해받은 사랑과, 차게 불어오는 겨울의 바람이었다.
난 좌절의 구렁텅이에 제 발로 들어갔다고 느꼈다. 겨우 빠져나온 그 구렁텅이에서 한 발짝 떨어지기도 전 다시 들어가 버렸다고. 작가 신청을 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았는데. 신청이라는 문턱에 다가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진이 빠졌다. 글이라는 걸 사랑하지만…. “때론 사랑하는 마음만으론 안 되는 것이 있어.” 누군가 내 귀에 그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19살에 대학 대신 회사를 선택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딱히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세상 보는 눈을 넓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자. 그렇게 생각했다. 취업에 성공한 19살의 겨울, 세상이 내 뜻대로 흘러간다는 착각과 이제는 행복할 거라는 기대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찰나의 축하들로 벅차오른 마음을 뒤로하고 수년간 함께 살던 부모님을 떠나 나는 타지에 홀로 살게 되었다. 사회라는 곳은 내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모든 것은 어렵고 차가웠고 그것들은 내 한가운데 자리했던 나의 자아를 저 구석에 몰아넣게 만들었다. 혼란스럽고 어려운 것 투성이었던 타지라는 울타리는 내가 마음 둘 공간을 단 한 평도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매일 다치고 깨진 마음을 홀로 끌어안고 울며 집으로 돌아갈 주말을 기다렸다.
나는 버티고 버텼다. 이겨낸다는 건 곧 버텨낸다는 말과 같았기에.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시간이 지났다. 세월을 따라 그렇게 그렇게… 이제는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발령이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게 되었고, 나름의 평화를 가진 부서에 마음을 붙이고 일을 한다.
또 운이 좋게도 대학교에 다닐 기회가 생겼다. 고되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배우고 싶은 일은 아직 찾지 못했다. 사회에서 바라본 대학이라는 틀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나는 그 속에서 처음의 포부를 잃었다.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딱지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다. 학력이 곧 능력이라는 편견의 한계를 누구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던 시간들은 결국 모든 포부들을 텅 비어버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느새 그들의 편견이 나의 사상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 나는 도망치듯 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이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들이 대학에 가는 시기와 비슷하게. 너무 늦지 않게 학업에 뛰어들었다. 무엇이든 이곳보다 배울 점이 많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저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 제자리를 찾은 평화에 굳었던 몸이 펴지곤 했다. 나는 곧게 선 다리를 움직여 정신과에 가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우울증 약을 일 년째 복용 중이다. 나는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로 끝도 없이 내려가는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런 우울함으로 인해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겨 결국은 약물의 힘을 빌리고 있다.
나는 언젠가 써 내려가던 밤을 기억한다. 아주 못되고 나쁜 사람들을 친절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웃으며 대한 뒤,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먹기 싫은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와 샤워기 아래에서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린 뒤. 정신없이 오늘의 감정을 써 내려가던 죽은 듯 조용하던 밤. 나는 그 감정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이로서 받아들인다.
브런치에 그런 이야기를 적어나가고 싶었다. 19살의 내가 타지에서 살고자 적어냈던 우울의 흔적들. 결국은 벗어난 현실에서도 나아지지 못했던 기분들. 그 슬픔에 대해 모든 원인을 나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나. 천천히 바스러진 자아를 밟고 무기력하게 울고 있던 나. 그런 나를 인지했던 순간. 그로 인해 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했던 무수한 날들과 결심 후 발길을 옮겼던 순간. 그 이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나의 삶의 현재에 대해. 나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의 위로에 대해. 나의 삶에 대해. 슬픔에 대해. 결국엔 다시 찾아온 평온과 행복에 대해. 삶의 모습이 우울과 닮아있어 늘 안고 있던 고민과 생각, 내 나름의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생각을 마치고 난 후 나는 다시 구렁텅이를 떠올린다. 어느새 빠져나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온다. 추운 듯 온몸이 떨려온다.
나는 틀에 박힌 일을 매일 하며 사는 평범한 사무원이다. 동시에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동료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곁에 있을 아주아주 평범한. 난 평범한 상황에서 비슷한 우울을 느끼며 매일 같은 하루를 산다. 나와 비슷한 이들이 섞여 뱉지 못한 말들을 가득 안고. 나는 그들의 그늘에 비친 슬픔을 읽고 나의 슬픔을 글로 토해내며 살아간다. 결국 나의 슬픔은 평범한 또 다른 이의 슬픔이기도 하다. 때론 서론과 결론이 전혀 다른 길을 잃은 글.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미한 글.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우울하고 슬픈 글일지 모르겠으나, 나와 비슷한 이의 이야기를 읽고 숨을 헐떡이며 울었던 그날 밤을 떠올리며. 그 속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결국엔 살아간다’는 마음이 전해져 어딘가 후련해진 채 어느새 잠에 들었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고 싶다. 떨리는 마음으로 작가 신청 버튼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본다.